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2]

상담자의 눈높이에 맞춰 영화 선택해야 효과적

그러한 측면에서 영화치료를 위한 영화들은 개인적인 지능과 관심, 맥락에 따라 고려되어야 하고 오히려 상징과 은유로서의 영혼의 수준에서 의미를 찾게 하는 영화들일 것이다. 이렌느 골든버그 박사의 다음 회고담을 들어보자. “전 알코올중독이었던 내담자에게 <술과 장미의 나날>을 추천했죠. 도움이 될까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치료 도중 내담자는 자신이 열렬하게 보았던 포르노영화로 주제를 바꾸면서, 제가 왜 이 영화를 추천했는지 의아해하더군요.” 일단은 영화치료를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영화를 즐기고 사랑하는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내담자의 눈높이에 맞는 영화가, 내담자를 계몽하는 영화보다 더 중요하다.

<타인의 취향>

‘아니, 내가 저 사람처럼 비현실적이고 즉흥적인 면이 있단 말이야?’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아요.’ 자동차도 보충액이 필요하듯 사랑에도 서로를 쇄신하는 재충전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스토리 오브 어스>를 보고 난 뒤, 부부치료를 받으러 온 커플 한쌍이 이렇게 와호장룡의 큰 칼을 휘두른다. 영화치료가 단지 자가치료의 수준에서 머무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치료가 그 어떤 예술치료보다 타인에 대한 오해나 이해를 다루어 대인 관계상의 문제를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음악치료나 미술치료와 달리 영화에는 가족, 연인, 직장, 동료 등 인간관계의 미묘한 신경전과 의사소통상의 문제가 구체적인 상황에서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의 덜거럭거리는 관계의 시운전은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만이 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위로를 주고,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대인관계상의 특징을 바라 볼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치료자와 내담자, 혹은 부부나 부모간에 비슷한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동맹력을 높일 수 있다.

“정말 대인관계에서의 판단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사장 부인도 마니도 다 타인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지만 사장 부인의 타인에 대한 관심은 자기 중심적이에요.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죠”, “전 보디가드와 가장 비슷한 것 같아요. 마니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표현하지 못하잖아요. 제가 딱 여자친구한테 그래요”. 필자가 현재 상담하고 있는 대인관계 상담 집단에서 영화 <타인의 취향>을 보고 나온 내담자들의 다양한 반응들이다.

영화치료는 문화, 계급, 성차, 권력, 성적 지향 등의 문제뿐 아니라 일반적인 가족들의 문제를 다루는 데도 도움을 준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쉽게 제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거예요.” “영화 보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데 상담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왔어요.”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와 사이를 지문을 뜨듯 정교하게 모방하고 있는 삶에 대한 영화의 점근선적 효과는 짧은 순간이나마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기회를 함께 나누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음식과 시간과 체액을 나눌 때처럼.

자신이 깨닫지 못한 대인관계를 바라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파니 핑크>

영화치료는 90년대 들어 막 개화하기 시작한 새로운 치료법 중 하나이다. 영화치료는 행동치료나 정신분석 같은 치료자의 이론적 지향과 상관없이 상담의 어느 때나 기존 상담과 통합하여 사용할 수 있으며 단독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아마도 이때 관건은 영화에 정신이 홀리거나 영화를 오히려 방패막이 삼는 수다성 대화가 아닌, 영화를 ‘통해’ 얼마나 투명하게 내담자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얻을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다. 인간의 오감에 작용하는 영화의 총체적이고 비구조화된 힘을 상담 안에 끌어들이는 일. 아마도 ‘서른에 좋은 남자 만나기는 원자폭탄을 맞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하며 상담소를 찾아온 파니 핑크에게 심리학자로서 나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라고 권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술에 취해 <All by myself>를 부르짖는 브리짓에게 <파니 핑크>를 권했을까? 그러나 그 어떤 경우였던 브리짓과 파니의 영화치료의 성패는 좋은 영화를 보는 것에서 나아가 상담의 과정과 질적인 문제에 달려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한때 치료라는 것이 혹은 치료자라는 사람이 바이올린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팽팽이 조여진 신경을 가지고 끊어지기 직전에 상담실 문 앞에 나타난 바이올린 줄 같은 내담자를 보며 그저 그 줄을 얹어놓을 수 있는 편한 턱받이가 있는 바이올린이 될 수 있다면. 영화란 그 바이올린 줄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하기 위한 송진이나 혹은 영혼에 놓는 주사이다. 수잔 손탁의 말처럼 어떤 의미에서 모든 진실은 피상적이다. 전부가 아닌 약간의 진실 왜곡, 전부가 아닌 약간의 광기, 전부가 아닌 약간의 불온함, 생에 대한 전부가 아닌 약간의 거부. 그리고 영화치료는 바로 전부가 아닌 약간의 인생 체험. 어쩌면 이제까지 영화가 인간에게 제공했던 그 많은 유혹과 마약에 가까웠던 최면 중 가장 선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심영섭/ 영화평론가·임상심리학자 chinablue9@hanmail.net

