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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 그 신화의 현장 도쿄를 가다 [3]

4. 오즈적인 것에 대한 통념

그래서 살아생전 오즈는 언제나 영화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단지 이런 점들은 확연하다. 오즈는 우선 화면의 ‘구도’를 중시한 감독이다. <꽁치의 맛>에까지 오즈의 영화는 언제나 스탠더드 표준화면으로만 만들어졌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이는 것에 항상 늦은 편이었지만 그가 토키영화와 컬러영화 모두를 만든 것에 비해 당시 유행하던 시네마스코프로 한편의 영화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여기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언제나 50mm 표준렌즈만을 썼다. 오즈의 촬영감독 아쓰다 유하루는 오즈가 화면의 구도를 맞추기 위해 식탁 위에 큰 맥주병과 작은 맥주병을 가져다놓고 번갈아 사용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또한, 전후로 넘어가면서 광학적인 방식, 즉 디졸브나 페이드 인 아웃으로 숏을 넘기는 법도 없었다. 오직 커팅뿐이었다. 오즈의 편집감각은 유명하다. <동경이야기>를 만들 때는 3프레임의 커팅 포인트 차이도 족집게처럼 집어냈다고 한다(우리는 영화가 1초에 24프레임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만춘> 이후로는 카메라도 완전히 고정되었다. 또, 서사적인 의미에서는 플롯에 구애받지 않는 듯 보이는 단순한 스토리만 있지만, 신을 구성하는 의미에서는 복잡한 플롯이 적용되었다. ‘빈 공간’, ‘커튼 숏’으로 불리는 갑작스런 사물과 풍경들의 숏도 여전했다. 그것들은 이론가 노엘 브뤼시에 의해 필로 숏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그는 이 숏들이 “다이제시스를 잠시 중단시키고 영원한 정지상태”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들뢰즈는 시간-이미지 1장에서 노엘 브뤼시가 필로 숏이라 부른 그것들을 ‘숏 그 자체’(shot itself)라고 고쳐 부르면서 오즈의 영화가 순수 시청각적인 기호로서 시간을 담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들 대부분이 오즈의 영화를 정확히 보는 것보다 오즈적인 것으로 유도된 것이라는 게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생각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감독 오즈 야스지로>를 통해 오즈의 영화를 보이는 대로 보라고 강조한다. 오즈적인 것에 의한 통념에 이끌려 오즈의 영화를 오해하지 말 것을 강권한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찾아갈 12월11일과 12일 ‘오즈 야스지로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기획한 것 역시 그였다.

5. 심포지엄의 이슈들

<부초>

일본 <아사히신문> 주최로 열린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은 시간상으로만 따져도 이틀간 14시간을 이어갔다. 하스미 시게히코, 야마네 사다오, 요시다 요시시게의 발제를 시작으로 오즈의 영화에 출연했던 네명의 여배우들이 영화의 기억을 더듬고 장 미셸 프로동, 샤를 테송, 노엘 심솔로, 크리스 후지와라, 임재철이 인터내셔널 평론가로 참여했다. 여기에 마뇰 드 올리베이라, 허우샤오시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페드로 코스타가 오즈를 말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고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고레다 히로카즈, 사이 요이치, 최양일이 일본 감독으로 심포지엄에 참여했다. 하루 관전에 2.500엔(약 2만7천원)이라는 적지 않은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이틀간 700석 규모의 아사히홀이 거의 만석이었고, 허우샤오시엔이 오즈에게 헌정하는 영화 <가배 시광>의 프리미어 상영이 있는 12일에는 30분 만에 영화표가 동이 났다.

행사의 시작은 요시다 요시시게였다. 그는 오시마 나기사와 함께 쇼치쿠 누벨바그 세대를 이끌었던 명장이고, 예리한 필치를 지닌 유명한 평론가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평론가가 아닌 감독으로서 말하고 싶다”는 그의 발제 요지는 간단하다. 오즈의 영화에는 “반복과 불일치”라는 두 개념이 끊임없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다소 진부한 그 발제보다 더 울림을 갖는 것은 오즈가 요시다에게 건넨 두 문장을 끄집어낼 때이다. 쇼치쿠 누벨바그 세대로서 영화가 정치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요시다는 1962년 오즈의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을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강하게 비판한다. 다음해 스튜디오 감독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오즈와 요시다는 서로의 무릎에 음료수를 끼얹는 불미스런 응수를 갖는다. 시간이 흘러 요시다는 그때 오즈가 남긴 말을 기억한다. “영화감독은 다리 밑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창녀와 다를 바가 없는 걸세.” 오즈가 죽기 전 <가을 햇살>과 <가을 오후>에 출연한 여배우 오카다 마리코와 약혼한 요시다는 그때 병상에 있는 오즈를 병문안하여 이런 말을 듣는다. “영화는 사건이 아니라네. 드라마인 거야.” 요시다는 나이가 들어서야 오즈의 영화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두 번째 건넨 말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고백한다.

<젊은 날>

하스미 시게히코의 발표는 여전히 그만의 유희적 평론으로 일관된다. 그는 오즈의 영화가 “부모의 영화”, 또는 “아버지의 영화”라고 불리는 것의 난점을 제기하면서 오즈 영화의 여성들이 오즈적인 의미에서 “순수한 처녀”의 이미지와 다르게 일종의 ‘행위’를 통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하는가를 찾아낸다. 아버지의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인식되어온 오즈가 여배우들의 디렉팅에 얼마나 세심한 배려를 쏟았는가를 지적한다. 목에 두른 넥타이, 타월, 스카프를 던지는 것, 또는 줍는 것 등이 여주인공들의 적극의사표시를 반영하는 액션이라고 하스미는 주장한다.

