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5] - 켄 로치 감독의<애 폰드 키스>

베를린에서 만난 영화 3 - 켄 로치 감독의 <애 폰드 키스>

멜로를 통해 서구의 신념을 의심하다

<애 폰드 키스>는 켄 로치와 작가 폴 래버티가 함께해온 ‘글래스고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켄 로치는 “글래스고는 오랜 투쟁의 역사가 있고 강한 문화를 소유한 도시이기 때문에 런던보다도 드라마틱하다”고 말하면서 그곳에서 <내 이름은 조> <스위트 식스틴>을 촬영했다. 그러나 <애 폰드 키스>는 그 영화들과도, 켄 로치의 다른 어떤 영화들과도 다르다. <애 폰드 키스>(Ae Fond Kiss)는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공동체 때문에 사랑의 고통을 겪는 젊은 연인의 이야기이고, 그 어느 때보다도 대중적인 재미가 있는 영화다. 카심은 글래스고에 살고 있는 파키스탄 가족의 외아들이다. 그 부모는 카심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카심이 여동생이 다니는 학교의 음악교사 로이신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 단단한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카심의 부모는 이미 사촌 여동생을 결혼 상대로 점찍어놓았기 때문이다. 카심이 가족을 저버릴 수 없어 고민하는 동안, 로이신은 신부로부터 관계를 청산하라는 경고를 받는다. ‘글래스고 3부작’은 애초 래버티의 기획이었지만, 그리고 <애 폰드 키스>는 리얼리티를 가진 보기 드문 연애영화지만, 켄 로치가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을 떨치기란 쉽지 않다. 폐쇄적인 혈통을 유지하고자 하는 가족과의 반목이나 장남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은 동양에선 그리 특별한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애 폰드 키스>는 불합리하거나 인간적이지 못한 요구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내세우고 있다. 멈칫 낯이 설면서도 뭔가 친숙한 기운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건 그 투쟁 때문이 아닐까. 평범한 연애를 지켜보면서도 더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애 폰드 키스>는 켄 로치만이 만들 수 있는 멜로영화일 것이다. 무엇보다 칠십이 멀지 않은, 고집센 좌파 감독이 침대에 파묻혀 토닥거리는 연인을 촬영하는 모습은 조금 유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마치 이십대로 돌아간 듯, 홀로 남더라도 사랑은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한 심정을 그리면서도, 사실적인 일상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강한 억양의 글래스고 사투리와 파키스탄어가 뒤엉킨 이 자그마한 사랑 이야기는 켄 로치의 영화로는 드물게도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다.

-<애 폰드 키스>는 비극적으로 끝나는 당신의 많은 영화들과는 다르다. 당신은 왜 이 영화를 택했으며, 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끝을 맺었는가.

=이 영화는 시나리오 작가 폴 래버티에게서 나왔다. 래버티가 글래스고에 사는 이민 2세대의 이야기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그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애 폰드 키스>는 가족에 관한 드라마이고, 정체성을 찾기 위한 싸움이다. 누구나 겪을 법한. 그러므로 이 영화의 인물들은 전혀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분투하는 건 꼭 파키스탄 이민 가족만의 이야기는 아니지 않겠는가. 해피엔딩이 들어맞는 소재였다. 물론 파키스탄 가정을 묘사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만들면서 가능한 모든 지점에서 고려하고자 했다.

-당신은 언제나처럼 비전문배우를 고용했다. 어떻게 배우를 발견하는가.

=나는 매번 다른 영화를 찍는다. 그 상황과 그 드라마에 맞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항상 불확실성을 동반하는, 일종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중요한 건 항상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시점이 명확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상대가 있었다. 하지만 <애 폰드 키스>는 균형을 잡아야 하는 영화다.

=맞다. 이 영화의 젊은이들은 파키스탄의 전통과 백인의 전통 모두로부터 억압받는다. 카심에겐 가족이 중요하고, 로이신은 이교도와 사귄다는 이유로 교회의 비난에 직면한다. 내가 카톨릭 사제를 희화화한 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가톨릭과 기독교의 감상주의라는 것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근본주의는 서구사회의 기본적인 문제 중 하나다. 그들은 거울을 보고 자신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은 불법이민이나 난민문제에선 장님이나 다름없다. 한 터키 난민가족은 그 동정심 때문에 서로 떨어져야 했고, 그 아이들은 지금 매우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 구역질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