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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광주국제영화제 추천작 퍼레이드 [2]

신예의 도발부터 거장의 숨결까지, 강추 8편

찾았다, 빛고을의 발견!

<러브드 건> Loved Gun | 와타나베 겐사쿠 | 일본 | 2004년 | 111분 | 개막작

오토바이를 뺏으려다 총까지 잃은 킬러와 오토바이를 잃은 뻔했다가 총까지 얻은 소녀에겐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부모를 잃었고, 둘 다 죽고 싶어한다는 것. 오래전에 죽은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는 남자에게 소녀는 자기 부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버지의 애인을 죽여달라고 간청한다. 한편 남자의 뒤를 쫓는 노장 킬러는 신참 파트너와의 여정에서 그 남자와의 긴 인연을 이야기한다. “총을 쏘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총알의 색깔은 달라진다. 슬픈 사람은 파란 총알을,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검은 총알을, 겁에 질린 사람은 오줌처럼 노란빛의 총알을 쏜다. 그럼 빨간 총알은 어떤 감정을 담고 있을까?” <러브드 건>은 열두 고개 수수께끼 같은 영화다. 빨간 총알의 비밀도, 주인공의 비밀도, 마지막 순간까지 아껴둔다. 위급할 때면 삼킨 총알을 토해서 쓰는 남자, 그를 쫓는 두 킬러의 엽기적인 파트너십 등 썰렁한 유머 뒤에는 아린 슬픔이 배어난다. 일본 개봉 당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는 <러브드 건>은 새롭고 재밌고 유려한 영화다. 인공적이고 화려한 비주얼, 기상천외한 장르적 인용, 시공간감을 무시하는 구성 등 감독 와타나베 겐사쿠가 스즈키 세이준의 수제자라는 증거를 발견하는 것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포인트다.

<레스키브> L’esquive France | 압델라티프 케시시 | 2003년 | 117분 | 컬러 | 영시네마

에펠탑과 금발 백인들만의 도시로 생각되지만 사실 파리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외곽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온 아랍계 이민자들의 거리가 있다. <레스키브>는 이곳 아이들에 관한 영화다. 듣기만 해도 이 문화 게토의 다양성을 종주할 것 같은 인상이지만, 영화는 뜻밖에 극중극을 즐겼던 피에르 마리보의 18세기 희극을 테마로 삼는다. 신분을 속이고 사랑을 시험하는 연인, 그러나 아무리 위장을 해도 원판을 속일 수 없어 결국 동류끼리 맺어지는 이 연극을, 아랍계 학생들이 연습하면 의미가 복잡해지게 마련이다. 거기다 좋아하는 소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소녀의 상대역을 자원하는 소년이 가세하면 영화는 4중의 위장 구조로 된 마리보식 희극이 된다. 화면의 한곳을 응시하며 사랑에 빠진 소년의 심사를 좇는 감각도 상투적이지만 멋지다. 그러나 코란에 대고 맹세하며 욕을 퍼붓는 아이들에 대한 이물감이 가시고 새삼스레 사랑에 빠지고 옛사랑을 배신하는 아이들의 절절한 드라마에 공감을 하게 될 무렵 영화는 갑자기 모든 것을 간단히 부숴버린다. 이렇게 희극은 끝나고 소년은 어른이 된다. 모든 것이 예전과 다를 것이다. 관객은 함께 강제로 타자가 되는 사회의 폭력을 체험한다. 치밀하게 의도된, 이 우발적 반전은 꽤 충격적이다.

