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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 추천 만화] 네모칸 뚫고 스크린에서 놀자
2009-01-08

칙릿부터 스릴러, 학원물까지 영화화할 만한 만화 10권

네모칸 속 그림들이 답답한 틀을 벗어버리고 넓은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면? 만화책을 읽으면서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상상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를 토대로 한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 이어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들이 계속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화전문지 <팝툰> 기자들이 영화화할 만한 만화들을 추천했다.

한국 히어로만화의 선구자

<트레이스> 고영훈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웹툰 <트레이스>의 캐치프레이즈는 ‘한국형 히어로만화’다. 30여년 전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트러블과 트레이스가 나타났다. 때로는 괴물의 모습으로 때로는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트러블은 인간을 무차별 공격하고, ‘트러블의 흔적’이라 불리는 초능력자 트레이스가 유일하게 그들에게 맞설 수 있다. 인간이면서 특수한 능력을 지닌 트레이스는 일종의 돌연변이다.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 혹은 영화 <엑스맨>처럼 다양한 능력자가 등장하는 <트레이스>는 호쾌한 액션신과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미 수백만 네티즌의 검증을 받은 작품으로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싶다는 의견과 영화로 보고 싶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일부 네티즌은 <트레이스>의 주인공과 닮은 배우들을 가상 캐스팅하기도 했다. 트레이스를 이용하려는 권력과 이에 맞서는 트레이스의 대결을 다룬 ‘거지’ 에피소드가 가장 높은 호응을 얻었다.

복수를 설계하라

<란의 공식> 양영순

상대의 캐릭터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동선을 짠 뒤 누구도 알아챌 수 없는 ‘설계’를 통한 복수를 거행한다.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설계자는 절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항시 복병은 숨어 있는 법. 아이의 가벼운 복수는 끝내 살인까지 이어지는데, 이것 역시 또 하나의 설계다. 그렇다면 자신 외 제2의 설계자가 있다는 결론. 숨겨진 진범을 찾기 위한 진짜 설계가 시작된다.

양영순 작가의 <란의 공식>은 이렇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로 마지막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치밀한 두뇌게임이다. <더 게임> <쏘우> 등 기존 영화와도 맞닿아 있지만, 이 만화의 묘미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명문고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이라는 점이다. 골드클래스의 숨겨진 권력구도가 드러나고, 모두를 파멸시키는 설계자의 실체가 밝혀진다. 이 정도면 청소년과 성인 모두를 겨냥한 숨막히는 추리게임이 되지 않을까. 연재가 끝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댓글에서는 속편과 영화에 대한 독자의 요구가 이어진다. 가상 캐스팅을 생각해본다면 소심한 성격이지만 불같은 결단력을 지닌 인물, 사람의 행동을 세심히 관찰하는 주인공 란에는 류덕환, 온화한 미소 뒤에서 복수의 칼날을 가는 담임은 송영창이 어울릴 것 같다.

좀비라서 행복해요?

<좀비의 시간> 이경석

내가 좀비가 된다면? 그냥 죽어버릴까, 그러기엔 억울하니까 다른 사람도 좀비로 만들까. 죽음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이 시간은 아마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경석의 <좀비의 시간>은 이 고통의 시간을 행복한 시간으로 바꾼다. “웃긴 얘기지만, 좀비에 물리고 나서 더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라는 주인공 준수의 대사에 이 만화의 핵심이 있다. 준수는 느닷없이 좀비에게 물리고, 소심한 백수에서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멋진 남자로 변한다. 좀비로 변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 만화는 좀비물의 단순한 규칙에서 진화했다. 인간은 좀비에게 무조건 쫓기고 좀비의 머리를 총으로 쏴서 죽이는 것이 기본이라면 이경석의 만화에는 좀비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슬픔과 희망이 동시에 녹아 있다. 말하자면 좀비애와 인간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광화문에 운집한 좀비들 사이에서 좀비가 된 아들과 그 아들을 죽여야 했던 형사 아버지의 운명적인 만남은 명장면이다. 장르의 공식을 무너뜨린 <좀비의 시간>은 B급 장르에서 S급 감동을 선사한 작품이다. 물론 이경석 특유의 유머도 빠질 수 없다. 굳이 비슷한 작품을 꼽으면 2004년 영국에서 제작된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닮았다.

