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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 [1]
조종국 2000-01-11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계기로 살펴본 비디오대여업계의 오늘과 내일

“비디오숍은 사양 산업이다.” 비디오숍을 운영하는 많은 사람들의 푸념이다. 실제로 이번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에 참가한 대다수 비디오숍 점주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디오숍의 최고 활황기로 꼽히는 94년 즈음 우리나라의 비디오숍은 3만7천개, 행정관청에 등록하지 않은 업소까지 포함하면 줄잡아 4만5천개로 추산됐다. 하지만 비디오업계에서는 지난해 영업중인 비디오숍을 1만5천개 정도라고 추정한다. 게다가 상당수 비디오숍이 점포를 내놓았다는 소문이 파다한 것을 보면 사양산업이라는 푸념이 실감난다.

한편 점주들의 위기의식과는 달리 비디오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시장 크기라면 1만개 정도가 적정하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3천개 정도로 줄어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사양산업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그간의 거품이 걷히면서 산업적인 꼴을 갖춰가고 있다는 얘기다. 꽤 오랫동안 2000원대를 유지하던 대여료가 1000원대로 떨어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상당수 숍들이 ‘반찬 값이나 버는’ 부업 정도로 생각하고 점포를 차려 안이하게 운영하다 문을 닫거나,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활용해 덤핑 공세를 펴는 업자들이 득세하던 때도 있었으며, 정작 대여점 보다 중고 테이프 유통업자들이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이런 분석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사양산업이어서건, 거품이 빠진 탓이건 간에 비디오 시장이 급속하게 얼어붙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비디오테이프가 소멸되고 비디오숍이 모두 전업해야할 상황이 아니라면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전면 재편될 수 밖에 없으리라는 전망이다.

첫 번째다이어트, 으뜸과 버금 그리고 영화마을

비디오대여업계는 근래 몇년 사이에 이미 한단계 재편 과정을 거쳤다.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적정 규모에 소프트를 제대로 갖추고 사업적 전망을 가진 사람들이 비디오숍을 시작하면서 한차례 거품을 빼냈다. 87년 이후 대기업이 비디오 시장에 진출해 소프트 선점을 위한 경쟁을 벌이면서 생겨난 거품이 88년 올림픽을 거쳐 VTR 보급률 75%를 넘어선 90년대 중반까지 부풀기를 계속하다 이 무렵 한차례 다이어트를 거칠 수밖에 없게 됐던 것. 동호회 성격이 강한 ‘으뜸과 버금’과 본격적인 비디오대여점 체인 구축에 나선 ‘영화마을’이 업계 개편을 선도했다. 이들은 점포를 깨끗하고 밝고 환하게 바꾸고, 고전·명작 등 소프트를 제대로 갖추면서 경쟁력을 급속하게 높여 나갔다. 이들에 자극받은 다른 숍들도 중대형화, 전문화, 복합화 하는 쪽으로 나아가면서 질적 성장을 이뤄갔다. 99년말 현재 150개 회원숍을 가진 으뜸과 버금과 643개 숍을 가맹점으로 구축한 영화마을의 경쟁력은 초보적 경영개념을 비디오숍에 접목한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대여점수가 급격하게 줄어든데서 드러나듯, 전반적인 비디오업계 불황은 거품이 빠지는 과정으로만 볼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비디오숍의 거듭나기만으로 매체·산업환경의 변화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PC방과 케이블로 이탈하는 고객

그 첫째 원인으로 비디오숍 점주들은 여가문화의 다양화와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를 꼽는다. 이를테면 비디오 이외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던 서민들도 놀이동산으로 외식 점포로 나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케이블 TV, 게임, 인터넷 등에 매달리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으뜸과 버금 부평점을 경영하는 김인수씨는 “대박 프로는 물론 고전과 명작을 소비해주던 젊은층이 PC방으로 이탈했다”고 말한다. 95년 케이블TV 방송 시작과 97년 PC방 출현 등 비디오숍쪽에서 보면 악재가 꼬리를 물었다. 특히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퍼진 PC방은 청소년층은 물론 적지 않은 대학생, 장년 고객 등을 빼앗아갔다. 비디오숍은 일정한 매출을 보장하는 고정 고객을 잃으면서 기반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으뜸과 버금 방배점 대표 김선영씨는 “인근의 카페 골목에서 일하는 젊은 고객들이 심야에 단골로 찾아왔는데, PC방이 성업을 이루면서부터는 절반 가량 줄었다”며 여파를 체감한다고 했다.