<어머니> My Mother | 크리스토프 오노레 | 프랑스 | 2004년 | 110분 | 컬러 | 영시네마

“모든 아들들은 신들이 되려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성모가 필요하다. 성(性)과 성(聖)을, 오르가슴과 죽음을, 피학과 희생을 동일시했거나 혹은 도착적으로 뒤집는 태도는 사실 이제 그다지 새로운 게 아니다. 하지만 성기까지 거침없이 내놓으며 시각화할 요량이라면 철학하는 사도마조히즘의 금언이 넘치는, 조르주 바타이유의 해묵은 미완성 소설, <어머니>는 결코 논쟁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노보>의 각본을 썼던 크리스토프 오노레는, 최대한 도식적으로 짜낸 시적 구조로, 종교적인 아들과 거침없는 성적 모험을 감행하는 어머니 사이의 긴장을 에로틱하게 묶는 원작의 지뢰를 돌파하려고 한다. 해변과 사막, 성가풍 사운드트랙과 가학적 성행위 같은 적나라한 시각적 대구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의 시체와 아버지의 유품들 위에서 자위하고 오줌발을 내리는 장면들마저 구해낼 만큼은 아니다. 분열증의 기미를 보이는 단속적인 편집이나 셔터를 열어놓고 찍는 현란한 잔재주만으로는 도저히 이 과감한 기호의 세계를 감당해낼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 역할을 하는 것은, <피아니스트>로 이미 극단마저 너끈히 현실화하는 경지에 오른 이자벨 위페르다. 하기야 그녀가 아니라면, 그 누가 ‘성애의 여행’을 심각한 구도의 도정으로 보이게 할 수 있겠는가?

<녹색 모자> The Green Hat | 리우펑도우 | 2003년 | 120분 | 컬러 | 영시네마

세 남자가 은행털이에 성공한다. 그중 한명인 왕야오는 이 돈을 갖고 미국으로 건너가 사랑하는 여인 릴리를 만날 계획이다. 릴리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헤어지자고 한다. 전화기를 붙들고 늘어지던 그는 경찰 앞에서 인질극을 벌어야 하는 신세가 된다. 그를 달래러 온 경찰 간부에게 권총을 들이댄 채 왕야오는 “다음 질문에 3초 내로 답을 해주면 총을 놓겠다”고 말한다. 바로 그의 질문이 이어진다. “사랑이 뭔지 아냐?” <녹색 모자>는 이 은행털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은 그에게서 황당한 질문을 받은 경찰관이다. 경찰관은 우물거린다. 인질범이 권총으로 자살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 경찰관은 비뇨기과를 찾아간다. 발기불능인 그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비아그라를 먹어서라도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중국에서는 아내나 애인으로부터 배신당한 남자를 가리켜 ‘녹색 모자를 쓴다’고 일컫는다고 한다. 영화 속 두 남자는 왜 녹색 모자를 쓰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걸까. 장양 감독의 <샤워>에서 시나리오를 썼던 신인 리우펑도우 감독은 현대 중국의 삶을 녹색 모자라는 키워드를 통해 신랄하게 풍자한다. 이 슬픈 블랙코미디는 올해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입술은 안 돼요> Not on the Lips | 알랭 레네 | 프랑스, 스위스 | 2003년 | 115분 | 월드시네마 베스트

<히로시마 내 사랑>의 알랭 레네가 뮤지컬에 빠졌다. 97년작 <우리들은 그 노래를 알고 있다>를 내놓을 때만 해도, 딱 한번 일탈이겠거니 했지만, 틀렸다. 그는 또 한편의 뮤지컬 <입술은 안 돼요>를 내놓았다. 모더니즘 작가군과의 연대, 시간의 혼합과 관념적 독백 등이 특징적인 난해한 영화들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였기에, 비교적 대중적인 장르인 뮤지컬로의 선회는 연륜이 선사한 여유와 낙천성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혼 전력을 숨기고 사업가 조르쥬와 결혼한 질베르트는 전남편 에릭이 현 남편의 새로운 사업 파트너라는 사실에 크게 당황한다. 전남편 에릭의 방문, 끊이지 않는 남자들의 구애, 여동생 아를레트의 간섭 등으로 질베르트의 주변엔 바람 잘 날이 없다. “입술은 안 돼요”는 주인공 질베르트의 미국인 전남편 에릭 톰슨이 하는 대사. 전 부인과도 ‘불결한 키스’ 따위는 하지 않았던 그는 의외의 여인에게 입술을 내주는 ‘사고’를 친다. 몰리에르의 희극이 연상되는 <입술은 안돼요>는 장이 바뀔 때마다 암전과 함께 세트가 바뀐다거나, 중요한 대사를 하는 배우에게 핀조명이 떨어진다거나, 속마음을 얘기할 때 정면(카메라)을 보고 연기하는 등 무대 연극에서나 봄직한 장치들이 눈에 띈다.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가 사랑에 빠진 순진한 소녀를 연기한다.