에이즈 보균자를 사랑한 남자

<푸른 알약> 프레데릭 페테르스

20분의 1밀리미터의 얇은 고무, 즉 콘돔 없이는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연인이 있다. <푸른 알약>은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작가 프레데렉 페테르스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HIV 양성반응, 즉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인 카미를 사랑한 남자 프레데릭의 특별하지만 평범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그런 사랑은 아니지만 대신 에이즈 환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아들의 생활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담아낸다. 그들은 ‘푸른 알약’만 있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불안은 존재한다. 작은 상처에도 두려움을 느끼고, 콘돔이 살짝 찢어지기라도 한다면 바이러스 감염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부리나케 찾아간 의사는 바이러스 감염이 “지금 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을 때 하얀 코뿔소를 만나는 확률”이라고 말하지만, 그 두려움은 쉽게 떨쳐낼 수 없다. 그리고 남자는 그 불안이 자신의 사랑임을 깨닫는다.

<너는 내 운명>처럼 에이즈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지만, 소재 자체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고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려고 애써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들의 따뜻하고 행복한, 그러나 조금 불안한 삶을 엿보는 것뿐이다.

동심은 아름다워

<마음이 만든 것> 정필원

만화의 인물들이 실사로 눈앞에서 움직인다면 어떤 느낌일지 너무나도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다음 미디어세상’에서 그리 길지 않게 연재된 정필원 작가의 <마음이 만든 것>은 많은 이들에게 어린 유년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깨워주고 그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선머슴 같은 동주와 그저 꼬마로 느껴지는 호진은 둘도 없는 친구다. 고무줄놀이보다 축구가 더 좋은 동주는 엄마의 죽음도 아직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천둥벌거숭이 꼬맹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물고기를 놓아주기 위해, 그리고 선생님에게 얼굴을 붉히는 아빠에 대한 반항심으로 바다를 찾아 떠난다. 한여름 호진과 함께한 여행에서 기면증에 시달리던 아저씨도 만나고 성추행범으로 추정되는 변태도 만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도착한 곳은 엄마의 유해를 뿌렸던 바닷가 마을. 그곳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를 겪게 된 동주는 물고기와 함께 비로소 엄마를 떠나보낸다.

흘러가버린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 따뜻하고 섬세한 인물의 감성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치밀한 배경과 아름다운 색채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까지 모든 박자가 시계 태엽처럼 잘 맞물려 찬사를 받았다.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인생의 철학까지 던져준, 어른을 위한 성장물에 더 가깝다. 실사영화보다는 아름다운 색채와 풋풋한 감성, 순수한 마음을 오롯이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애니메이션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예쁜 로봇-왕따 짝궁

<3단합체김창남> 하일권

로봇을 사랑한 소년이 있다. 인간처럼 생긴(엄청 예쁜) 로봇 시보레는 고등학교에서 생활하며 시운전을 하게 되고 우연히 왕따인 호구와 짝이 된다. 친구가 없었던 호구는 자연스레 시보레에게 의지하고, 둘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그렇게 교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시보레가 감정이 없는 로봇이긴 하지만.

로봇과 인간의 교감,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흔하다.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이야기도 이젠 질릴 만하다. 하지만 전편인 <삼봉이발소>에서 외모콤플렉스를 다르면서 예뻐지고 싶은 평범한 여고생에게 생의 용기를 주었던 하일권 작가의 역량은 <3단합체김창남>에서도 뛰어나게 발휘된다. 청소년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 따돌림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네티즌의 공감을 얻었다. <3단합체김창남>은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원작의 그림이 출판만화나 기존의 웹툰과 달리 애니메이션 그림과 비슷해서 그대로 움직임만 주면 애니메이션이 완성되지 않을까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영화도 물론 가능하지만 이때는 무표정한 로봇 시보레를 연기할 여배우가 영화의 성패를 결정지을 것이다. <3단합체김창남>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웹툰이다.

찌질해서 더 뭉클해

<최강전설 쿠로사와> 후쿠모토 노부유키

40대 육체노동자 쿠로사와의 일상은 일, 퇴근길 혼자 한잔, 집, TV 시청, 잠의 반복이다. 그 나이 먹기까지 연애도 한번 못해본 건 물론, 친구도 없다. 혼자 지내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나날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외로움을 숨길 수는 없는 일. 생일 저녁 홀로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던 그는 주변의 즐거운 일행을 바라보다 “인망을 얻고 싶다, 크흑” 하며 자신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동료들의 신망을 얻는 데 성공, 다 함께 술자리를 갖게 된다. 작은 성공에 흥분한 쿠로사와는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중학생 불량배들을 야단치는데, 이게 사단이 되어 매복하고 있던 중학생들에게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는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중학생들과의 일전을 선포하고, 치밀한 계획과 집요한 추적 끝에 그들을 일망타진한다. 이후 동네 불량배들의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쿠로사와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 맞서 싸우며 전설이 되어간다. 잠깐의 비굴함으로 편안한 인생을 영위하는 게 인생철학이라면 철학이었던 그는 이 싸움으로 자신의 존엄함을 발견해나간다.

