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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4]

트랜스젠더영화 해외시장에서 각광

타이는 게이나 트랜스젠더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 그 때문인지 트랜스젠더영화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해외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장르영화이기도 하다. 용유스 통큰턴의 <철의 여인들>(2000)로부터 촉발된 트랜스젠더영화의 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지난해만 해도 용유스 통큰턴의 <철의 여인들2>(2003)를 비롯, 포이 아농의 <치어리더 퀸>(2003), 레오 키티코른의 <투씨 이병 구하기> 등 여러 편의 트랜스젠더영화가 만들어졌다. 이들 작품들이 대부분 코미디영화의 범주에 속하는 반면, 올해 공개될 에카차이 우에크롱담의 <아름다운 복서>는 유명한 타이복서였다가 여성으로 성전환한 실존인물 농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처음으로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을 진지하게 묻고 있는 작품이다. 액션영화는 타이 상업영화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가능성은 <옹박>(2003)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감독 프라차야 핀카엡은 한 시절을 풍미했던 액션영화의 대부 판나 이티크라이 감독과 손을 잡고 그가 길러낸 실제 무에타이의 고수 짜파넘(파놈 이럼??)을 기용하여 전혀 새로운 액션의 <옹박>을 발표했다. 지난해 <옹박>은 타이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고, 해외 수출에서도 기록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제작사인 사하몽콜사는 이 참에 회사의 이미지를 ‘액션영화의 명가’로 바꾸려 하고 있다. 지난 1월 말에 개봉되어 개봉 일주일 만에 5천만바트(약 15억원)의 수입을 올린 펫차이 웡쿰라오의 <보디가드>(2004)는 액션을 가미시킨 코미디영화이다(액션장면은 프라차야 핀카엡이 지휘를 하였다). 그리고, 방콕영화제 기간 중에는 프라차야 핀카엡과 짜 파넘 콤비의 새 영화 <톰얌쿵>의 제작발표회가 있었다. 이번에는 짜 파넘이 호주에서 베트남 갱단에 납치된 여동생을 구하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호주의 필름코미션으로부터도 적극적으로 지원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사하몽콜사의 전략은 너무나 명확하다. 짜 파넘을 ‘타이의 성룡’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차별화된 액션영화, 그리고 월드스타를 만들어내겠다는 사하몽콜사의 시도가 이제 시작된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최근 만난 타이 영화인들은 한결같이 타이영화의 위기를 이야기하곤 했다. 흔히, 내부의 문제는 바깥에서 더 잘 보인다고 하는데 최근 타이영화의 경우는 그 반대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최근의 타이영화가 확실히 위기이기는 하지만, 희망을 가질 만한 근거 역시 상당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최근의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적인 면에서는 후반작업 기술의 수준과 경쟁력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뛰어나며, 메이저 회사들의 자본이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적어도 이 점에서는 국내의 메이저 회사들보다도 더 안정적이다. 타이의 메이저 회사들 대부분이 모회사가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이거나 언론미디어 회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타이 영화계에 전문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인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이것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1997년 논지 니미부트르, 펜엑 라타나루앙, 옥사이드 팡이 한꺼번에 데뷔한 이후 타이영화에 대해 높아진 신뢰는 급격한 자본유입이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정작 영화를 만들 인력은 태부족이었다. 즉, 돈은 있는데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반은퇴상태에 있던 중견급 감독들이 대거 현역으로 복귀한 것이 그 하나이고, 이른바 ‘묻지마 투자’를 통해 신인이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메이저 회사가 장편 실험영화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GMM사가 아핏샤퐁 위라세타쿤의 <아이언 퍼시의 모험>(2003)에 투자한 것이 그것인데, GMM쪽은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투자한 작품이 진출하면 회사의 이미지가 올라갈 것을 염두에 두고 투자를 하였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넘쳐나는 투자 여력 때문이다.

이타이 최대 메이저사인 사하몽콜필름 사무실 내부. 이곳에는 80명이 근무하고 있다.

