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6]

문화 위험사회? 문화적 상상력으로 뚫어버리자!

기로에 선 영상세대를 위한 제언

현재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진통을 겪으며 양극화의 위험에 처해 있다. 홈시어터와 인텔리전트 주방체제를 갖춘 첨단하이테크 고층아파트가 하늘을 치솟는 새로운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 농민들의 분신이 잇따르고 있다. 이렇게 양극화된 사회적 풍경은 지상과 지하의 삶으로 양분된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묵시록적 풍경을 연상시킨다.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위에서 사는 극소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사이보그의 탄생은 테크노피아의 실현이겠지만, 사이보그에 쫓기는 다수의 지하생활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지옥의 묵시록에 다름아닐 것이다.

이 양극화된 풍경이 더욱 묵시록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위로 ‘위험사회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참사’와 같은 위험이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예측돼온 물리적 위험이라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정보화가 가져오는 문화적 위험은 아직 그 내용과 범위가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고 있어 더욱 위태롭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정치적 조직과 경제적 재생산의 매개고리 역할을 해오던 문화적 자원(감성적 유대와 신뢰, 신체적 역능)의 소진, 가족 해체와 성적 유대의 파괴, 교육 붕괴, 농업 및 생태계 붕괴, 문화다양성의 파괴와 같은 현상들은 그 빙산의 일각일 따름이다. 이미 공업화라는 제2의 물결과 함께 시작되었던 이런 위험들은 이제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압력과 가속화되고 있는 ‘정보화’라는 제3의 물결을 타고 유례없는 문화적 재난으로 급속히 진전하고 있는 중이다.

테크노피아와 지옥의 묵시록

특히 문화와 교육 영역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와 정보화의 확산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 있다. 지난 10년간 문화와 교육에 내재한 공공성의 원리는 급격히 붕괴했고, 창의적 예술을 위한 물적 기반은 점점 위축되는 가운데 상업적 문화산업과 소비문화의 폭발로 문화적 불균형과 양극화가 확산되고 있다. 청소년들이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로 감성적 황폐화와 인성의 마비, 신체적인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세대 격차에 관한 담론이 소비문화 마케팅 전략으로 발전하는 동안 청년들 대다수는 산업예비군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사회문화적 공공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젊은 세대와 민중의 지지로 탄생한 참여정부는 시장과 관료들에 포위된 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파도에 휩쓸려 노동, 교육, 환경, 복지 등 사회적 공공성 해체와 난개발을 방치하거나 촉진하고 있다.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새로운 위험사회화에 능동적으로 맞서는 것은 정부나 지배계급이 아니라 민중의 몫이라는 냉혹한 역사적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현실이다.

2002년의 역동적 대중참여 현상을 발본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험사회화’에 대한 자발적인 문화적 저항의 출발이었던 이 에너지는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뒤 소진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분출하기 위해 용틀임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국민경선과 같이 인터넷을 통한 대중정치의 폭발, 노사모와 붉은 악마와 같은 온라인 소통문화가 광장문화의 분출과 촛불시위, 대선 등 오프라인에서의 대규모 동원을 촉진했던 문화정치적 에너지는 올해 들어 참여정부의 한계에 도전하는 다양한 실천형식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과 같은 위험사회화의 난맥상 앞에서 새로운 문화혁명을 꿈꿀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위기가 동시에 새로운 기회라면, 정보자본주의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가져오는 위험사회화는 오히려 정보민주주의를 통한 대안적 재지구화와 문화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힘을 다시 상상한다

이를 위한 수단과 방법은 어디에 있는가? 인류가 이룩한 ‘일반지성’과 우리 자신의 문화적 자원이 바로 그것이다. 인터넷 자체가 개인의 창조물이 아닌 집단지성의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일반지성’의 명료한 사례이며, 2002년에 공개된 자유와 횡단, 참여와 소통에 대한 강열한 욕망 자체가 강력한 문화적 자원이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이 수단과 자원의 힘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데 있지 않을까? 이런 수단과 자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사회화에 대처할 새로운 정치경제적 패러다임과 사회문화적 공공영역을 창출하기 위한 과감한 문화정치적 상상력은 아직 충분히 작동되고 있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힘’을 다시 상상해보아야 할 것이다. 할리우드식 대중영화가 영화의 힘을 전부 보여주는 것일 수는 없다. 물론 열린 영화, 독립영화, 단편영화, 실험영화, 예술영화, 제3의 영화, 소수영화 등 그동안 다양한 대안들이 모색돼왔지만 충분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유럽의 68혁명 당시 기 드보르가 ‘스펙터클화된 사회’에 맞서기 위해 혁명적 대안영화를 모색했으나 실현되기 어려웠던 것은 당대의 제한된 관람조건 탓도 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듯 영화도 변하며, 대중 역시 변화한다.

