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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이 보여준 여성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 [2]
오정연 2004-03-19

“장금아. 사람들이 너를 오해하는 게 있다. 니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데 있어. 모두가 그만두는 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시작하는 것.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

-한 상궁의 대사 중

유일무이한 목표에 정진하는 노력형 천재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에서 유난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한 상궁이나 수의녀 장덕, 신 주부와 정 주부 등 장금 역시 만만찮은 스승 복을 자랑한다. 그러나 한 상궁, 장덕과 장금의 경우는 평범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뿐 아니라 삶의 태도와 방식까지 관여하면서 조언을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일종의 멘토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비록 장금의 수라간 나인 시절이 예정보다 길어지면서 제주도에서 수의녀와 장금이 맺는 관계와 유대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으로 처리되었지만 한 상궁과 장덕은 엄연히 각기 다른 형태의 매력적인 멘토를 대변한다. 한 상궁은 장금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사람이다. 반면 장덕은 다소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담임처럼, 내색하고 있지 않다가 중요한 순간이면 언제나 힘이 되어준다. 양쪽 모두 장금이 목표하는 복수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복수는 그만두고 편한 길을 가라할 때, 혹은 의술을 행하는 자가 사사로이 복수심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모범 답안 같은 조언을 하고 있을 때, 한 상궁은 장금에게 다시 궁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죽어갔고, 장덕은 장금과 비슷한 고민에 빠지게 된 자신의 상황을 말하면서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이로 인해 각각의 현명한 여성 멘토들은 <허준>에서 유의태가 보여준 휴머니즘이나 살신성인을 넘어 진정성을 획득한다.

물론 신 주부와 정 주부 역시 장금의 성장에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해주는, 명실상부한 스승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정 주부는 미각을 잃어버린 장금을 치료해주었고, 최초로 약초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다. 신 주부는 장금의 의녀수련을 담당하면서, 의술을 행하는 자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단정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그들은 남성들이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끝내 장금을 이해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따라서 내의원에서 장금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도 그들은 장금을 믿지 못한다. 사실 이것은 일정 부분 남성과 여성의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남성들은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대안을 얻어야 한다고 믿지만 여성들이 대화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대안이 아닌 공감이다. 일단 공감이 이루어지면 이후 해결책은 자연스럽게 도출되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너에게 걸어야 한다. 중전이라는 이 자리를 걸어야 해. 니 마음을 믿는다. 또한 니 말도 믿는다. 하나 마음이나 말이 니 재주나 실력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너를 믿어야 하느냐?”

-중전의 대사 중

이렇게 해서 ‘한낱’ 의녀가 쟁쟁한 내의원들을 뒤에 한줄로 앉혀놓고 임금을 손수 진맥하는 장면에서 여성적 파트너십의 힘은 극대화된다. 의식을 잃은 임금은 누워 있고, 의녀의 후원자인 중전이 이 모든 과정을 관전한다. 그리고 그뒤로 체통있는 조정의 대신들이 즐비하게 앉아 있다. 이 모든 상황이 풀숏으로 제시되는데 그 전복의 쾌감이 상당하다.

‘우린 친구 아이가’로 대변되는 남자들의 우정이, 좋게 말해서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말이 필요없는 관계라면 여자들의 우정은 말로 표현하고 현실적인 도움이 필수적이다. “장금아 나도 데려가줘. 나도 같이 갈래, 장금아.” 언제나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연생의 애틋한 대사들은 헤어지는 연인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 애틋함은 장금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연생은 임금을 지아비로 모시고, 임신을 한 이후에도 변하지 않음으로써 그 진심을 증명했다. 언제나 자신에게 매달리는 연생을 보살피는 장금과, 후궁이 된 뒤에도 변함없이 장금을 후원하는 연생의 관계는 임금이나 민정호가 그들과 맺는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간절하다. 또한 장금이 의녀수련기간 만난 신비의 경우, 연생처럼 애틋하진 않지만 장금의 순발력과 판단력을 자신의 통찰력과 지구력으로 보완하면서 서로를 후원하는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그간 드라마에서 이처럼 본격적으로 사심없이 여성들의 연대를 다룬 경우는 흔치 않았다. 따라서 그녀들의 연대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은, 레즈비언 코드를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누구나 느끼는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후반부에 돋보이는 중전과 장금의 관계는 어떤가. 중전이 병상의 임금을 대신하여 장금에게 비밀 프로젝트를 맡길 때, 장금이 숱한 남자의원들을 두고 임금을 직접 시료하겠다고 말할 때, 우리는 서로의 운명을 걸고 신뢰하는 자의 모습을 본다. 여태껏 드라마에서 웬만한 남성들끼리도 가지지 못했던 믿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때문에 마찬가지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장금을 도왔던 민정호는 오히려 빛을 발하지 못한 채 그렇고 그런 사랑의 감정에 기반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간 사극 속에서 중전은 각종 권모술수를 ‘뒤에서’ 종용하는 요부이거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포용하려는 국모로 그려져왔기에, 스스로 정치적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려했던 한 인간으로 제시되는 <대장금>의 중전 캐릭터는 더욱 흥미롭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

일종의 복수스릴러로 돌변한 후반부에 비하여, 장금의 수라간 생활을 그렸던 전반부는 온갖 사사로운 일들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먹고 마시는 일의 중함은 거의 종교의 수준으로 승화되었고, 종종걸음으로 궁궐 안을 돌아다니는 궁녀들은 그 어떤 사대부들보다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장금을 따라 속도감 있게 보여지는 수평 트래킹의 빈번한 사용은 현대극 속의 전문직 여성을 그리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고, 그동안 사극에서 선보이지 않았던 궁궐 안 모습이 새로운 시점에서 등장했다. 익숙하게 변주되던 조정이나 각각의 전각 내의 모습들이 다르게 제시됨은 물론이고 상궁의 처소처럼 아무도 궁금하게 여기지 않았던 장소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완전히 감추어져 있었던 그러나 사실 궁궐 안의 모든 일을 가능케 했던 또 다른 이면이 비로소 조명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을, 조정의 정치라는 상부구조를 뒷받침하던 각종 하부구조들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본다면 지나친 오버일까. 어쨌든 사사로움을 다루는 특별한 형식으로, 눈에 핏대를 세우는 여인들의 얼굴을 부담스럽게 클로즈업하면서 카리스마를 드러내던 기존의 방식이 오히려 오버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이로써 새로운 내용은 새로운 형식을 통해 전달된다는 불변의 진리가 확인되었다. 풍부한 맥락을 반영하는 느슨한 마스터숏이 인위적으로 조장된 빽빽한 클로즈업보다도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가게 되는 것은, 그 맥락이, 이제는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어떤 욕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밌는 것은 그러한 욕망의 대변이, 우리가 가장 보수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극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픽션과 논픽션이 미묘하게 겹쳐 있는 사극이기에 이러한 지점들이 가능해졌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창조적인 개입이 보장되면서도 ‘지금의 현실’과는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가능한 장르이기에. 그러나 이 새로운 드라마에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동의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또 다른 가능성이다. 그 정도의 가능성이라도 너무나 절실한 현실이기에 <대장금>은 더욱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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