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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1]
글·그림 이성욱(<팝툰> 편집장) 2003-12-05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 68혁명의 세계적 지식인과 프랑스의 젊은 영화인을 만나다

68은 살아있다 - 상상력에게 권력을!

“상상력에게 권력을!” 68년 5월 파리를 뒤덮었던 구호다. 68혁명의 슬로건과 2003년의 한국, 아니 한국영화는 과연 어울릴까? 35년 전과 현재에 대해 동시에 묻는 이 낯선 작업이 엉뚱한 것만은 아니다. 68년과 지금은 다르면서도 닮았으니까.

유럽과 미국을 들끓게 한 68혁명의 배경은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움직임이었다. 거짓으로 드러날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시작하고, 호언장담과 달리 전쟁은 자꾸 이상하게 흘러간다. 베트남전이 그랬고, 지금의 이라크전이 마치 그때를 되풀이하는 듯하다. “윌슨은 어디로 갔나, 펜타곤으로 기어가고 있다!” 1965년 윌슨 총리가 이끄는 영국 노동당 정부를 향해 런던 시민들은 이렇게 외치며 반전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2003년 11월21일 런던에선 20여만명이 반전 시위를 벌였다. 이날 토니 블레어 노동당 총리는 자신을 찾아온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한치도 겁내거나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필 그때나 지금이나 영국은 노동당 정권이고 정책은 달라진 게 없다.

68의 젊은이들은 전후 경제성장의 눈부신 혜택을 누리기 시작했으나 그것을 준 ‘아버지’들의 모든 것에 정면으로 도전한 세대다. 넓어진 대학의 문은 ‘화이트 칼라’ 준비생을 대량으로 생산했고, 그들은 자신들을 옥죄는 규율과 그 안에 갇힌 삶의 권태에 대항하는 혁명을 시작했다. “우리는 굶어죽을 가능성이 있는 세계일지라도, 권태로움으로 죽을 가능성이 있는 세계와는 바꾸고 싶지 않다.”(68혁명을 ‘예언’했던 국제상황주의자들의 선언)

68의 프랑스, 지금의 한국

이게 도대체 영화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프랑스에선 당시의 삶이 왜 권태로운지 보여준 게 장 뤽 고다르의 <주말>이었고, 싸움의 시작도 영화에서 비롯했다. 1968년 2월, 드골과 앙드레 말로는 앙리 랑글루아에게 파리 시네마테크의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했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문화적 투쟁을 시작했다. 그 시위는 5월로 이어졌다. 젊은이들은 욕망의 실현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 반기를 들었다. “우리 속에 잠자고 있는 경찰을 없애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상상력에게 모든 권력을”이라고 외치면서. 그리고 새로운 사상의 시대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데리다는 <글쓰기와 차연>(1967)과 <인간의 종말>(1968)을,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과 <감각의 논리>(1969)를,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1969)을 마치 짜맞춘 듯 잇따라 발표했다. 푸코는 “그해 5월의 정치적 변화가 없었다면 처벌이니, 감옥이니, 훈육이니 하는 나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킬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국내에서 9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철학자들의 ‘손’보다는 어떤 탈출구를 찾고자 했던 사회과학자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서야 말이다.

8%에 이르는 청년 실업과 10월 한달에만 4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현실이 존재하는 형편, 그리고 광포한 전쟁이 벌어지는 바다 건너 상황을 애써 주시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삶은 조용하다 못해 권태로운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 안과 밖에 동시에 묻기로 했다. 할리우드와 ‘맞장’뜨며 자국영화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 성황을 누리는 한국영화는 이제 어디를 보며 가야 하는지 말이다. 그 순간, 하필 ‘상상력에게 권력을’이라는 68세대의 구호에 시선이 꽂힌 게 우연이었을까?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그 사회의 정신적 생산력이 상상력에 있다고 했다. 문제는 추상적 구호와 구체적 현실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건의 현장으로 달려가보는 수밖에. 68혁명의 세계적 지식인과 영화인, 이제 막 영화를 시작한 젊은 프랑스 감독들을 어렵사리 만나가는 7박8일의 파리 여정은 그래서 시작됐다. 이와 함께, 68혁명의 세계적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한 <신좌파의 상상력>에서 그것이 일종의 문화운동이었다고 보는 미국의 사회과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에게 서면 인터뷰를 청했고, 문화지식인이자 실천가인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에게 글을 부탁했다. 정답을 찾았느냐고? 이 ‘엉뚱한’ 여행에 끝까지 동참만 해준다면 실마리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영화계의 ‘오늘’도 맛보면서 말이다.

