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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 열풍의 핵심은 무엇인가 [3]
박혜명 2004-03-19

얄팍한 영혼이 거둔 상업적 성공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센세이셔널리즘 비판

데릭 엘리/ <버라이어티> 수석 영화평론가

각 영화관객 세대는 자기가 받아 마땅할 역사 서사물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어떻든 간에 신세기 영화에 어울리는 반영이다.

영상에 찌들고 MTV에 길들여진 세대를 위한 성서드라마로서 이 영화는 과잉 자체를 메시지로 받아들이며 영화와 텔레비전 폭력을 종교로 삼는 관객을 위한 영화이다. 또한- 우연에 의한 것인지 의도된 것인지 몰라도- 이 영화는 <블레어윗치> 이후 미국에서 나온 가장 영리하게 마케팅된 영화이다. 이 영화가 지금까지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것은- 3억달러를 거둬들일 전망인 듯한데- 요즘 다른 할리우드 제작물의 거의 절반이 갖는 무미건조한 보수성과 미국 이익단체들의 상업적 인식을 생성할 수 있는 힘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미국 평단의 의견은 대략 50 대 50으로 갈렸지만, 이 영화는 바로 그것이 불러일으킨 격한 감정들- (복음서 자체가 분명히 그리스도의 죽음을 유대인 탓으로 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조직이 영화의 ‘반유대주의’를 한탄하는 것에서부터 영화평론가들이 드디어 무언가 정열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이 나타나 기뻐하는 것- 때문에 화젯거리가 됐다(이 기사 역시 다를 바 없다. 만일 이 영화를 메이저 할리우드 스타가 만들지 않았고, 북미 2800개 스크린에 개봉하지 않았고, 미국의 마케팅 연동장치의 국제적 위력 덕을 보지 않았다면, 독자 여러분도 <씨네21>에서 자막 입힌 그리스도영화에 관한 기사를 읽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영혼을 가진 자, 그 이름 멜 깁슨

우선적으로 말하자면, 멜 깁슨의 이 영화는 처음 발표된 바와 같이 작고, 비의(秘儀)의, 리얼리즘영화가 절대 아니다. 와이드스크린이며 의상과 촬영이 CGI(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표현)와 특수효과(사탄의 시험 표현)를 포함하여 멋지게 된 영화이다. 깁슨이 진정으로 개인적인 작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했다면 이런 외양을 갖추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사람을 할리우드에서 빼낼 수 있다 하더라도 할리우드의 영향을 사람에게서 빼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영화의 외견상 “리얼리즘” 역시 문제삼을 만하다. 영화는 (셈계의) 아람어와 라틴어로 대사를 쓴다 해서 드라마 면으로 득하는 것이 별로 없다. 단지 겉치레의 리얼리즘 한층- 그리고 독특한 홍보 관점을 보태주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 라틴어로 찍힌 유일한 다른 영화는 1976년 영국에서 제작된 데릭 저먼의 저예산 동성애주의영화 <세바스찬>(Sebastiane)으로, 이 영화 대사는 부자연스럽고 설득력이 없었다. 이것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이탈리아인들이 대부분 라틴어 대사를 맡음으로써 좀더 유창해지긴 했지만, 일부 발음(뿐만 아니라 어휘까지도)이 고대 라틴어보다 오히려 오늘날 이탈리아어에 가까울 때가 많다.

리얼리즘을 주장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 영화의 극심한 폭력성 때문에 무산된다. 로마 병정들이 예수를 오랫동안 피고문한 부분은 역사적으로 의문스러울 뿐만 아니라(왜냐하면 로마 군사는 전문 군인이었지 깔깔대는 사디스트는 아니었기 때문에), 믿기 어렵다. 영화 속에 나타난 학대 정도를 받았다면 거대한 목조 십자가를 끌고 가기는커녕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순수하게 드라마틱한 면에서만 평가해도 영화는 부족하다. 단지 그리스도 생의 마지막 12시간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멜 깁슨은 그리스도의 수난이 그리스도의 목회활동 전체, 이른바 “지상에서의 시간”의 절정으로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무시한 것이다. 이 수난이 아무런 드라마틱한 긴장감의 고조없이 동떨어져 재현됐을 때, 그저 고집과 고난의 일람에 그치게 될 뿐이다.

