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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 열풍의 핵심은 무엇인가 [1]

당신이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그려낸다

지난 2월25일 북미에서 개봉된 멜 깁슨 감독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관객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자막영화로는 최고 기록이었던 <와호장룡>을 넘어서는 것은 기본이고, 5일간 1억2520만달러를 벌어들여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기록마저 뛰어넘었다. 예수가 마지막으로 지상에서 머물었던 12시간을 그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종교영화이지만, 어떤 블록버스터 이상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제는 종교와 신앙마저도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버린 것일까? 반유대주의를 선전한다며 유대인 단체 등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은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하여 자신의 답을 구하’기 위해 종교 관련 서적을 구입하는 등 관련 상품들도 함께 호황을 누리고 있다. 4월2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일찌감치 시사회를 가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무엇이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인지, 슬쩍 막을 들쳐봤다. 또한 영화평론가 데릭 엘리가 ‘서구인’으로서 바라보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현상을 실었다(<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대한 좀더 자세한 영화적, 종교적 논쟁은, 개봉 이후에 다시 마련될 것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제작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멜 깁슨의 야심은 단순명료하다. 신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인 예수의 생애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거나 독창적인 종교적 의미를 찾아내겠다는 생각은 없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가 못 박히기 전, 마지막 12시간만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영화는 12사도와 최후의 만찬을 마친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를 하는 시간부터 시작된다. 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를 팔았고, 예수는 체포되어 유대인 제사장들에게 끌려간다. 멜 깁슨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4복음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했다. 성경에서 묘사된 사건과 상황들을 한데 모았고, 성서에서 나오는 말들을 그대로 쓴다. 유대인 제사장과 군중이 예수를 끌고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가지만, 그는 재판을 거부한다. 하지만 갈릴리인의 왕인 헤롯 역시 예수를 돌려보낸다. 혹시 폭동이 일어난다면 문책을 당할 것이라 생각한 빌라도는, 살인자인 바라바와 예수 중에서 누구를 살릴 것인지 군중에게 묻는다.

절대신앙에 기초한 재현에의 열망

멜 깁슨은,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개봉하기 전부터 화제가 된 것은, 영화의 소재나 주제가 아니라 ‘묘사’ 때문이었다. 빌라도는 어떻게든 예수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기 위하여 채찍형을 언도한다. 예수에게 가해지는 채찍질은 지금까지 어떤 영화에서 나왔던 채찍장면보다 잔인하다. 나무줄기에서, 가죽에 금속을 단 채찍으로 도구가 바뀌자, 채찍에 맞은 예수의 몸에는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온통 팬 상처가 가득하다. 사방에 피가 튀고, 살점이 떼어져나가는 모습도 생생하게 보인다. 그 광경은, 공포영화의 지옥장면에서나 보던 것처럼 세밀하고, 잔인하고, 끔찍하다. ‘충격’을 주어 ‘믿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려 했다는 멜 깁슨의 말처럼,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놀라운 충격을 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사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 있으면, 굳이 ‘종교영화’에서 이런 잔인한 장면이 필요할까란, 의문이 든다. 하지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일반적인 영화의 평가기준이나 취향이 통용될 수 없는 영화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재현에의 열망이고, 그 열망의 근원에는 절대적인 신앙이 있다. 멜 깁슨은 12년 전 신앙의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며 고통과 용서, 죄를 사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구하던 멜 깁슨은 예수의 수난을 둘러싼 성서와 역사적 사건을 연구하게 되었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희생의 잔혹성과 함께 그 위대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동시에 진정한 서정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오래 지속되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믿음, 희망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잔혹한 희생을 인간의 육체로 겪으면서,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왕국의 왕으로서 죽어갔던 예수를 그리는 것이 멜 깁슨의 유일한 목표였다. 잔혹함은, 결코 멜 깁슨이 피해갈 수 없는, 아니 정면으로 응시해야만 하는 주제였다.

멜 깁슨은 모든 것을 철저한 재현으로 일관한다. 모든 인물과 사건은 ‘극사실주의’로 묘사된다. 보통의 영화라면, 외국이라도 영어를 쓰는 것이 다반사다. 하지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하여 모두 당대에 쓰였던 언어로 대화한다. 예수와 제자들 그리고 유대인은 아람어로, 로마인들은 ‘거리의 라틴어’를 사용한다. 애초에 멜 깁슨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자막없이, 그대로 상영하려고 계획하기도 했다. 철회하기는 했지만, 멜 깁슨의 의도는 어떤 특정의 대사나 상황을 전달하여 관객을 끌어들이거나 공감을 주는 것이 아니다. 국교가 아니라도, 서구인이라면 누구나 기독교적인 바탕에서 태어나고, 성장한다. 그들에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는 것이고,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다면 이미 상세하게 알고 있다. 멜 깁슨은, 모든 것이 아람어로 진행되어도 관객은 그 상황이 무엇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충분히 안다고 믿었을 것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성서가 진리라 믿는 멜 깁슨이, 그 진리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관점에서 그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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