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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멜로’ <파리의 연인> 열풍 분석 - 인기 원인은?

정씨, 머리를 싸매고 <파리의 연인> 인기 원인을 분석하다

돌아와서 정씨는 사견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인기가 <파리의 연인>으로 어떻게 확장된 것인지 그 맥락을 생각해본다. <파리의 연인>의 현재 인기몰이를 정리해보기로 한다. 이하는 정씨 생각.

첫 번째, ‘엑조티즘’(이국성)이다. 두 드라마를 제작한 SBS 특별기획팀뿐 아니라 타방송사에서도 이국에서의 사랑은 지금 인기가 높은 소재다. 일에 매여 오도가도 못하는 시청자들은 매주 저녁마다 주중에 지쳤던 몸을 이끌고 돌아와 앉아 브라운관 안에서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들 안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현실을 잊게 할 만한 아름다운 풍경의 어느 도시. 과연 홀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생각해보니, 정씨가 처음 <발리에서 생긴 일>의 첫회를 보면서 자리를 잡고 앉은 이유도 난생처음 나가본 해외 여행지 방콕의 풍경이 언뜻 스쳐서인 것 같다. 엑조티즘으로 현실의 고통을 날려버리는 것. 정씨는 스스로에게 이 점이 옳지 않다고 반복한다. 하지만, 이것이 다른 이에게 독인지, 약인지 판단하는 건 지금 정씨가 할 몫은 아니다. 어쨌거나 이국의 풍경으로 드라마를 여는 것이 시선을 끌 수 있는 매혹의 요소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두 번째, 여주인공의 캐릭터다. <씨네21>에 기고하는 어느 필자는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하지원이 연기한 이수정을 두고 신데렐라라고 불렀지만, 정씨의 생각은 다르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이수정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그냥 ‘하녀’다. 그것도 아주 비천한 하녀다. 게다가 그 비천함을 즐기는 독한 하녀다. 정씨가 정말로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기 시작한 것은 이 시점이다. 이 비참한 하녀가 두 남자 모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미루고 또 미루면서, 그러나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계급 사이를 오가면서, 쫓아도 쫓아도 다시 기어들어와 일을 하겠다고 뺨을 맞으면서, 결코 뒤집어지지 않을 계급 모순을 그 독한 행동으로 오락가락하면서 갈피를 못 잡게 흔들어버리는 그것이 정씨의 눈길을 끌었다. 젊은 청춘 남녀의 독한 사랑 이야기로만으로도 인기의 이유는 충분했다고 <발리에서 생긴 일>을 평할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파리의 연인>보다 시청률이 낮았다는 것은 그 하녀의 힘이 대중의 시선 어딘가에 무의식적으로 끼어들어 신분상승의 욕망에 껄끄러운 균열을 냈기 때문이라고 정씨는 생각한다.

때문에 진짜 신데렐라는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이수정이 아니고, <파리의 연인>의 강태영이다. 가령, 이수정이 “마음을 주지 않는 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에 반해 강태영은 “내 자존심 지키자고 어떻게 당신 망신 줘요”라고 말한다. 이수정은 독하지만, 강태영은 착하다. 하지원은 강하지만, 김정은은 부드럽다. 시청자들은 후자를 더 보고 싶어한다. 별 마찰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는데, <파리의 연인>은 그 클리셰를 클리셰로 돌파한다. 가령, 지구상 최고의 낭만적 도시로 손꼽히는 파리에서, 단숨에 꿈의 프리티 우먼이 되는 드라마로 시작하고, 서울에 와서도 잊을 만하면 <문 리버>(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보석을 동경하던 오드리 헵번의 그 주제가)를 틀어준다. 시청자들은 그 판타지의 실체를 분석하는 것까지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이다. 시청률이 그걸 말해준다.

세 번째, 그 여주인공을 둘러싼 남자주인공들의 배치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재벌 정재민은 그저 연민의 대상이었다. 그는 돈을 뿌리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것이 매력이었다. 강인욱은 지성적이고, 강인했다. 그 점이 그 인물을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이 둘은 비교의 대상이었고, 서로가 져서는 안 되는 경쟁의 대상이었다. 지면 죽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전멸을 택했다. 그 점이 오히려 인기 상승을 불러오긴 했지만, <파리의 연인>이 처음부터 명확한 대조점들을 두루두루 뒤섞으면서 얻은 수치에는 못 미친다. <파리의 연인>에서 연적인 두 남자주인공은 피붙이로 묶였고(석연치 않지만), 그 매력을 반반 나눠가졌다. 그것이 유도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서 <파리의 연인>은 프리티 우먼을 꿈꾸는 여성 시청자들만이 아니라 정씨 같은 평범한 남성들의 판타지를 끌어들인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남성 판타지가 <파리의 연인>에서는 마구마구 자극된다. 아! 멋지다고. 멋지고 싶다고. 그래서 <발리에서 생긴 일>의 하지원 어록은 비수가 되지만,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 어록은 솜사탕이 되는 법이다.

지금까지 말한 이러이러한 이유들로 <파리의 연인>은 <발리에서 생긴 일>과 유사하기도 하지만, 인기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정씨는 결론내린다. 하지만, “럭셔리 멜로”… 이 말 참 슬프게 들린다고 되뇐다. 그러나 다시 또, 정씨는 이번 주말에도 영화를 보지 않거나, 술을 먹지 않는다면 텔레비전 앞을 서성거릴 것이다. 남들 다 보는 거 나 혼자 꺼리지 말고 하던 대로 쭉 볼 것인지, 아니면 금단할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한편으론 그렇게 정씨를 고민에 빠뜨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파리의 연인>의 힘은 대단하다고, 또 자뻑 자평할 것이다. 드라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정씨가 ‘<파리의 연인>이 인기있는 이유’에 대해 털어놓은 해석은 그저 이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