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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3]

여러분의 파랑새는 뭔가요?

영화인 4명, 임상심리학자 심영섭과 <케이-펙스>를 보고 집단상담하다

심영섭 지금 이 자리는 집단상담치료의 한 섹션으로 마련된 거예요. 원래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많다거나 해서 치료를 받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하는데, 동기가 있는 분들과 없는 분들이 어떤 차이를 보일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평소에 상담하고 싶었던 게 있다면 이 기회에 나누면 좋겠어요. 제가 영화평론가라는 건 생각하지 마시고 상담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중요한 건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거고, 마음 가는 대로 얘기하면 된다는 겁니다. 이질집단이면 좀 힘든데 영화를 한다는 공통점이 상당히 크게 작용할 듯싶기도 하네요. 그럼, 하나 정하고 가죠. 이 프로그램은 항상 익명으로 해요. 자기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사물이나 자연물로 별칭을 정하자고요.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권력관계를 없앨 수 있어요. 나이나 직책, 치료자, 환자 같은. 전 향기로 할게요.

박경수 (가명·시나리오 작가·35·남)=전 콜라로 할게요.

이진아 (가명·배우·37·여)=전 사람.

박진희 (가명·프로듀서·36·여)=전 물.

최규현 (가명·감독·28·남)=전 나무가 좋겠어요. 이름 정하기도 치료의 과정인가요.

향기= 어떻게 보면요. 영화치료는 영화를 고르는 게 아주 중요하거든요. <케이-펙스>가 치료에 딱 부합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정신과적인 것을 다루면서 인간회복을 얘기하고 있고 또 개봉작이기 때문에 시의적절해 보이네요. 처음에는 영화와 관련된 질문을 할 거예요.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자기 생각이 있으면 물어보면서 자연스럽게 말씀해주세요.

사람= 저는 영화인이라기보다 영화지식이 거의 없는 보통 사람이니까 아주 좋은 재료네요. 제 관심사도 사람이고.

향기= 스스로를 마루타로 여기지는 마시고. (웃음) 이거 보통 때는 비싼 돈 주고 하는 건데 여기선 돈 받고 하는 거니까. 영화를 다들 보셨을 텐데 사람님은 울기까지 했다고 하셨죠? 다들 다르게 보셨을 텐데 소감부터 말해볼까요.

콜라= 저는 눈물이 나올 듯하다가 안 나오는 게 자꾸 이성적으로 영화를 판단하게 되더라고요. 미국에서 만든 가족주의라는 뻔뻔스러움, 그러면서 잘 만든 할리우드영화라는 점이 밉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런 대사가 있어요. ‘지구가 그나마 버티는 건 관계 때문이다.’ 제가 요즘 관계 때문에 힘들어요. 일에서도, 가족에서도. 그러나 그 관계 때문에 회복되기도 하는데, 관계에 대한 영화라는 점이 좋았어요.

사람= 저는 아주 좋았어요. 전쟁 벌이는 미국에서 이 영화가 얼마나 돈벌이를 할지는 모르나 이 영화를 보고 한명이라도 감동받았다면, 완전히 썩어빠진 흙에서 하나의 싹을 터트려주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향기= 좀더 개인적으로 어떤 점에서 사람님의 맘을 움직였나요.

사람= 저는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눌 때 비정상쪽이에요. 타인의 아픔을 직접 체감할 정도로 흡수력이 빠른 쪽이거든요. 그 영화가 정신병동에서 일어나는데, 각 환자의 상처가 다 다른 모습이지만 본질이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아픔과 연결됐어요. 그 상처가 후벼파져서 주변 관객에게 방해될 정도로 울음이 나오는 바람에 맘을 진정시키면서 봤어요. 영화를 보면서 내 상처가 희석이 됐다고 할까요.

향기= 아주 감성적으로 보셨군요.

나무= 아쉬웠다는 생각이에요. 처음에는 스스로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 어떻게 진행될까 기대가 됐어요.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거기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들을 다 깔았지만 독창적이지는 않았고, 결론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렇다 할 감정의 변화도 받지 못했어요.

물= 남다르게 기억에 남는 건 선글라스를 쓴 케빈 스페이시를 통해 빛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거였어요. 그가 자꾸 하늘을 보는데 그런 면이 의사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이 일상에 있으면서 보지 못하는 거죠.