다음으로 업계에서는 비디오 소프트의 부족을 비디오숍이 위기에 직면한 또 하나의 원인으로 꼽는다. 김인수씨는 “전에는 대박 프로가 한달에도 너덧 편씩 나왔는데 요즘은 한두편 정도”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장사할 밑천이 없다’는 말이다. 대기업이 영상산업쪽에서 대부분 철수하면서 수입영화가 줄고 큰 영화도 덜 들여오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직배사들이 풀어놓은 상당한 소프트가 이제 거의 다 소진됐고, 신작 외에는 더이상 출시할 소프트가 없게 됐다는 주장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영화마을 종로점의 이주현 씨는 ‘대박’ 보다는 오히려 중간급 프로의 부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98년 봄, 비디오테이프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고 난후 비디오숍에서 중간급프로 살 돈을 아껴서 대박을 사는 추세였다”며 “이렇게 되자 A급 흥행작이 아니면 잘 안 나가는 경향까지 생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마을 본사 대표를 지냈으며 인터넷 관련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상호씨도 98년 3월에 있었던 대여용 비디오테이프 가격 인상을 비디오숍 불황을 앞당긴 요인으로 보고 있다. 그는 “테이프 가격이 30%까지 가파르게 오른 것이 숍의 구매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고 말하고, 따라서 “다양한 비디오 구매를 할 수 없게 되자 자연히 소비자들의 비디오 대여 욕구는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프트가 줄어든 것은 물론 대박 프로 중심으로 안일하게 비디오숍을 운영해 온 관습이 본질적인 문제였다는 분석이 가능한 근거다. 게다가 대기업 자회사 등 비디오 제작·유통사들의 전근대적 유통구조는 이런 혼란을 부추켰다. 직판의 영업사원과 대리점의 딜러들은 제작·유통사의 악습에 따라 안팔리는 B급 프로를 팔기 위해 덤핑과 뒷거래를 강요당하는 일까지 비일비재 했던 것이 사실이다.

비디오+만화+잡지, 플러스 인터넷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도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도 있었고 적극적인 응전을 모색한 실험도 있었다. 한때 비디오숍에 만화나 잡지 등을 비치해두고 도서대여점을 병행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또 외국의 대형 복합 매장을 들여오기도 했다. 98년에 일본의 비디오 체인점 체제를 따라 분당에 점포를 낸 씨큐브클럽은 99년 9월 가맹점으로 씨큐브 상봉점을 냈다. 씨큐브클럽은 현재 일본에 총 1천여 점포를 거느리고 있으며 비디오와 음반 서적 그리고 AV 액세서리를 함께 취급하는 대형문화상품 편의점으로 모든 체인의 물량은 본사에서 일괄 구매한다. 주로 역세권을 끼고 유동인구를 주고객으로 확보해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씨큐브의 실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본의 모델이 강력한 음반 유통망을 기반으로 펼쳐졌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또 개설 비용이 수십억원이나 들지만 시장성은 장담하기 어려운 점도 큰 이유다. 한국과 일본의 비디오 가격체계의 차이, 하향 평준화된 대여 가격, 비싼 임대료, 다수 직원이 필요한 데 따른 고액 인건비 지출 등 우리나라 환경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98년 개점 이래 가맹점이 하나밖에 생기지 않았다는 점도 이 시도를 부정적으로 보는 근거가 된다.

한편 98년 스타맥스와 브에나비스타가 제주지역에 시험 도입했던, 대여 횟수에 따라 대여료 수익을 제작사와 대여점이 나누는 통칭 RSS(Revenue Share System)도 실패한 것으로 판명됐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비디오업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을 가장 큰 실패요인으로 꼽고 있다. 이밖에 편의점 체인인 서클K와 데이콤이 인터넷의 멀티숍인 알짜마트를 운영하면서 비디오 대여를 시도한 바 있으나 청산한 지 오래다. 하지만 좀더 현실적인 대안은 비디오 업계 안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보인다. 박상호씨 회사에서 개발중인 인터넷 시스템은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3년간의 연구·실험을 거쳐 현실화단계에 들어선 이 시스템은 “인터넷을 비디오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할 수 있는 모델로,지금까지 의사결정 구조가 취약했던 비디오 업계에 구심점이 될 효율적인 방식”이 될 수도 있어 주목된다.

또 하나의 가능성, DVD

전체적인 환경 변화에 따라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비디오숍 불황 타개책을 새 매체로 떠오르고 있는 DVD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논리는 간단하다. 비디오에서 DVD로 소프트가 대체된다면 비디오숍도 DVD대여점으로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DVD는 작은 공간에 많은 양의 소프트를 비치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영화마을 본사 권영호 이사는 “테이프 1개가 차지하는 공간에 DVD는 최대 7장까지 진열이 가능하며, DVD로 진열을 한다면 소형 숍에서도 2만장 정도까지 진열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DVD가 비디오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화질과 음질을 재생한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관건은 지금의 비디오 플레이어를 DVD 플레이어로 교체하는데 걸리는 기간과 DVD출시 가격이다. 현재 50만원 이상인 DVD 플레이어의 가격이 ‘현실화’되는 시점과 출시되는 DVD 소프트 수와 가격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이다. 수년전 비디오 대체 매체로 떠올랐다 사라진 LD와 CD-I 사례에 비춰볼 때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업계의 전망도 조심스럽다. 권영호 이사는 “숍 입장에선 DVD 제작사가 일단 염가로 다양한 소프트를 출시하고, 초기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DVD가 대중화된 뒤의 이익을 바라보고 투자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DVD는 LD때와 상황이 다르다. 영화마을 아차산점의 정태은씨는 “LD때 보다는 더 많은 수용자가 있으며 판매용 보다는 대여용으로 더 적합할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전망했다. 또 으뜸과 버금 신내점의 한인호씨는 “현재 CD-ROM 타이틀이 비디오 보다 3∼4개월 정도 늦게 출시되고 있는데, 비디오와 동시에 출시되면 대여쪽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쨌든 인터넷 대중화에 편승한 인터렉티브 영화나 VOD 등은 물론 DVD 등 디지털 환경에 어울리는 매체 영향으로 비디오 대여 시장이 수년내 파란을 겪으며 재편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DVD가 비디오를 대체할 매체로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앞으로 길게 보아 2∼3년, 두고보는 일 이외에 당장은 할일이 없다는 것이 비디오숍은 운영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고민이다.

이윤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