오늘날 영화가 과거와는 다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디지털기술과 수많은 윈도,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네트워크의 확산에서 찾을 수 있다. 컨베이어벨트 앞에 한줄로 서 있던 대중(mass) 역시 정보화에 따른 유연적 노동과정 등에 의해 복수적 다중(multitude)으로 변화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윈도 체제-인터넷-복수적 다중은 자유-횡단-다양성의 문화정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나아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여가의 향유, 소비문화가 자극한 신체적, 정서적 욕망의 다층화 역시 다중의 문화적 에너지를 자극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정보자본주의를 넘어설 필요조건의 하나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충분조건을 만들어내는 힘은 여전히 문화정치적 상상력과 기획에서 나올 것이다.

이제 할리우드식 상업적 대중영화의 장르적 포맷은 영화와 복수적 다중이 접속할 수 있는 다양한 계기들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블록버스터식의 대자본에 기초한 대중영화는 계속 자기 자신을 혁신해갈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디지털 기술은 중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영화제작의 기회를 열어주고 있고, 작가와 관객 사이에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쌍방향/다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고 있다.

온라인 영상 네트워크로 지구를 ‘재연결’하라

이런 움직임은 영화라는 한정된 오락/예술형식이 문학, 미술, 공연, 건축과 디자인, 출판만화 등과 같은 전통적인 문화형식과 만나 새로운 문화정치적 포맷을 만들어낼 역동적 가능성을 열고 있다. 나아가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은 물론 교육과 의료기술, 산업 일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상매체의 학문적/산업적/군사적 활용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의 지식정보사회화 과정은 지구 전체를 영상매체의 온라인 네트워크로 뒤덮어버림으로써 전지구적 ‘영상사회’라는 새로운 사회의 출현을 준비하고 있다(실례로 소니사는 2002년 이래 ‘Anycast Vision’이라는 프로젝트로 가전제품에서 위성방송까지 실시간 동영상 연결이 가능한 기술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구 전체가 온라인 영상 네트워크로 뒤덮일 때 영화는 그전과는 다른 과제를 떠맡게 될 것이다. 들뢰즈는 <영화1, 2>에서 고전영화가 운동-이미지에 의존한 것과 달리 현대영화는 시간-이미지라는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21세기의 영화는 전지구적 온라인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새로운 운동-시간-이미지의 ‘재연결’을 시도해야 할 과제를 떠맡게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이미지/사운드/텍스트의 자유로운 복수적 조합이 가능한 새로운 문화정치적 실천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20세기까지 인류가 발전시켜온 문학과 시각예술, 공연예술은 물론 인문학과 과학의 성과들을 영화는 아직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으며, 대중오락의 포맷으로 그 가능성의 일부만을 활용했을 따름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가장 늦게 태어난 예술형식이지만 그 종합적 수렴능력 때문에 가장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다.

최근 한국영화의 부흥은 그 잠재력의 극히 작은 일부만을 이끌어낸 것에 불과하다. 그 잠재력 전체를 현실화하는 것은 확장된 영화적 실천을 영상사회의 엔진으로 상상하면서 이로부터 진보적 문화정치적 실천의 다양한 포맷을 상상하고 기획하려는 창의적 능력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영화를 만들고 보고 연구하며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그 시야를 영화 내부가 아니라 그 외부로 돌려, 영화와 문화, 영화와 정치, 영화와 경제, 영화와 교육, 영화와 사회운동간의 쌍방향 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정보자본주의가 몰고 오는 위험사회화 자체를 가시화하고, 이를 가로질러 다중의 문화적 역능을 촉진할 새로운 실천 포맷을 모색하면서 최소한의 필요노동으로 최대한의 문화적 활동이 보장되는 문화사회의 밑그림을 그려나가기 위해 영화적 상상력을 극대화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