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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영화광 시대가 왔다 [1]
박은영 2004-05-11

영화제 싹쓸이파, DVD 컬렉터, 블로거, 다운로드 중독자 - 이 시대 영화광 4인4색

태초에 문화원 세대가 있었다. 1970년대 말, 개봉영화에 만족할 수 없었던 열혈 영화청년들은 프랑스 문화원과 독일 문화원을 돌며 누벨바그와 뉴저먼 시네마를 배웠고, ‘순례자’의 마음으로 그들의 영화를 봤다. 변변한 영화서적이 없던 시절, 원서로 영화이론과 영화사를 깨우쳤고, 고다르, 안토니오니, 파스빈더의 영화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15년 뒤쯤, 전혀 다른 영화광 집단이 출현했다. 문화원 세대의 가이드라인을 따라가는 이들도 많았지만, ‘고전’과 ‘정통’의 이름에 가려졌던 장르영화와 컬트영화를 옹호하는 이들이 PC통신으로 접속했고, 취향과 기호가 맞는 이들끼리 어울려 놀았다. 그리고 관습과 결별한 새로운 영화들을 만들어 내놓기 시작했다. 애매한 건 지금이다. 개봉관도 시네마테크도 활황이고, DVD와 인터넷을 통한 영화보기도 인기다. 영화도 많아졌고, 보기도 수월해졌다. 그러니, 지금의 영화광들에게는 ‘발견’이 아니라 ‘선택’이 문제다. 우리는 문득 3세대 영화광이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인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영화광들을 3세대라 상정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지, 좀처럼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런 분열과 확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테크놀로지를 끌어안은 영화광의 문화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영화제 싹쓸이파, DVD 컬렉터, 블로거, 다운로드 중독자 등 이 시대 영화광 4인4색을 통해, 그 방향을 가늠해보기로 한다. 편집자

올해 대학 3학년인 이C는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낮에는 남들처럼 멀쩡하게 할 일을 다하지만, 방과후엔 어김없이 영화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된다. 영화를 전공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를 업으로 삼을 생각도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그의 하루는 영화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친구들은 그런 이C를 ‘영화 폐인’이라고 부른다.

어느 씨네키드의 하루

바빴던 이C는 요즘 새삼 서울 사는 보람을 느낀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한달에 한번 정도 유명 감독들의 대표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이론서나 역사서에서나 보던 이름들, 루이스 브뉘엘, 에릭 로메르,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을 ‘필름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는 너무 기쁘다. 혹시나 해서 간직해뒀던 뭉개진 화면과 조악한 자막의 복사 테이프에 이제 당당히 작별을 고할 수 있으니까. 오후 수업을 마치고 한걸음에 달려가 구로사와 영화 두편을 연달아 본다. 저녁 굶고도 배고픈 줄 모른다.

늦은 귀가. 이제부터 이C의 본격적인 영화 편력이 시작된다. 사실 이C는 극장에 가는 것보다는 방 안에서 영화 보기를 즐긴다. <매트릭스>를 ‘1호’로 사모으기 시작한 DVD가 이제 100여장에 이른다. 작지만 ‘개인 라이브러리’를 만들어놓은 셈이다. 이C에게는 DVD의 생생한 화질과 짱짱한 음질보다도 다양한 정보가 수록된 서플이 더욱 구미를 당긴다. 그리고 오늘처럼 <매트릭스>의 ‘총알 발레’ 장면이 보고 싶을 때에도, 장면을 빨리 찾아내고 반복적으로 볼 수 있는 DVD의 기능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해외 사이트에서 미개봉 영화들을, 가위손이 닿지 않은 ‘원본’으로 구매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거부할 수 없는 DVD의 매력이라고, 이C는 생각한다. 이처럼 이C가 영화를 접하는 주요한 경로는 인터넷이다. 신문, 잡지, TV에도 영화정보가 넘쳐나지만, 이C는 영화에 대해 알아야 할 대부분의 것을 인터넷에서 배웠다. 그런 이C가 요즘 인터넷을 통해 은밀히 시작한 일이 있다. “이건 나쁜 짓이야”라고, 허벅지 찌르기를 수백번. 이C는 결국 ‘불법 복제’의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디빅파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호기심에 이런저런 영화들을 다운로드받아서 보게 됐던 것이다. “VTR 녹화와 다를 게 없단 말이지.” 이C는 누군가의 대담한 발언에 맞장구를 쳐본다. 국내에 수입될 가능성도 희박하고, 수입되더라도 많은 부분 삭제될 것이며, DVD 출시는 더욱 요원한 그런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라고, 이C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켜본다.

이C가 영화에 대한 감상을 끼적이거나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인터넷을 통해서다. 이C는 한때 커뮤니티를 만들었던 적이 있는데, 무례하게 구는 과객들을 참새 쫓듯 내쫓다 못해, 아예 폐쇄해버렸다. 대신 이C는 요즘 블로그에 맛을 들였다. 매일 밤 영화 일기를 쓰는 기분으로, 한두 시간씩은 꼭 블로그를 한다. 혼자 글을 쓰지만, 원하면 남을 초대할 수도 있는, 닫힌 듯 열린 공간. 원맨 블로그가 서로 연결돼 거대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이런 소통 방식이 이C에겐 딱이다. 그래, 대한민국은 영화천국이야. 이C는 오늘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든다.

‘이C의 하루’가 보여주는 것처럼 영화광의 문화는 급변했다. 한때 ‘독특한 교양’이던 영화는, 관객 1천만 시대에 이르러 만인의 오락이 됐다. 유난히 영화를 많이 보고 즐기는 영화광 혹은 애호가들도 없는 영화를 찾아다니기보다는 있는 영화, 주어진 영화를 누리기에 바쁘다. 수십년 전 그랬던 것처럼 금기의 대상이라거나 저항의 상징이 되기에 이즈음의 영화는 너무나 손쉬워졌다. “지금 영화는 공식 문화가 돼버려 매력적인 대상이 되기엔 힘이 부족한 것 같다”는 정성일씨의 지적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화가 사치스럽다고 생각한 건 동시대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그것이 하나의 독특한 교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들을 만났다. 20대 초반에 우리는 술자리에서 종종 한국은 국제영화제 안 하나, 단편영화 지원 안 해주나, 국립영화학교 안 생기나, 그런 얘기했다.”(김홍준) 그로부터 약 30년이 흘렀다. 프랑스 문화원과 독일 문화원을 드나들며, 영화에 대한 갈증을 풀던 1세대 영화광들의 ‘몽상’은 이제 현실이 됐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영화제 등은 벌써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상업 장편영화는 물론 독립 단편영화에 대한 정부 기관의 지원도 아쉬운 대로 이어지고 있다. 국립영화학교 영상원이 생겨난 것을 기점으로, 수년 사이에 전국 대학의 영화 관련학과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영화교육은 물론 영화제작과 배급의 창구가 늘어난 데 1세대 영화광들의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됐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비디오로 영화를 섭렵한 2세대 영화광들도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류승완 등이 그들의 영화 탐식을 활용해 한국영화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지켜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 자신이 2세대 영화광이기도 한 평론가 심영섭씨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그 화려한 형식미가 하나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한다. “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대작전>도 마찬가지다. 주성치 영화와 성룡 영화와 <매트릭스>가 결합한 듯한 이 영화는 숭배하는 영화에 오마주를 바치기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고자 한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범죄의 재구성> 역시 충무로 관습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한 할리우드영화를 떠올려 만든 작품이다. 비디오를 영화선생님으로 삼은 영화광들이 연출에 뛰어들면서, 서툴지만, 새롭고 잘 빠진 장르영화들을 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