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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 시리즈, 그 얄팍한 매력에 대하여 [1]

유치하고 황당하며 비현실적인 <논스톱> 시리즈는 어떻게 저녁 7시대를 평정했는가

〈LA 아리랑〉에서 시작하여, <순풍산부인과>에서 만개한 홈시트콤의 역사는 찬란했다. <남자셋 여자셋>을 비롯하여 <논스톱>과 같은 청춘시트콤은, 일상의 애환과 해학을 담는 홈시트콤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시리즈로서의 <논스톱>은 각각의 시즌들에 부침이 있긴 했지만 막강한 브랜드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어오는 <논스톱4>는 현재, 다른 시즌에 비해 비교적 빠른 시기에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의미해보이는 일화,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좌충우돌 하는 캐릭터들이 모여 성취한 한국적 소장르, 그 자잘한 재미를 짚어보았다. 편집자

시작 이후 한동안 덜컹거렸던 <논스톱4>가 드디어 자기 궤도에 오른 듯하다. 시리즈의 밝은 분위기를 잡아먹었던 윤지-전진-승은의 지루한 삼각관계는 끝났고, 한동안 방황했던 캐릭터들은 서서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아직 시리즈의 에너지는 <뉴 논스톱> 당시의 생생한 활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정도면 팬들도 안심할 만하다. 그렇다면 걱정을 멈추고 한번 질문해보자. <논스톱>은 도대체 어떤 시리즈인가?

우린 곧 생각만큼 답변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논스톱> 시리즈엔 우리가 동일한 하나의 시트콤에서 기대하는 일관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논스톱>엔 시리즈를 하나로 묶는 공통된 캐릭터들이나 설정은 없다. 존재하는 것은 <논스톱>이라는 제목, 그리고 지금까지 제목따라 이어진 비슷비슷한 농담들과 비슷비슷한 이야기들, 그리고 대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환상적인 공간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다루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시리즈에 대한 비판 역시 쉽지 않다. <논스톱>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난처하면서도 흥미로운 점은 이 시리즈를 옹호하기 위해, 시리즈에 가해지는 비판들을 꼭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논스톱>은 유치하고 황당한가? 물론이다. <논스톱>은 현실도피적인가? 물론이다. <논스톱>은 비슷비슷한 짝짓기 이야기를 끝도 없이 우려먹는가? 물론이다. <논스톱> 배우들의 연기는 서툴고 얄팍한가?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

필사적인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자생적 소장르

그러나 이 모든 비판들은 정작 이 성공적인 시리즈의 이해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논스톱4>가 침체기에 있었을 때, 많은 시청자들과 비평가들은 이 시리즈의 허황된 농담(“어떻게 교통사고가 났는데 핸들 하나만 남고 사람들은 멀쩡할 수 있는가?”)과 비현실성을 퇴보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그 비판은 똑같은 ‘단점’들을 공유하고 있는 <뉴 논스톱>과 <논스톱3>의 인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연기도 마찬가지. 아무도 교과서를 서툴게 읽는 듯한 앤디의 고시생 연기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 서툰 연기와 어설픈 캐릭터를 받아들이고 좋아한다. 이들은 모두 원론적이고 기계적인 비판에 불과하고, <논스톱> 시리즈의 장점들은 이런 비판들이 찍히는 표적 밖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표적은 어디에 있는가? <논스톱>은 결코 복잡한 시리즈도 아니며 깊이있는 시리즈도 아니다. <논스톱>은 젊은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얄팍한 농담을 젊고 예쁜 신인 배우들에 달아 던지는 것 이외에는 어떤 야심도 없다. 그렇다면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전쟁터와 같았던 저녁 7시대를 평정한 <논스톱>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답은 그냥 그 얄팍한 농담들을 다른 시리즈들에 비해 “잘했다”고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논스톱>은 시리즈를 정의하는 특정 아이디어의 산물이 아니라 기존의 성공을 반복하기 위해 투여한 방향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1996년 <프렌즈>를 벤치마킹한 ‘청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 대성공을 거둔 뒤로, MBC는 이 시트콤의 명성을 잇기 위해 수많은 후속작들을 내보냈다. 당시 인기였던 최불암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최불암을 주연으로 한 가족 시리즈 <점프>나 만화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가문의 영광>은 모두 실패였다. 그뒤를 이은 <논스톱> 역시 대단한 성공작은 아니었다. 여기서 제목의 혼선이 생긴다. 내가 지금 막 언급한 <논스톱>은 지금까지 우리가 이야기해온 시리즈 <논스톱>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벤트 회사와 디자인 회사에 취직한 사회 초년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시리즈는 우리가 지금 <논스톱>이라고 부르는 시리즈와 거의 아무 연관성도 없다. 우리가 지금 <논스톱>이라고 부르는 시리즈는 이 시리즈에서 제목만 빌려 문화대학 사회체육과 학생들이라는 전혀 다른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뉴 논스톱>에서 시작된다. 그것도 한동안 하숙집에서 진행된 이야기를 대학교 기숙사로 옮기고 배우들 상당수를 물갈이한 뒤에.

그렇다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사체과라는 무대가 코미디에 더 나은 소재였던 걸까? 그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 끌수록 사체과라는 공간의 특수성은 약해졌다. <논스톱>의 사체과는 실제의 사체과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어떤 대학생활도 제대로 모사하지 못했거나 모사하지 않았다. 아마 후자가 더 맞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본 궤도에 오른 뒤 사실성은 완전히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여간 사체과는 <뉴 논스톱>과 <논스톱3>에 명목상의 무대를 제공해주다가 논스톱 밴드라는 동아리로 무대를 옮긴 <논스톱4>가 시작되자 조용히 뒤로 퇴장했다. 그나마 같은 공간과 학과, 몇몇 고정 캐릭터들이 둘 사이를 연결해주던 <뉴 논스톱>과 <논스톱3>와는 달리 <논스톱4>는 앞의 시리즈들과 어떤 구체적 연관성도 없다.

<뉴 논스톱>이 자기 자리를 찾는 동안 일어났던 일들은 좀더 간단하고 설명하기 재미없다. 어느 순간부터 이 시리즈는 배우들에 맞는 캐릭터와 농담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남자 셋 여자 셋> 때부터 가지고 있던 감을 되찾은 것에 불과했다. 어른들과 가족의 존재가 좀더 확실하게 제거되고 농담들과 스타일이 불연속면 없이 서서히 진화한 것을 제외하면, 이 시리즈는 <남자 셋 여자 셋>의 성공 요인들을 그대로 반복했다. 단지 <점프>와 <가문의 영광>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이들은 성장했고 더 세련되어졌다. 심지어 그들은 귀환 목표로 잡은 <남자 셋 여자 셋>을 어느 순간부터 능가하기 시작했다. <남자 셋 여자 셋>의 옛 에피소드들을 한번 구해다보라. 농담이 얼마나 구태의연하고 진부하며, 설정은 얼마나 극단적인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지. <논스톱>은 하나의 시리즈로 읽혀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 제목을 단 시리즈들이 하나의 작품이 아니기도 하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발전은 이전의 작품들인 <남자 셋 여자 셋> <점프> <가문의 영광>과 같은 작품들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논스톱>은 하나의 작품을 지칭하는 제목보다는 저녁 7시에 방영되는 MBC 청춘 시트콤 장르의 명칭에 가깝다. 우리가 다루어야 할 것은 작품이 아니라 필사적인 시행착오 끝에 계획없이 자생한 소장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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