조금만 띄워주면 우쭐하고, 위기가 닥치면 우선 움츠리고 보는 덩치만 큰 이 남자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 불의와 맞서 싸우고, 궁극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은 <플라이 대디, 플라이>와 비슷하지만 주인공의 찌질함 지수가 높아 훨씬 더 뭉클하다. 가상 캐스팅은 젊은 시절의 주현, 또는 손현주?

호그와트와 비교하지 마시라

<강특고 아이들> 김민희

왜 한국 청소년영화엔 귀신만 나오나. 교육현실이 이 모양이라 원한에 찬 귀신만 나오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 식상하니 시원한 초능력자 학원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강특고는 강원도 오지에 있는, 초능력자를 키우는 학교다. 학생들은 변신능력· 천리이(耳)·괴력 등을 지닌 육체파 능력자와 텔레파시·염력 등을 지닌 정신파 능력자로 나뉜다.

혹여 <해리 포터> 같은 고상한 기숙학교를 상상할까봐 하는 말이지만, 이 학교 엄청 후졌다. 기차도 전기도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TV도 인터넷도 없고, 재래식 화장실에, 쓰러져가는 건물에… 심지어 교장도 시간만 나면 미소녀로 변신하는 초능력자이긴 하나, 그뿐. 특별히 초능력을 가르친다기보다는 초능력자를 격리해 고등교육을 받게 하는 기관이다. 이야기는 동물로 변신하는 능력을 가진 세나와 그의 오빠 태권소년 지문이 초대장을 받아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특별한 줄거리 없이 회마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되는 개그물인데, 독특한 캐릭터와 황당한 배경설정, 장면마다 빛나는 개그센스로 큰 웃음을 선사한다. 이글대는 야망도, 눈에 불을 켠 경쟁도, 뼈에 사무치는 원한도 없는 유쾌한 학원물! 가상 캐스팅은 세나 역에 이민영, 박예진.

캐리보다 화끈한 노처녀들

<플리즈 플리즈 미> 기선

칙릿 계열 만화로 리얼리티나 재미 면에서 단연 으뜸. 연애하고 싶어 안달난 일러스트레이터 구애리,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커리어우먼 강나경, 남자를 낚는 천재적 기술보유자 점숙은 서른살 동갑내기 친구다. 얼핏 멀쩡해 보이는 이들이지만 하는 짓은 바보 수준. 구애리는 한껏 차려입고 간 클럽에서 모르는 남자와 벨트버클이 얽혀 무대를 뒹굴고, 강나경은 저돌적으로 대시하는 남자후배에게 딱지를 놓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설사를 하고(그래서 결국 후배랑 사귄다!), 점숙은 알고 보니 심각한 애정결핍에 성형중독이다.

여느 칙릿과 같이 30대 여성의 일과 사랑, 자아 찾기를 다루고 있는데, 어딘가 모자란 주인공들의 이야기라 더 정이 간다. 러브 라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개그물이지만 돈, 외모, 계급 같은 문제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매력. 노처녀 시장은 점점 커지는데 <싱글즈> 이후 이렇다 할 ‘노처녀물’이 부족한 한국영화시장에서 노려볼 만한 수작. 가상 캐스팅은 구애리 역에 이하나 혹은 공효진.

천명 중 한명, 당신 아닙니까

<이키가미> 마세 모토로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24시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배경은 일본,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나 ‘이키가미’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가번영유지법을 도입한 뒤 국가생산이 증대하고 출산율은 높아지고 범죄율을 낮추는 효과까지 얻는다. 이 법에 따라 모든 국민은 초등학교 입학 때 ‘백신’을 맞는데 1천명 중 1명의 확률로 나노 캡슐이 들어가 있다. 이 캡슐이 들어 있는 주사를 맞은 사람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누가 백신이 들어간 주사를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게 해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만화의 주인공인 이키가미 배달원 후지모토는 사망 바로 하루 전에 해당자에게 사망예고증을 전달하고 그의 시신을 수습하는 임무를 맡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친구에게 마구 폭력을 가하던 남자, 국가번영유지법에 광적인 열광을 보내던 청년, 모두에게 똑같이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고, 이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자신의 삶을 정리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까지 했지만, 굳이 한국영화로 보고 싶은 이유는 책 속 세상이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법에 따라 국가의 번영을 위해, 권력의 유지를 위해 국민의 생명을 관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일본식 전체주의가 거슬린다는 독자가 있기는 하나 조지 오웰도 <1984년>에서 국민을 통제하는 암울한 미래사회를 예견하지 않았나.

글: 장인숙, 김송은, 신두영 <팝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