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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티네> 7개의 키워드 [2]

4. 바다

바다는 생명의 근원,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 영혼의 불안을 잠재우는 안식처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다.

사람들은 흔히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거나 하늘나라에 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타노는 그렇지 않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바다로 간다고 믿는다. 기타노 영화에서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자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며 영혼의 불안을 잠재우는 안식처다. <소나티네>에서 오키나와 해변은 표면적으론 조직의 안전가옥이 있어 숨기 좋은 곳이지만 세상에서 저지른 죄를 씻는 세례의 장소이기도 하다. 바다는 무라카와 일행을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공간이 시간을 움직이고 역행하는 시간은 사람들 마음에 온기를 더해준다. 바다에 대한 기타노의 상념은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 투명하게 드러난다. 우연히 서핑보드를 주운 벙어리 소년은 매일 바다로 향하고 서핑대회에도 나간다. 승부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서핑과 바다가 좋았던 소년은 결국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는 신체장애 때문에 손해보고 오해받고 소외당한 뒤 듣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다. <하나비>에서 주인공 니시 형사가 아내와 마지막 여행을 하며 마침내 도착하는 곳도 어느 바닷가다.

해변에서 연을 날리고 불꽃놀이를 하며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넨 니시 형사는 두발의 총성을 남기고 사라진다. 기타노의 폭력과 대척점에 있는 바다는 순수를 상징하지만 역설적으로 순수는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일본은 섬나라여서 어딜 가든 바다를 보게 된다”고 말한다. 세상의 끝이라는 점에서 바다는 저 세상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다.

5. 코미디

기타노는 편집과 거리두기를 통해 익살을 부린다.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일이 보는 사람에겐 코미디가 될 수 있다. 코미디는 폭력의 다른 형태다.

사실 <소나티네>는 포복졸도할 코미디다. 기타노의 유머감각은 무라카와 일행이 오키나와 해변에서 스모를 하고 종이인형 놀이를 할 때 빛을 발하지만 잔인함이 덧붙여진 장면에서도 효과적이다. 여자를 겁탈하던 남자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무라카와에게 대든다. 아무 대꾸없이 머리로 남자를 받아버리자 오기가 난 남자가 무라카와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그러자 이번엔 총알이 이 남자의 배를 관통한다. 점증하는 폭력이 만드는 이 이상야릇한 유머는 <3-4×10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야쿠자로 나오는 기타노는 칼로 부하의 손가락을 자르려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칼이 잘 안 들어서 손가락 자르기가 쉽지 않다. 부하의 손가락에 칼을 댄 채 기타노는 ‘인내’(忍耐)라는 가훈이 적힌 커다란 장식용 돌을 톡톡 내려친다. 한번에 확 잘라버리면 충격만 주고 끝날 일을 해프닝과 연결시켜 엉뚱한 익살을 부리는 것이다. 기타노의 편집은 코미디를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다. 그는 사건을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훌쩍 건너뛰길 즐긴다. 건물에 폭탄을 던지는 장면에서 하릴없는 야쿠자들이 좌우로 늘어서 심심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장면으로 비약하면 ‘세상에 이렇게 한심한 인간들이 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거리두기는 편집과 함께 기타노의 유머를 만든다. 기타노는 종종 멀쩡한 등장인물들을 바보로 만든다. 조직의 고민을 혼자 떠안은 듯 보이는 무라카와의 오른팔이 분별없이 빨간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서 있는 장면에선 폼잡는 인물을 바보로 만드는 기타노의 밉지 않은 장난기를 볼 수 있다. 이런 장면에서 카메라는 항상 인물과의 거리를 유지한다. 뒤통수 때려놓고 시침 뚝 떼는 스타일이다. 기타노는 이렇게 말한다. “개인적으로 난 폭력과 코미디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당사자에게 폭력으로 느껴지는 일이 보는 사람에겐 코미디가 될 수 있다. 코미디에서 차이는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신분이 높은 사람이 바보짓을 하면 보통 사람이 할 때보다 웃긴다. 한번은 평생 거짓말이라고 해본 적 없다는 말을 하는 일본 고위관료를 만난 적이 있다. 난 그 사람이 가발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에겐 내 말이 폭력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코미디는 폭력의 다른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6. 하드보일드

