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4]
글·사진 이성욱(<팝툰> 편집장) 2003-12-05

“프랑스와 한국밖에는 없소!” 드디어 의문이 풀리다

그가 젊은 여성 감독과 함께 68혁명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영화 <코드 68>을 준비 중이라는 건 집으로 찾아가 만난 뒤에야 알았다. 판권담보융자로 제작비도 마련해 카날 플뤼가 제작사로 나섰으며, 촬영은 그때 그 시기에 맞춰 내년 5월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 그런데 행운은 잇따랐다.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던 우려는 장 앙리 로제를 만나면서 풀렸다. 물론 혹자는 이걸로 해답이 되겠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68세대의 자유로움을 35년 동안 그대로 간직해온 듯한 느낌을 물씬 풍기며 어떤 질문에도 명쾌한 답을 일러줬다. 최소한의 살림살이로 아파트를 텅빈 듯 꾸며놓은 그의 소탈하고 소박한 태도가 더욱 신뢰감을 줬다(이건 어쩔 수 없는 편견이다. 그는 드브레의 인상과 드브레의 집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장 앙리 로제는 1969년 고다르와 함께 정치적이고 표현주의적 다큐멘터리 와 <브리티시 사운드>를 만들었다(고다르의 최근작 <사랑의 찬가>에는 출연도 했다). 그때는 좌파영화집단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에 참여하던 중이었다. 그는 흥행에 크게 성공한 1981년작 <눈>에 이어 <카날리만>(1982)과 <룰루>(2001)를 감독했고, 파리8대학 영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코드 68>은 젊고 멍청한 감독이 68년에 대해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다. 그때의 삶과 사랑은 지금 어떻게 되었나 살펴보는. 앙리 로제는 68년에 대해 자신이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게 자아도취적일 수 있고, 역사적인 건 자기 상상력과 맞지 않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와 함께 손잡고 68이 무엇을 남겼는가 탐구하기로 했다. 2년 전, 좌파와 우파가 한목소리가 되어 프랑스 사회가 잘 안 돌아가는 게 너무 리버럴했던 68세대 탓이라는 분위기를 형성했는데, 그에 대한 반발이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주연을 맡기고 시나리오도 함께 쓴 주디스 카엔(Judith Cahen) 감독과 합의된 68의 가치는 뭘까?

“영화가 현실에 대해 맺게 되는 관계에 대한 것이다. 세르주 다네가 ‘영화의 미래는 리얼리즘적인 것에 있을 뿐이고 그렇지 않으면 예술로서의 영화는 사라질 것이다’고 했다. 주디스 카엔은 68세대 자신이 가졌던 스스로에 대한 의식 또는 다른 이들이 68세대에 대해 가진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다. 68세대 자신은 히피들의 구호인 ‘평화와 사랑’이란 신념을 갖고 있었고, 개인적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고 평화주의자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는 베트남전에 직접 뛰어들어 싸웠고, 드브레처럼 혁명전선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영화에서 감독은 그들을 만나 사실이 이랬다는 걸 밝혀낸다.”

프랑스영화의 앵티미즘 경향에 대해서는 “중요한 건 영화가 실제와 어떻게 관계 맺는가”에 있다며 “내면주의적이냐 정치적이냐, 개인을 다루느냐 사회를 다루느냐는 구분은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예컨대, 샹탈 애커만의 경우는 굉장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화를 만들지만 자기 자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인이 사회와 관계갖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요즘 흐름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개인적 삶이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다고 보기 시작하며 일상에서의 혁명을 말하기 시작한 68혁명과, 테송이 말한 ‘개인적 혁명’, 그리고 앙리 로제가 말한 앵티미즘의 어떤 경향이 한 줄기로 엮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지스 드브레처럼 총을 들고 싸웠던 지식인이 어느 순간 이미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패배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답은 명쾌했다. 이미지와 비주얼을 착각한 데서 오는 오류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표상 혹은 재현이다. 실제로 눈앞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재구성한 것이고, 비주얼은 직접 내 앞에 존재한다는 효과만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는 비주얼과 달리 판단의 여지를 남겨둔다. 세상을 지배하는 건 이미지가 아니라 비주얼이다.” 그는 이런 착각은 <카이에 뒤 시네마>도 한 적이 있다며 그 사례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꿈꾸는 세상을 눈 앞에 그려라

그는 자기의 취향과 무관하게 정직한 대중영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상업영화와 작가영화 사이의 방패막이 돼 작가영화를 보호해주는 일종의 톨레랑스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트뤼포가 우리를 보호한다”고 고다르가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며. 그는 이런 균형 상태를 한국에서 봤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절대적으로 스크린쿼터라는 보호 정책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현재 한국영화는 세계 시장에서 프랑스와 함께 미국영화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마지막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았다. ‘상상력에게 권력을’이란 구호가 당시에 가리켰던 정확한 의미와 지금도 유효한지의 여부다. 그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이 여정을 마칠 때가 됐다.

“상상력은 절대로 권력을 차지할 수 없다. 그때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당시 사회 상황이 물질적, 경제적으로 급속히 발전하던 중이어서 그 향유층은 늘어가고 있었는데, 반면 사회는 닫혀 있고 도덕적으로는 엄격했다. 젊은 세대가 꿈꾸는 세상이 현실과 다른 것이었다. 그 꿈꾸는 세상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그 구호에 담겨 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구호도 마찬가지다. 그게 이 시대에 가진 의미는 지금의 젊은 세대도 자신들이 상상하는 것과 현실이 다를 것이라는 점에 있다. 그걸 이뤄나가기 위해 현실 속에서 뭔가를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68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 앙리 로제의 인터뷰 전문은 다음호에 전재됩니다.)

통역 차민철, 장태순, 오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