시나리오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그리스도의 목회활동에 대한 짤막한 플래시백을 가미했는데, 이것들은 영화의 감정적 질감을 더해주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특히 대부분의 다른 인물들이 이름으로 소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색채를 드러내는 유일한 역할은 본디오 빌라도로서, (아이러니하게도) 유대계 불가리아인 배우 흐리스토 나우모브 쇼포브가 연기한 것이다. 그리스도 역할에 미국 배우 제임스 카비젤은 무미건조하다. 그리스도의 어머니 역과 막달라 마리아 역에 유대계 로마니아인 여배우 마이아 모르겐스턴과 이탈리아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는 그저 중세의 교회당 성화상처럼 카메라에 시선을 보낼 뿐이다.

너무도 빈약한 21세기 역사 서사물의 시금석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보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실제 개인적인 작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 아니라 멜 깁슨에 관한 것이다. 영화의 핵심은 육체적 고난이다. 가톨릭 교회의 극단적이고 엄격한 순수주의 종파 교인인 것을 떠나서(가톨릭 교회 자체도 고난과 참회의 교리에 근본을 두고 설립됐지만), 깁슨은 그의 연기자 커리어 동안 마조히스트적인 면을 강하게 드러내는 인물 역을 곧잘 선택해왔다(<브레이브 하트> <리쎌 웨폰> <랜섬> <매드 맥스> 등).<벤허> <왕중왕> <엘 시드> <클레오파트라> <바라바> <로마제국의 쇠망> <성서> 등과 같은 50년대와 60년대의 위대한 역사 서사물들에 감탄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이 장르의 부흥이 좋은 소식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영화들 중 최고의 것은 개종한 사람에게 설교를 하는 쓸데없는 참견을 하거나 충격성의 가치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 영화들은 다이얼로그, 아이디어, 훌륭한 연출법, 그리고 명백하고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성을 이용했다.

1962년작 <왕중왕>은 당시 많은 평론가들의 비웃음을 받았지만, 그 이후 복음서를 드라마틱하게 재해석하고 심지어는 20세기 시오니즘에 대한 풍유까지 포함하여 정치적인 영화로 인정받게 됐다. 영적인 것과 리얼리즘을 혼합한 것이라면 프랑코 제피렐리의 1978년작 <나자렛 예수>가 영국 배우 로버트 파웰의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연기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삶의 가장 훌륭한 재현으로 남는다.

50년대와 60년대의 가장 훌륭한 역사 서사물들은 풍부한 프로덕션디자인과 대형 인물들로 관객에게 경외심을 심어줬다. 비교를 하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빈약한 영화제작이고 보잘것없는 인물들과 통탄할 정도로 진정한 영성이 부족한 영화이다.

이미 믿음이 있는 자들이라면 이 영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강렬한 경험이 될 것이다. 교회 설교단에서 두 시간 동안 호통을 맞는 것에 상당하는 영화적 경험일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스페인, 이탈리아, 필리핀, 라틴아메리카 등 지배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데서는 흥행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비신자나 하루 저녁 엔터테인먼트를 찾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길고, 과도하게 폭력적이며, 반복적이고, 표면의 창의성이 재빨리 신선미를 잃는- 그렇다- 지겨운 영화이다. 이 모든 것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멜 깁슨의 영화가 오늘날 세대의 서사물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글래디에이터>는 잔혹성의 표준을 높였지만 동시에 강렬한 휴먼드라마로 남는 데 성공했다. 이제 모든 것은 볼프강 페터슨의 다가오는 <트로이>(Troy)와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Alexander)가 이 장르가 한때 누렸던 품위와 진정한 힘을 회복하는 데 걸려 있다.

* 런던에 거주하는 데릭 엘리는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업계지 <버라이어티>의 수석 영화평론가이다.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대학에서 공부했고, 서적 <서사영화: 신화와 역사>(The Epic Film: Myth and History, 1984)를 저술했으며, 기독교인도 유대인도 이슬람교도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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