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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회 맞는 순풍 산부인과 [3] - 김병욱 PD 인터뷰

안방 극장의 우디 앨런 김병욱 PD와의 인터뷰

"게으른 창작은 없다"

‘순풍에 돛단 듯’, 이 땅에 순풍산부인과가 개업하기 이전에 생겨난 이 말이 마치 순풍산부인과를 위해 만들어진 말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햇수로 4년이 되는 긴 시간 동안 안전항해를 책임진 선장을 만나보았다.

-500회다. 쉽지 않은 향해였을 텐데.

=한번도 어렵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항상 아이템이 부족했고 항상 매너리즘에 빠질까 두려웠다.

-제작 초기로 거슬러올라가보자. 특별히 벤치마킹했던 시트콤이 있었나.

=작가들도 나도 외국 시트콤을 많이 보긴 했다. <홈 임프루브먼트>(Home Improvement)나 <매드 어바웃 유>(Mad about you) <세인펠트>(Seinfeld)의 상황 정도는 그저 ‘참고’했다고 할까? 하지만 대사나 상황을 그대로 베낄 수는 없었다. 알지 않나, 베끼면 그 날로 통신에 난리가 난다.

-지난해 가을, 김찬우가 빠지고 이창훈이 들어왔다. 물론 지금은 그 역할을 200% 해주고 있지만 중간에 합류하는 캐릭터는 만들어내기 어렵지 않은가.

=느낄는지 모르지만 창훈은 등장 이후 계속해서 조금씩 캐릭터를 바꿔나갔다. 초반에는 지금보다 어두운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영규며 오중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착한 여우가 되었다. 기본적인 컨셉은 물론 있지만 하나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 그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해서 조정해 나간다.

-오중의 캐릭터가 많이 달라졌다는 말들이 있던데.

=글쎄…. 찬우는 영악한 캐릭터였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오중이는 조금은 어눌하고 착하게 그려졌다. 매일 당하면서도 또 밥 차려주고 청소하고. 하지만 창훈은 기본적으로 착한 캐릭터다. 그런 반면 오중이가 요즘은 소리도 많이 지르고 조금은 비굴해졌다. 인간이란 게 상대적이지 않나.

-우리나라 시트콤을 보면 유독 영화나 드라마 패러디가 많다. <순풍…>에서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그런 형식을 보여주었던것 같다. 최근 <인생은 아름다워> 패러디가 인상깊었다. 특별한 패러디의 원칙이 있나.

=패러디란 그저 ‘흉내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령 ‘옷로비’에 대한 패러디를 한다고 할 때 ‘죄송합니다, 몸이 아파서’를 똑같이 하는 건 그저 코미디에 그칠 뿐이다. 말투의 흉내를 넘어 우리 스스로가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가져야 한다. 게으른 창작을 경계하려 한다.

-요즘은 비슷한 소재의 반복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오지명집 도자기는 수십번 깨진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그 좁은 공간에 나올 이야기가 얼마나 더 있겠는가? 하지만 같은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하더라도 다른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어떨 때는 심리로 풀고 어떨 때는 미스터리로, 어떤 날은 시제의 이동으로 나간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에서 인물의 역사가 바뀔 때가 있다. 가령 ‘표 간호사 쌍거풀 수술’ 편을 보면 어릴 적부터 못생겨서 ‘오랑우탄’이란 별명을 가졌던 그가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잘생겼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식이다. 각기 캐릭터에 대한 히스토리 노트가 있나.

=사실 외국 시트콤 들은 거의 그렇게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주로 기억에 의존하는 편이다. 회의 때 ‘이런 적 있었어?’ 해서 아니라고 하면 그냥 가는 식이다. 방송 나가고 난 뒤 시청자에게서 듣는 경우가 더 많다.

-되도록이면 그 날의 이야기의 결론을 내려 하던 초반에 비해 엔딩이 거의 파격적이다. 자신감인가.

=초반에 나름대로 극적 엔딩을 가져갔음에도 사람들은 밋밋하다고 했다.하지만 요즘은 이런 엔딩에 전혀 어색해하지 않더라. 자신감이라기보다 익숙함을 믿는 거다.

-의찬이는 아빠 그리워하는 것을 한번도 못 본 것 같다.

=문제다. 정리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소연이, 오중이, 영란이 애정 문제도 그렇고 아빠 없는 의찬이도 그렇다. 다락에 숙제를 쌓아놓고 밥만 먹는 기분이다. 언젠가는 해결해야 될 텐데.

-영화, 특히 코미디 영화 많이 보나.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잘 못 본다. 하지만 우디 앨런을 너무 좋아한다. 콤플렉스 덩어리인 우디의 ‘쪼잔함’이 영규와 닮지 않았나?