한편, 인터내셔널 평론가들 중 샤를 테송은 <만춘>의 숏 분석을 통해 “일본적 자기 내부의 힘과 그 집착”에 대해 말한다. 다른 발표자 노엘 심솔로는 “인간의 일상에 대한 애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의 필연성 즉 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한 부조리를 표현하고 있다”고 오즈의 영화를 평가한다. 크리스 후지와라의 경우는 1951년부터 1965년까지의 네 작품 <오차즈케의 맛> <조춘> <맥추> <동경이야기>의 내러티브 분석을 통해 “실상 <녹차>와 <조춘>은 커플의 문제로, <초여름>과 <동경이야기>는 가족의 붕괴로 보이지만, 네 작품의 결말 모두가 ‘여행’과 ‘전근’을 중심축으로 구성”된다는 점에 주시한다. “이런 영화의 결말들은 영화 초반부에 묘사됐던 상황을 비판하고, 정정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오즈의 내러티브가 당김과 밀어냄, 또는 “인정과 부정”을 동시에 취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내러티브 구성요소와 지엽적인 것들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것은 “오즈가 그 의미없음을 받아들이지도 반대하지도 않기를 권유하는 태도”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중, 한국의 평론가 임재철은 “오즈 야스지로의 비인간적인 시선”이라는 발제문에서 요시다가 오즈를 비판했던 점을 재거론한다. 오즈가 한때 당시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일본적이고 회귀적인 낡은 풍조를 대표하는 것처럼” 여겨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의 젊은 감독들에게 오즈의 영화가 그토록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유”는, 오즈의 영화가 갖고 있는 “형식적인 급진성이 이해되지 못했던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 형식성의 예 중 하나로 필로 숏을 꼽고 있는데 “카메라에 의한 시선이라고도, 인물에 의한 시선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런 오즈적인 시선이 때로 관객을 애매한 입장에 놓이게 한다”면서 “차라리 오즈가 지향한 것은 지배적인 영화문법을 미묘하게 거스르는 자기만의 문법을 확립하여 지배적인 문법을 무력화하는 것이고, 한번 확립된 문법은 엄격하게 자신의 영화에 적용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오즈가 이런 비인칭적이고 탈중심적인 시선을 담을 수 있었던 건 그에게 일종의 반휴머니즘이 있었고”, “또 인간의 시선 자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면서 “결국 오즈가 추구했던 것은 자연스럽게 보이는 영화가 아니라 자연의 시선 그 자체가 기입된 영화가 아닐까” 라고 묻고 있다.

오즈를 떠나 오즈를 생각한다

허우샤오시엔의 오즈 헌정영화 <가배시광> 세계 첫 상영

허우샤오시엔이 오즈 야스지로 100주년을 맞아 그에 대한 헌정영화 <가배시광>(Coffee Jiko)을 쇼치쿠에서 만들어 완성했다. 이 영화는 12월12일 도쿄의 유라카초 아사히홀에서 오즈의 기일에 맞춰 세계 첫 프리미어 상영을 가졌다. 허우샤오시엔은 “<가배시광>은 나에게 있어서 큰 도전이었다. 이 영화는 우선 일본영화이다. 배우 전부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나는 현장에서 대사를 못 알아듣는다. (웃음)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문화를 넘어 다른 문화를 영화화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스토리 자체의 어려움보다는 일상의 디테일을 묘사할 때 외국인이어서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작업 소감을 피력했다.

오즈 감독과의 미학적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나의 작품과 오즈 작품의 스타일은 다르다. 내 영화의 숏은 너무 길다. 때때로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채 끝날 때도 있다”고 답변했다. 한때 <비정성시>를 만든 직후 허우샤오시엔은 오즈 영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가 오즈의 영화를 보기 전이었고, 오즈의 영화를 접한 뒤에는 그에게서 “형식이 아니라 정신을 배웠다”고 말한 바 있다.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를 한 가지만 짚으면, 오즈는 구도를 중시했다. 그렇지만, 허우샤오시엔은 그 구도를 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그런 점에서 <가배시광>은 또다시 궤도를 예측할 수 없는 허우샤오시엔의 영화가 되었다. <남국재견>과 <밀레니엄 맘보>로 이어지던 동적인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고, 80년대 <연연풍진> <동년왕사> 등의 작품을 생각나게 하는 스타일이 되었다. 이 점이 앞으로 매우 흥미로워 질 것이다).

프리랜서 작가 요코는 중고서점 주인 하지메와 친하게 지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커피숍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어느 날 요코는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자신이 임신했으며, 아이의 아버지가 타이완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부모는 그런 그녀를 근심스런 눈빛으로 쳐다볼 뿐 어떤 말도 쉽게 하지 못한다. 그즈음 요코는 전철과 기차를 타고 장웬예라는 30, 40년대 대만 음악가의 흔적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닌다.

<가배시광>은 “오즈에게 바치는” 헌정영화이면서도 오즈식으로 함몰되지 않고, 허우샤오시엔식으로 풀어내려는 의식적인 거리두기의 인상을 준다. 혹은 오즈의 정신을 어떻게 자기형식화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역사의 날줄과 개인사의 씨줄이 얽혀들어가는 허우샤오시엔 특유의 내러티브가 이 영화에서도 역시 전개된다. 허우샤오시엔은 “지금 도쿄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딸의 세대와 아버지 세대의 모습에 한해서 이 영화를 찍었다. 원래 영화를 만들기 전에 짜여진 각본이 머리 속에 있었는데, 고정된 그것이 점점 흐르듯이 변화해갔다. 그것은 편집을 하는 과정까지 이어졌고, 편집이 끝날 때쯤에는 ‘내가 오즈의 어떤 정신을 생각했으며, 내가 찍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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