향기= 이렇게 같은 영화도 백이면 백 사람 다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선글라스 얘기가 나왔는데 이 영화에선 빛과 물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빛이 케빈 스페이시가 갖는 이질적인 면, 세상 사람과 다른 면을 보여준다면 물은 죽음의 이미지로 나오죠. 어둡고 불안하고. 그것이 대인관계에 심리적으로 상당한 함의를 준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선글라스를 써야 할 때가 있죠? 케빈 스페이시처럼 혹시 바깥의 빛이나 사람이 너무 밝아서 선글라스를 쓰고 싶어야 한다고 느낄 때가 있나요.

물= 전 선글라스를 끼고 영화를 봤는데. (웃음) 너무 밝은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서 자주 쓰는 편이에요. 감독이 선글라스 끼면 괜찮은데 프로듀서가 그러면 이상하게 봐서 많이 자제하는 편이지만요.

향기= 다른 사람 앞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싶어할 때,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나요? 일상에서.

콜라= 선글라스가 내 눈을 노출시키지 않고 타자를 본다는 의미도 있지 않나요? 전 렌즈를 끼는데 보기 싫은 사람이 있거나 불편한 자리에선 렌즈를 빼버려요. 그러면 보이는 것 같지만 실은 안 보이거든요. 편해지고 싶을 때 그러는 거죠. 선글라스 착용과 같은 의미인가요.

향기= 연관이 있어 보이네요. 사람님은 아예 선글라스를 끼고 오셨어요.

사람= 저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선글라스 많이 써요. 그러면 바깥이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이거든요. 선글라스를 끼고 영화를 보면 색감이 더 좋기도 하죠.

향기= 물리적인 선글라스가 아니라 마음의 선글라스를 쓰고 싶은 건 어떨 때인가요.

나무= 외계인이라는 개념이 선글라스를 끼고 남들을 피하고 싶거나 그들과 다르다고 느끼고 싶어하는 게 아니냐는 말씀인데, 전 선글라스를 쓰거나 반지를 끼는 등 저를 꾸미는 데 아주 서툴러요. 스킨이나 향수도 어떻게 쓰는지 몰라요. 지금까지 뭐 했나 생각해보니 몽상 속에 산 듯해요. 영화에 대한 것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같은 또래의 관심사, 예컨대 자동차나 어디로 놀러가나 하는 것에서 완전히 배제돼 살아왔어요. 보통의 스물두살짜리가 해야 할 것들, 연애도 하지 않고. 이러면 외계인이 아닐까요? 아니면 사회부적응자 혹은 지진아?

사람= 전 정신병자 취급 많이 받았어요. 연극을 할 때, 한여름에 체온 유지를 위해 두터운 모직코트를 입고 다닐 때가 있었어요. 아주 쨍한 날, 왜 우산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버스 탔더니 사람들이 피하더군요. 타인의 편견으로 정상이 아닌 비정상, 외계인으로 취급받았다고 할까요.

콜라= 내게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도 타인에게 곡해의 여지가 있다면 이걸 고민해야 하는 건지, 그냥 내 나름대로 계속 살아야 하는 건지, 영화 보면서 그런 질문이 들었어요.

향기= 우리가 영화를 하니까 좀 특이한 것들이 많이 양해가 되는데 다른 장에 가면 쉽지 않죠. 영화도 그런 면이 있는 듯해요. 그런 면에서 케이 펙스란 행성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왜 하필 그 별을 이야기할까요? 또 만약에 자신이 케이 펙스에 가고 싶다면 그 이유는 어떤 게 있을까요.

물= 전 여기 있는 어떤 분들보다도 가족에 얽매어 있는데, 가족만큼 편한 게 없지만 어떤 때는 그것만큼 두려운 게 없기도 해요. 현실적인 문제를 꾸려나가는 데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가족이란 개념조차 없는 케이 펙스에 가고 싶다, 고 얘기할 수 있나?

사람= 고백한다면, 가족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가족은 인생의 가장 큰 걸림돌이자 아픔이에요. 죄악이지만, 때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족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어야 한다, 내 가족의 병, 나의 병을 낫게 해줄 수 있는 건 다른 이들의 관심밖에 없다는 것 느꼈어요. 케이 펙스에 가고 싶진 않고, 그 별이 나에게 준 건 내 속의 희망이에요. 내 주변 사람들을 놓치지 말고 붙잡고 싶다는 거.

향기= 저는 가끔 상담자들에게 딴죽을 거는데요, 가족이 진짜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가요.

사람= 징글징글맞고 힘들지만 그렇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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