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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 추천 역사 속 인물] 역사평론가 이덕일이 추천하는 정난정
문석 2008-12-04

여걸 vs 사대부 정치잔혹극

정난정(?~1565)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후하지 않은 편이다. 정사는 그를 ‘출세를 위해 권력자를 유혹한 여인’ 또는 ‘윤원형의 아내를 독살한 표독스런 여자’ 정도로 기록하지만, 최근 몇몇 연구는 정난정의 개혁적 성향에 초점을 맞춰 재조명한다. 정난정은 양반 정윤겸과 군영에 속한 노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종모법(從母法: 양반 수의 증가를 막기 위해 신분이 다른 남녀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게 하는 법)에 따라 당연히 천민 신분이었던 정난정은 당시의 실세 윤원형의 첩이 되면서 신분 상승의 기회를 맞이한다. 정난정은 윤원형의 정실 부인인 김씨를 내쫓은 뒤 윤원형의 누이이자 명종을 수렴청정한 문정왕후의 힘을 입어 정처(正妻)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문정왕후는 정난정을 각별히 총애했는데, 그건 정난정이 영리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두 여인 모두 독실한 불교 신자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역사는 훗날 인종이 된 세자의 처소에 불붙인 쥐를 집어넣어 화재를 일으킨 주인공이 정난정이었다고 기록하지만, 문정왕후의 뜻을 받들어 불교 중흥을 위해 애썼던 인물 또한 정난정이었다. 문정왕후가 정난정의 소생에게 다른 집 적자와 통혼해도 되고 관직에 올라도 된다는 특별조치를 내린 것도 이같은 신임 덕분이었다. 또한 사대부들의 극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서얼들이 문무과 진사시를 볼 수 있도록 한 서얼허통법이 통과된 데는 정난정의 역할이 컸다. 훗날 문정왕후가 사망한 뒤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정난정은 천민 출신의 여성으로서 지엄한 사대부들의 ‘공적(公敵) 1호’가 된 여걸이었음에 틀림없다.

추천인은 누구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누가 왕을 죽였는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 저술

추천한 이유는

“정난정은 천민 출신인데다 불교를 신봉해 사대부가 싫어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난정이 윤원형을 사로잡고 문정왕후를 보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머리가 뛰어났다는 말이 된다. 또한 스스로 첩의 신분을 벗어 정경부인이 됐을 뿐 아니라 자식 또한 서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윤원형과 문정왕후를 움직여 나아가 서얼들의 과거 기회를 보장하는 서얼허통법을 통과시켰다. 기록에 보면 전국 각지에서 죄를 뒤집어쓴 노비들이 정난정의 집에 모여들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정난정의 개혁성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정난정은 조선시대 최초의 ‘신여성’ 중 하나였다. <여인천하> 등에서 그녀가 악녀로만 묘사돼온 것 또한 사대부들의 평가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영화로 만든다면

<여인천하>를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가 정난정-문정왕후-윤원형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영화는 신여성 그리고 개혁가로서의 정난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야기는 정난정을 중심으로 두개의 축으로 흘러간다. 하나는 문정왕후와의 정치적 파트너십으로 때때로 섬뜩할 정도의 총기를 가진 정난정이 살벌한 권력투쟁 속에서 문정왕후의 참모 역할을 한다는 것이 주내용. 또 다른 축은 윤원형과의 뜨거운 러브 스토리. 실제로 윤원형은 정난정의 자살을 슬퍼하다 닷새 뒤에 사망했다. 연출자로는 이준익 감독을 추천한다. <왕의 남자>에서 보여준 역사에 대한 이해력과 역사적 상상력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것이기 때문. 주인공 정난정 역으로는 <형사 Duelist>와 <다모>에서 당당한 조선 여성을 보여준 하지원이 좋지 아니할까.

참고문헌 <여인열전>(이덕일 지음·김영사 펴냄), <한국사 여걸열전>(황원갑 지음·바움 펴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