옥석이 가려지는 중하지만 복귀한 중견감독들 중에서는 다시 옥석이 가려지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할 감독은 우돔뎃 마노프와 번디트 리타콘이다. 두 사람 다 타이영화에서 금기시돼왔던 소재에 과감히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우돔뎃 마노프는 70년대부터 독립영화를 만들어왔으며, 81년작 <사회의 주변에서>는 권력의 부패에 항거하는 노동자 이야기를 다뤄 상영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그 역시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하다가 1997년 이후 현장에 다시 복귀를 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프롬피람 피살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타이의 한 시골마을에서 마을 남자들에게 집단강간을 당하고 살해된 프로피람이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놀랍게도, 영화를 보다보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부분적으로는 임권택 감독의 <안개마을>(1982)과 유사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남성중심 사회의 위선과 이중적 모습을 매우 적나라하고 신랄하게 드러내고 있다. 번디트 리타콘은 영화계를 떠나 있었던 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았다. 1995년 이후 <사탕>이라는 작품으로 2000년에 다시 복귀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80년대에 주로 청춘물을 만드는 가장 인기있는 흥행감독이었다. 그런데 그가 2001년에 발표한 <달사냥꾼>은 1973년 10월의 민주항쟁 이후 정글로 들어가 무장투쟁을 벌였던 공산주의자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타이의 검열체제로 미루어볼 때 이 작품은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경우였다(타이영화의 검열은 지금도 정부의 안보담당 기구에서 맡고 있다). 그런데도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키며 이 작품은 완성되었고, 국내외적으로 절찬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지금 두 사람은 미스터리공포영화(마노프의 <도마뱀 여인>)와 SF 미스터리영화(리타콘의 <유성>)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여성 프로듀서 듀앙카몰 림차로엔이 암으로 타계하였다. 이제 겨우 39살의 젊은 나이였다. 그녀의 타계는 1997년에 시작된 타이영화의 부활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전망케 한다. 그녀는 타이영화의 제작시스템을 체계화하고, 타이영화를 해외로 진출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었다. 특히, 그녀와 논지 니미부트르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됐었다. 그녀는 논지와 만나 ‘시네마시아’라는 독립영화사를 차렸고, <잔다라> <몬락 트랜지스터>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 <쓰리> 등을 제작하면서 타이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젊은 감독들의 대모와도 같았던 그녀의 죽음은 타이 영화계로서는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생전에 일구어놓았던 텃밭이 이제는 또 다른 젊은 감독들에게 수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는 메이저 회사 자본과 해외자본을 끌어들여 이른바 작가영화를 제작하였고, 이러한 경험이 곧 여타 신인감독들에게도 확산되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에 의문을 던지고 싶다.”

신작 <시티즌 독>을 준비하고 있는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던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은 현재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3년 만이다. 그동안 타이영화의 제작편수는 4배가 증가했다.

-<검은 호랑이의 눈물>을 만들었던 계기를 말해달라.

=어릴 때부터 옛날 타이영화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를 리메이크하고 싶었다. 색이나 스타일을 모방했다. <검은 호랑이…>의 내용은 정말 단순하다. 분명한 선악구도에 멜로드라마다. 구상을 하면서도 이게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광고계에서 일했었기 때문에 그 경험을 살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어려웠다. 영화가 워낙 특이하니까 사람들이 잘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파이브스타 프로덕션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러나 그쪽도 단독으로 나서긴 부담이 클 것 같다고 해서 필름 방콕과 합작했다. 그리고 아주 망했다. (웃음) 흥행은 별로 안 좋았다. 방콕에서 100개 스크린에 걸었는데 평론가들도 처음엔 안 좋아했다.

-‘예술’영화가 스크린을 100개나 잡다니, 대단하다.

=보통 타이영화가 잡는 스크린 수다.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가 문제다. 극장에서는 3일 정도 시험삼아 걸어보고 조정한다. 내 영화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웃음)

-3년간 공백이 있었다. 뭘 했나.

=광고만 만들었다(그는 현재 메이저 광고회사의 직원이다. 그에게 감독 일은 서류상 부업이다).

-CF와 영화를 병행하는 이유는 뭔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CF로 돈 벌어서 정말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펜엑도, 프리랜서이긴 하지만 나와 같은 회사에서 CF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신작 <시티즌 독>에 대해 설명해 달라.

=코미디다. 아주 웃기는 영화다. 남자와 여자주인공 모두 방콕에 사는 소시민이다. 남자 주인공은 공장직원, 건물 경비, 택시기사 등을 전전하면서 살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어떻게 보면 소시민보다도 더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다. 여자 주인공은 빌딩 잡역부로 청소 일을 한다. 화장실에 가면 볼 수 있는 여자다. 소설이 원작이다. 이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에 의문을 던지고 싶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 꿈도 없이 힘들게만 사는 사람들도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묻고 싶다.

-제작규모와 촬영일정은.

=제작비는 2천만바트 정도이고, 역시 파이브스타에서 제작한다. 나 때문에 영화사가 망할지도 모른다. (웃음) 촬영은 1월에 시작해서 3월쯤에 끝날 것 같다. 10월쯤에 완전히 완성되지 않을까.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합치는 거라서 후반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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