새로운 삶, 욕망, 성 해방에 기반한 상상력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전 편집장이자 파리3대학 영화과 교수인 샤를 테송은 미묘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카이에…>에서 갑자기 해고됐고(현 편집장은 장 미셸 프로동), 학교에선 학생들의 기피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어 강의마저 줄고 있었다. 스캔들성 소문이 돌고 있었고, 현지 유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연구를 너무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야 했던 건, 아시아영화에 대한 식견을 인정받았던 학자로서 68과 한국영화를 동시에 바라볼 만한 여건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68정신이 다시 유효해지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68구호는 새로운 삶, 욕망, 성의 해방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정치적 상상력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지금 68담론이 유효해진 건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세계화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에선 지난해 선거에서 조스팽의 좌파가 실패하면서 급격히 부각됐다.”

이어서 그는 이어지는 다른 인터뷰와 출발은 같으나 방향은 전혀 다른 몇 가지 의아스런 견해(혹은 자신의 이야기가 서로 충돌하는 듯한 의견)를 들려주었다. 예컨대 68정신이 영화와 크게 상호작용을 일으킨 게 없으며 다만 다큐멘터리와 밀레탕트(투쟁참여적 영화)에만 영향을 끼쳤을 뿐이라거나 고다르, 크리스 바커 등 68세대의 작가들은 한번 걸러져서 지금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있고, 푸코·알튀세르 등의 68사상은 완전히 끝났다고 했다. 그런데 68과 문화운동의 관련성을 묻자 영화와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시에는 영화만 빼고 모두 파업에 들어갔다. 낮에는 파업하고 저녁에는 영화보러 가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정부나 다른 매스미디어가 전해주는 정보에 대한 대안적 기능이 있다는 걸 주목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결국 프랑스 국민의 관습이나 사고방식의 전환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 혁명의 시대, 영화가 대안을 만든다

이렇게 되면 질문은 되돌아간다.

“68정신이 다시 유효해지고 있다면, 영화는 그것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68은 일종의 유령이다. 특히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있어서. 지금은 개인적 혁명의 시대다. 장 르누아르처럼 집단과 공동체에 대해 말하는 작가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녜스 바르다처럼 다큐멘터리는 68식의 참여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시선을 보여줄 뿐이다. 영화는 더이상 투쟁과 참여의 수단적 기능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개인적 혁명의 시대에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

“오늘도 데모가 벌어졌는데(프랑스의 학제를 미국식으로 바꾸려는 정책에 대해 대학생들이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 시위는 과거와 달리 개인적 이해관계가 모여 일어난 것이다. 더 나은 학습 환경과 졸업 뒤 성공 등을 위해서 말이다. 현대 프랑스영화의 흐름도 내면주의로 가고 있다.”

“개인적 혁명과 내면주의 영화는 서로를 거스르는 것인가, 호응하는 것인가?”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내면주의 영화가 참여적 영화보다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장 외스타슈의 영화다. 한국에선 홍상수 영화가 그렇다.”

내면주의 혹은 내밀주의로 번역되는 앵티미즘은 이후 인터뷰들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된다. ‘개인적 혁명’의 중요성을 언급한 대목에선 테송이 “영화미학에 신선한 담론을 불어넣고 있다”고 높이 평가한 자크 랑시에의 영향이 읽혔다. 알튀세르의 제자였던 자크 랑시에는 “아버지를 죽였다”고 선언하며 알튀세르와 마오주의를 비판한 뒤 현대 미학으로 눈을 돌렸고 95년에 쓴 <불화>는 새로운 정치철학을 완성한 것으로 정치이론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새로운 영화이론을 만들어가고 있는 랑시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감성이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그래서 정치적 변화는 예술적 변화와 함께 올 수밖에 없다며 정치와 예술을 연결짓고 있다.

흥미롭게도 테송은 중국(홍콩을 포함한), 일본과 비교해 한국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했다. 일본은 거대 자본이 영화시장을 상업적으로 잠식하긴 했으나 기타노 다케시 등 작가주의영화가 한편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바야흐로 프랑스에선 기타노 다케시 붐이 일고 있었다), 중국은 제작환경이 그렇게 어려움에도 지아장커 같은 작가가 어떻게든 영화를 생산하고 있으며 할리우드 액션영화는 홍콩영화를 참조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이미 거대자본이 상업영화를 평정해버린 기세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가리켜 ‘내부적 식민지화’라고 했다.

테송 자신도 이해가 잘 안 된다며 말한 건, “프랑스 평단이 뤽 베송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서 <매트릭스>에 대해서는 말한다”는 것이었다. 68정신이 모두 끝났다고 보는 그에게 레지스 드브레에 대해 묻자 “이미지를 이길 수 없다고 보는 드브레의 생각에 동의한다”며 “다만 그 이미지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이제 드브레를 만날 차례다.

통역 차민철, 장태순, 오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