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 열풍의 핵심은 무엇인가 [2]

멜 깁슨의 신앙, 지켜보거나 느끼거나

하지만 열정과 신앙심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논쟁에 휩싸인 것은 그런 이유다. 자세하게 묘사된, 예수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유대인 제사장과 군중은 예수의 죽음을 광적으로 원한다. 그리고 마태복음 27장 25절에 나오는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라’라는 말을 한다(아람어로는 말하지만, 영문자막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후대에 유대인 박해의 근거가 되었던 그 구절을, 멜 깁슨은 ‘재현’이라는 이유로 감행한다. 예수를 죽인 것이 바로 유대인이었다고 말하는 듯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표현은 분명 오해의 여지가 있다. 멜 깁슨을 비롯한 그 누구도 유대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영화 속의 사건들로만 보았을 때는 책임이 있다. 게다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본 바티칸쪽에서는 ‘예수의 수난의 역사적 사실을 복음서의 설명에 따라’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대인 단체에서 항의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멜 깁슨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영화 곳곳, 아니 전체에서 드러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기독교 신자를 위한 영화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신자가 아닌 개인의 입장에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매우 단순하고 평이한 영화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본 정도다. 극사실주의로 모든 것이 묘사되었지만, 그것이 ‘역사적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치적 입장이나 역사적 상황을 개입시켜 해석할 수도 없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대한 적합한 평가는, 기독교 신자가 보기에 예수의 수난의 의미를 얼마나 진실하게, 가슴으로 전해지도록 그려냈는가, 일 것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놓고, 멜 깁슨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찬 역시, 그의 신앙심이 얼마나 독실하고 깊은지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닐까. 신앙심은 결코 논리나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고보니 멜 깁슨은 M. 나이트 샤말란의 <싸인>에서, ‘믿음’을 회의하지만 결국은 그 무조건적인 믿음의 의미를 깨닫는 신부로 나온 적이 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그런 믿음에 관한 영화다. 그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자라면 그저 성실한 종교영화이지만, 믿음에 동의한다면 그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둘러싼 사건일지

2002. 9 <패션>의 프리프로덕션 시작되다. 멜 깁슨, 감독과 공동각본에 사재 2500만달러를 들여 제작자까지 겸하다.

2002. 10 <패션>이 영어가 아니라 고대 라틴어와 아람어로 제작될 것이라고 알려지다. 멜 깁슨, “내 영화는 사실적인 재현이 목표”라며 영어자막도 없다고 못 박다.

2003. 1 로마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패션>, 제작 완료하다.

2003. 3 일부 유대인 신학자들이 멜 깁슨의 영화사 아이콘 프로덕션을 찾아가 대본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다. 그리고 깨끗이 거절당하다.

2003. 7∼8 <패션>의 예고편이 인터넷에 뜨다. Ain’t It Cool 사이트와 Harvest.org 등에 올라온 예고편을 보려는 네티즌들 때문에 일부 사이트 마비되다. 반명예훼손연맹(ADL)이 멜 깁슨과 <패션>을 비난하고 나서다. ADL 대표 에이브러햄 폭스먼, “예수의 죽음이 유대인들의 잘못인 양 묘사했다. 이 영화가 개봉되면 반유대주의 논쟁이 다시 불붙을 것”이라고 주장하다.

2003. 10 <패션>, 배급사를 구하지 못하고 계속 헤매던 중 <메멘토>를 배급했던 뉴마켓 필름과 계약하다. 주연배우 짐 카비젤과 조감독 잰 미셀리니가 영화 촬영 도중 벼락을 맞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다. 제목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수정하다.

2003. 11 할리우드 관계자와 일반 관객을 일부 모아놓고 시사회를 열다. 그날 아침, 프린트 한벌을 도난당하다. 며칠 뒤 <뉴욕 포스트> 신문사 건물 앞에서 해적판 프린트가 발견되다.

2003. 12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DVD로 <패션…>을 감상하고 나서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고 평하다. 이후, 이 발언이 반유대주의 논쟁에 바티칸을 끌어들이게 될까 걱정한 바티칸 관계자들이 황급히 교황의 발언을 수습하다.

2004. 2 이스라엘의 종교정당 대표, <패션…>의 이스라엘 개봉 금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다.

2004. 2. 25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미국 전역 2천여개 극장에서 개봉, 2360만달러의 성적을 내다. 관람 도중 구토, 기절한 관객뿐 아니라 사망자도 발생하다. 사운드트랙, 발매 첫주에 약 4만9천장이 팔리면서 기록 3위에 오르다.

2004. 3 예수 관련 서적 판매가 급증하다. 스티브 마틴, <패션…>이 돈에 혈안된 쇼비즈니스 전략이라며 멜 깁슨을 강력 비난하는 칼럼을 <뉴요커>에 기고하다. 유대인 감독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의 DVD 출시 기자회견에서 <패션…>에 관한 어떤 질문에도 함구하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