주인공의 독백이나 슬픔이 배어든 표정 같은 것은 기타노 영화에 없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행동하는 사람이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드보일드는 퍼즐게임 같은 미스터리나 등장인물의 심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 범죄소설의 한 분야다. 도시의 밤을 배경삼은 시각 스타일과 우울한 세계관을 드러내는 일련의 영화들, 즉 필름누아르의 모태로 여겨지는 하드보일드는 40년대 미국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기타노 영화는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지 않지만 야쿠자나 형사가 자주 등장하고 암울한 세계관이 지배하며 심리 묘사에 무감하다는 점에서 암묵적 유대관계에 있다. 등장인물의 심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하드보일드 문체처럼 기타노 영화에서도 주인공의 독백이나 슬픔이 배어든 표정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행동하는 사람이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인물의 심리 대신 행동과 분위기를 강조하는 하드보일드 문체는 기타노의 건조하고 압축적인 장면묘사로 대체된다. 살인은 순식간에 벌어지고 사랑조차 멜로드라마와 인연이 없다. <소나티네>에서 무라카와와 여인의 사랑은 전체 영화에서 떼놓고 보면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여인은 왜 무라카와를 사랑하게 됐을까 아니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싶은데 둘의 관계가 이야기 안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사실 기타노 영화에서 여성이 하는 역할은 필름누아르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미미하다. 기타노의 여자는 관능으로 눈을 멀게 하는 위험한 여인이 아니며 음모를 꾸미거나 배신하지도 않는다. 남자 역시 낭만적 사랑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쪽은 아니여서 여성이 부차적인 위치를 벗어나기란 난망해보인다. 순전히 여성관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비판받을 만하지만 이런 스타일이 남성적 세계에 기초한 하드보일드 문체를 더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기타노는 하드보일드 세계에만 안주하는 감독이 아니다. 하드보일드와 거리가 있는 최근작 <기쿠지로의 여름>이 보여주듯 그는 가족을 품에 안으며 깊고 넓어지는 중이다.

7. 최소성의 미학

사운드나 음악없이 얼굴만 덩그러니 나오는데 그게 어떤 장면과 연결되는가에 따라 웃음도 만들고 전율도 전달한다.

기타노 영화는 서구 평론가들에게 브레송을 연상시키곤 한다. 절제된 연기와 사운드를 통해 의외의 효과를 드러내는 브레송은 기타노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소나티네>에서 무라카와가 보여주는 무표정과 아주 드물게 나오는 대사가 그렇다. 카메라는 무덤덤해 보이는 인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만 있다. 기타노 영화에서 클로즈업은 거의 대부분 아무 생각없어 보이는 얼굴을 보여주는 데 사용된다. 사운드나 음악없이 얼굴만 덩그러니 나오는데 그게 어떤 장면과 연결되는가에 따라 웃음도 만들고 전율도 전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을 묘사할 때도 간단하다.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렬로 걸어가는 사람들 모습을 멀리 서서 한동안 바라본다. 그저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는 일에 불과한데 끈끈한 정으로 사람들 사이를 굴비엮듯 이어놓은 것 같다. 기타노의 이 전형적인 나란히 걷기 장면은 가족을 한 울타리 안에 밀어넣는 오즈 야스지로의 화면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 서핑보드를 들고 걷는 남녀의 모습이 반복될 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는 것도 이런 힘이 작용한 결과다. 음악도 아주 경제적으로 쓴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부터 시작된 히사이시 조와의 작업은 웅장하지 않은 단순한 선율을 반복하는데도 영화의 리듬과 잘 맞아떨어진다. 심지어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는 화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 풍경과 파도 소리만 갖고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술을 부린다. 최소성의 미학이라 부를 만한 기타노 스타일은 가능한 모든 효과를 동원해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이미지 과잉 시대에 더운 여름날의 냉수 같은 상쾌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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