-영화로 만들 생각은 없나.

=하하하… 정말로 영화 만들자고 돈 댄다는 사람이 있더라. 작가들하고도 입으로는 시나리오 여러 편 썼다. 글쎄, 한다면 스케일도 크고 혜교와 창훈이의 러브신도 듬뿍 넣어 진∼하게 만들어야겠지?

내가 더 웃기지?

주연보다 빛나는 순풍의 감초열전

박경림

장진

사이비 약장사, 3류 CF감독, <미저리>의 주인공 같은 코미디 작가 지망생, 신창원, 몽몽교 교주, 에어로빅 강사, 역술가, 비밀요원 가리발디, 방범회사 ‘치와와’ 직원, 신경 날카로운 옆집 고시생, 똥만 그리는 미술선생…. 어떤 연기자가 이많은 역할을 소화해 낼 것인가. 순풍의 신화, 순풍의 핵, 순풍의 모든 것, 이 모든 찬사가 아깝지 않은 그는 바로 윤기원이다. KBS 코미디언으로 ‘황비홍’ 흉내만 내던 그를 제작진은 매회마다 다른 직업의- 하지만 정상이 아니라는 점 에서는 모두 똑같은- 인물로 등장시켰다. 이제는 그가 나오는 에피소드를 기다릴 정도의 골수팬을 확보한 인기인이 되었다.

그 이름도 아름다운 ‘육심이’(박경림) 출연 횟수는 딱 2회이지만 우리는 그녀의 도도함에 넋을 잃었다. 타고난 건 쥐뿔도 없지만 스스로 대단히 섹시한 매력의 소유자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윙크 하나면 세상의 모든 남자를 꾈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한때 혜교의 남자친구인 래원을 유혹하려고 한 적도 있었고 얼마 전 오중이 방송계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마릴린 먼로 드레스로 그를 유혹했다. ‘박 반장∼ 사람들이 당신보고 뭐라 그러는 줄 알아? 머리에 숱이 없대, 숱이….’

어디선가 ‘강약약 중강약약’ 억양이 들리면 뒤를 돌아보라. 거기엔 동네 반장자리의 복권을 자나깨나 꿈꾸는 야심녀 ‘강토엄마’(권은아)가 있을지도 모른다. 영규가 집에서 놀던 시절 핸섬한 마스크로 반장에 선출되자 전 반장인 강토엄마 고상순은 승리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비장함과 진지함의 화신, 치열한 선거전에서 ‘저쪽이 인절미면 우린 무지개떡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사라진 뒤 요즘은 통 볼 수 없는데 시기를 타고 조만간 다시 나오지 않을까 예상되는 인물이다.

태란은 선을 몇번이나 보았을까? 태란의 선본 남자 시리즈도 다양하다. 호기심 많은 남자, 게임 좋아하는 남자, 털 많고 참외배꼽에 외계인 귀를 가진 남자(이웅호)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최근 가장 장기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자가 바로 장진(영화감독)이다.“탄알 일발 장진, 장진입니다. 탄알 일발까지는 농담이고, 장진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는 그의 말장난은 천재적이다. 예를 들어 오(5)지명-삼십육(36)지명, 강아지-약아지, 설(서울)거지-부산거지등이 그것인데 웃을 수도 그렇다고 유치하다고 말할 수도 없게 만드는 묘한 조크를 선사했다.

선우용녀의 여고 시절 라이벌이었던 독고분녀(김애경)와 그녀의 딸과 손녀 또한 잊을 수 없는 신선한 캐릭터들이었다. 미달이보다 더 못생긴 세미나는 잦은 출연 횟수로 정배 정도의 대열에 낄 수 있었으나 주로 쓰던 유행어 ‘니 뿡!’이란 말이 아이들 정서상 좋지 않다는 여론으로 출연이 잠잠해졌다.

이외에도 지명의 얼굴을 미스코리아 포스터에 콜라주해서 온동네에 붙이거나 밤마다 전화해서 ‘헥헥’ 신음소리를 내다가 역추적 당해 밤마다 지명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했던 변태남자, 헤벌레 삼총사(찬우, 오중, 표 간호사)를 묘한 분위기로 넋나가게 한 아름다운 아랑각 여인, 찬우와 오중을 노예로 부리던 옆집 탤런트 아가씨, 찬우 의찬 두 부자의 마음을 빼앗은 학습지 선생님, 어설픈 서태지와 잠시 스친 김희선 등등 순풍의 감초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무명이든 유명인이든 누구나 순풍에 나오면 망가진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어느 누구도 전혀 추해보이지 않는다. ‘잠시 스치는 사람이라도 의미를 부여하는것’ 이것이 바로 죽은 자도 깨운다는 ‘순풍 월드’의 힘이요, 사람 만들기 비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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