<‘소매치기’의 모델들> The Models of Pickpocket | 바벳 맨골트 | 2003년 | 89분 | 베타 | 컬러 | 논픽션 시네마

구원이나 초월과 같은 종교적 테마와 영화사상 가장 가까웠던 인물, 로베르 브레송, 단순하다 못해 무미건조한 화면과 무표정한 인물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다가와 있는 장엄한 순간, 이것이 어느 사조에도 속하지 않았고, 몇 마디 개념으로 잘 설명될 수 없는 브레송 영화의 신비다. 그렇다면 브레송의 59년작 <소매치기>에 출연한 세 배우들에게는 이 미스터리한 감독과의 작업이 어떤 경험이었을까? 촬영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바벳 맨골트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이 지점에서부터 브레송 영화의 신비를 복기하려 든다. 브레송은 배우들이 의식적으로 연기하는 것을 기피했다. 때문에 비전문배우들을 선호했고 배역에 대해 열정이 없어도 상관없었으며, 수십번에 걸친 재촬영을 통해 배우(모델)들의 넋을 반쯤 빼놓기도 했다. 배우들의 증언이 차분히 이어진다. 그리고 그 저의가 무엇이었는지 자명하게 설명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자체로 훌륭한 브레송 입문서다. 그러나 이게 다는 아니다. 한편으로 이들의 일상과 주변 풍경, 언뜻 스치는 표정들을 무심히 담아내면서 맨골트는 이들의 삶에 브레송이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겼는지를 역설한다. 그것은 아마 브레송이 40년 전 그들에게 썼던 방식 그대로일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뉴욕> Alexandrie…New York France/Egypt | 유세프 샤힌 | 2004년 | 128분 | 컬러 l 월드시네마 베스트

이집트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유세프 샤힌의 최근작 <알렉산드리아… 뉴욕>은 자전적인 ‘알렉산드리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9·11 테러에 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후로도 여전히 다사다난했던 아랍 지역의 예술가로서 그는 그 대미를 미국을 향한 애가(哀歌)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다. 유세프 샤힌 자신임이 분명한 분신 예히아는 회고전을 위해 오랜만에 미국에 돌아와 잊고 지내던 젊은 시절 연인과 그녀가 낳은 그의 아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인 아들은 아랍인 아버지를 냉대하고 예히아는 젊은 시절 미국에서 그가 받았던 온갖 천대를 기억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 대한 사랑을 거둘 수 없는 그의 제스처는 강퍅해진 미국을 향한 애달픈 애가로 환원된다. 칸에서 평생공로상을 받기도 한 거장이 미국에 전달하는 우아한 경고인 셈이다. 그러나 충고하는 자의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예히아를 이상화할 필요가 있었던 이 거장은 (그것이 자기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예히아를 무슨 초등문고판 영웅전 주인공처럼 만드는 무리수를 둔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정의롭기까지 한 예히아에 비하면 모두가 들러리로만 보이는 대목들의 우스꽝스러움과 미국인들 모두 아랍어를 쓰는 진기한 장면들을 지나노라면 할리우드의 영웅적 나르시시즘의 변종을 보는 듯한 꺼림칙함을 피할 길 없다.

<지방법원 제10호실> The 10th District Court | 레이몽 드파르동 | 2004년 | 105분 | 컬러 | 논픽션 시네마

사진집단 ‘감마’의 창립자이자 저명한 다큐멘터리 작가 레이몽 드파르동의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파리 제10 지방법정에서 진행된 재판 심리 과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 법정의 ‘손님’들은 그리 심각한 범죄자들이 아니다. 친구들과 독주 한잔을 하고 집 근처에서 차를 몰다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남성이나 주차를 저지하는 교통단속원에게 ‘X년’이라고 말해 명예훼손으로 고발된 남자, 불법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가 검문에 걸린 사람 등 고작해야 벌금형에서 집행유예 정도의 판결을 받을 피의자들이다(개중에는 전문 소매치기도 있다). ‘심리의 순간들’이라는 부제처럼 이 작품은 소소한 사건들의 심리 과정을 세세하게, 그러나 건조하게 담아낸다. 피의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오가고, 판사가 법적인 해설을 하는 가운데, 개인들의 자그마한 일상들이 사법체계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과정이 슬쩍 비치기도 한다. 판사가 피의자에게 법조항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검사가 피고의 발언을 비꼬는 프랑스 법정의 풍경 또한 이채롭다. 영화적 재미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감당하기 힘들겠지만, 프랑스 사법시스템의 인간적인 측면에 관심있거나 아주 색다른 다큐멘터리를 원한다면 도전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