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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로 간 송일곤과 <거미숲> 스토리 - 장르영화이기만 할까?
“사실 사건은 굉장히 단순하다. 누군가 살인을 했다는 것 하나밖에 없다. 무의식이건 사건이건 주변의 몇몇 인물을 통해서 한명의 주인공을 조망하는 쪽으로 갔다. 스펙트럼을 통해서 하나의 형상이 나오듯이. 스토리는 단순하게 넣고 내 속에서 느끼는 갈등을 채우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장르로 따지면 <거미숲>은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멜로의 복합체이지만 캐릭터와 시간·공간, 내러티브가 지닌 깊이는 장르를 위배한다. 물론 이건 송일곤의 의식적인 배치다. 영화 초반에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몇 가지 궁금증을 강하게 던져주지만 해결이 자꾸 지연되면서 감독의 자의식이 곳곳에 깃들기 시작한다.

“사실 사건은 굉장히 단순하다. 누군가 살인을 했다는 것 하나밖에 없다.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인물이 많길 하나, 복선이 많길 하나. 그런 방식보다는 무의식이건 사건이건 주변의 몇몇 인물을 통해서 한명의 주인공을 조망하는 쪽으로 갔다. 스펙트럼을 통해서 하나의 형상이 나오듯이. 스토리는 단순하게 넣고 내 속에서 느끼는 갈등을 채우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거미숲>은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떠올리게 한다. 현실과 환상, 실제와 악몽이 자유롭게 교차하고, 뒤틀린 시간대와 시점이 복잡하게 펼쳐진다. 그렇지만 송일곤 감독이 살인 사건이란 표면을 통해 다가가고자 하는 건 미스터리스릴러라는 장르적 쾌감이 아니라 <꽃섬>에서도 시도됐던 상처와 구원의 이야기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메시지? 쉽고 어렵게 말하면 ‘우리는 뭔가’. 우리의 영혼을, 욕망을 이루고 있는 부분은 뭔가. <거미숲>을 만들면서 가장 많은 참고가 된 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다. 다시 한번 읽었고 배우들에게도 권했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죽어가는 순간 무엇을 떠올릴까 하는 궁금증. 또 사람의 영혼은 기억으로 이뤄져 있고 사람은 기억되고 싶은 존재라는 것도 중요했다. <거미숲>에 나오는 거미도 기억되지 못한 영혼 아닌가.”

시제의 복합성에선 장르영화의 틀을 취하더라도 좀더 특별하게 접근하고 싶어하는 감독의 욕구가 읽힌다. 구성적인 면에서도 장르의 상투성을 피하고 싶은 욕구랄까. 현재라는 시간의 축, 과거의 시간 축, 대과거의 시간 축, 대과거의 한 여자 이야기 등 적어도 네겹의 시간이 얽히고 설킨다. <거미숲>의 많은 스탭들, 예컨대 인터넷의 홍보 사이트를 설계하는 스탭은 반나절 이상 도표를 그려놓고 영화의 복잡한 시제와 공간을 공부해야 했다.

더 깊은 여정을 위해

“큐브릭 영화가 굉장한 대중영화이면서 훌륭한 예술영화가 아닌가. 영화가 문학이 했던 깊이와 묘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대단히 많은 영화가 멋지게 해왔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방향성이 가장 옳지 않을까. <거미숲>은 거기로 가는 여정의 일부다. 좀더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송일곤 감독은 한달 전에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를 만났을 때, 20% 정도 더 버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차 대표는 영화를 보지 않고 감독의 말만 듣고 한 말이지만, 송 감독은 그 20%가 중요하다는 데에 동의한다. 물론 이 20%는 편집한 필름의 분량이 아니라 감독의 예술적 자의식이나 욕망일 것이다. “다음에는 20% 더 버리고 갈 수 있다. 내가 완성된 사람은 아니니까. 적어도 10년 동안은 코미디를 뺀 다른 영화들을 찍고 싶고, 대중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15억원 제작의 노하우를 묻자 “욕심을 덜 부리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는 뭔가’라는 화두가 장르와 함께 갈 수 있다라는 것에 확신을 얻었다. “큐브릭 영화가 굉장한 대중영화이면서 훌륭한 예술영화가 아닌가. 영화가 문학이 했던 깊이와 묘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대단히 많은 영화가 멋지게 해왔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방향성이 가장 옳지 않을까. <거미숲>은 거기로 가는 여정의 일부다. 좀더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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