심영섭이 추천하는 영화치료를 위한 영화들

이럴땐 이 영화가 특효지!

1. <마빈즈 룸>: 다이앤 키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메릴 스트립 등 최고의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이 영화는 한마디로 영화치료를 위한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가족문제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떠나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정에 굶주려 있는 행크가 왜 비행을 저지르는지, 행크의 어머니이며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미용사 리의 분노가 어디서 오는지 사색해보라. 특히 행크의 이모, 베시의 비난없이 말하는 방법이나 상대방의 감정을 명료화하는 대화방식은 효과적인 의사소통 전략을 부드럽게 깨우쳐줄 것이다.

2. <키드>: 성마르고 건조한 독신남으로 늙어가는 40살의 나에게 8살의 꼬마가 찾아왔다! 좀 엉뚱한 상상으로 시작하는 존 터틀타웁의 영화 <키드>는 일중독으로 허덕이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에 안성맞춤인 텍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8살 무렵의 자신을 떠올려보고 자신의 성격형성에 가장 영향을 끼쳤던 사건이나 그때 느낌을 회고해보자. 70살의 나는 어떠할 것인가. 브루스 윌리스가 과거, 현재, 미래의 나를 만나는 <키드>는 유쾌하고 발랄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시간 조망을 가지고 인생 그래프를 그릴 수 있게 만든다.

3. <패션 피쉬>: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고, 너무나 우울해서 죽음을 생각하는 모든 분들에게 존 세일즈가 각본을 쓴 이 영화를 권한다. 교통사고로 미모의 여배우에서 순식간에 척추 환자로 다른 삶을 살게 된 메이 앨리스는 술에 절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녀의 삶에 흑인 하녀 샨텔이 들어오면서 그녀의 삶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운동을 하지 않겠다며 버티는 메이 앨리스를 언덕배기에 혼자 두자, 휠체어를 탄 그녀는 샨텔에게 “여긴 내리막길이야”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샨텔이 하는 말. “내 인생도 그래요.” 각본가 존 세일즈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4. <스토리 오브 어스>: 덤벙덤벙하는 남편과 현실적이고 새침데기인 아내가 별거에 들어갔다. 영화 제목답게 <스토리 오브 어스>의 강점은 결혼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는 것. 브루스 윌리스와 미셸 파이퍼가 싸움을 하자, 두 사람의 부모들이 침대 위에 나타나서 서로 다른 훈육과 가치관을 주입하며 두 사람은 난타전을 벌인다. 커플이란 우주적인 형태의 충돌임을 가르쳐주는 부부치료에 딱 안성맞춤인 영화.

이외에도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산딸기> 등은 지적인 관객이라면 모두 좋아할 만한 영화치료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전 미국의 영화치료 교본들이 추천하는 <길버트 그레이프>나 프랭크 카프카 감독의 <멋진 인생> 등은 막상 치료에 적용을 했을 때 생각보다 치료 요인이 적은 영화였다. <파니 핑크>는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에게 특히 효과가 컸다.

▶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1]

▶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2]

▶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3]

▶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4]

▶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