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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이 120층을 걸어올라갔다?
정리 문석 2009-12-22

최동훈 감독이 사진과 함께 들려주는 <전우치> 촬영 에피소드

12월23일 개봉하는 <전우치>는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을 지향하는 대중영화다. 어깨에 힘을 뺀 채 시종 경쾌한 리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양새는 <범죄의 재구성> <타짜> 같은 최동훈 감독의 전작을 닮았고, 하늘을 붕붕 날며 펼치는 봉술이나 하얀 연기와 함께 변신이 이뤄지는 둔갑술은 판타지의 한국적 양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8개월 넘도록 진행된 촬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전우치 역을 맡은 강동원이 “기술시사를 보는데 매 장면 고생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가슴 한구석이 찌릿찌릿했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우치>의 현장 사진을 보며 최동훈 감독이 들려준 뒷이야기는 결국 관객에게 즐거움과 쾌감을 선사하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전우치>의 배우, 스탭들의 땀과 눈물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를 통해 <전우치>의 주요 캐릭터와 촬영과정을 미리 엿보자.

전우치는 강동원을 닮은 캐릭터

<전우치>는 강동원이라는 배우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시나리오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썼으니까요. 동원이를 처음 만난 건 <타짜> 시나리오 쓰기 전 사적인 자리에서였습니다. 무척 개성있고 엉뚱한 구석도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전우치라는 캐릭터는 강동원의 장난꾸러기 같고 소년스러운 이미지에 큰 영향을 받은 셈이죠. 사실 전우치가 슈퍼히어로라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한국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이 캐릭터에서 중요한 건 넉살과 엇박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명감이나 의무감 따위가 거의 없는 대신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자기 명성에만 신경쓰는 천방지축 히어로란 말이죠. 그런 캐릭터에 강동원은 정말 딱 어울렸고 잘 소화해냈습니다.

강동원의 한복 패션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벌써 나오고 있는데요, 구상 때부터 전우치의 한복은 고증과 무관하게 가자는 쪽이었습니다. 전통적인 한복은 화담(김윤석)이 입고 있으니 굳이 전우치까지 그런 스타일을 입힐 필요가 없었죠. 컨셉을 설명하자면 코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영화의 뉘앙스는 판타스틱하고 만화적이지만 기본적인 드라마 구성은 결국 서부극이거든요. 그래서 전우치의 조선시대 복장조차 코트 분위기를 살리자고 했죠. 여기에 목도리도 하고. 보세요. 이런 옷도 강동원이 입으니까 근사하잖아요. 그런데 부작용이 있긴 했어요. 한밤중에 동원이가 서성거리면 모르는 사람들은 저승사자로 착각하더라고요.

임수정, 한복 어울릴까 걱정했지만…

임수정이 연기한 과거 속 과부나 현재의 서인경은 약간 이상한 여자죠. ‘자뻑’이 심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자연인 임수정은 굉장히 이지적인데 또 발랄한 면도 갖고 있어요. 연기의 폭도 그만큼 넓죠. 이 영화에서 임수정은 세 가지 모습을 보여줘요. 하나는 전우치에게 보쌈당하는 조선시대의 과부이고, 또 하나는 스스로 배우가 되기를 갈망하는 여배우의 스타일리스트, 나머지는 잠시 변신하는 악녀죠. 악녀는 메이크업을 강하게 처리해서 표현하면 되고 스타일리스트는 평상시 수정이의 모습을 보이면 되는데 고민은 과거의 모습이었어요. 그동안 임수정은 한복을 입은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과연 어떨까 걱정이 됐죠. 그런데, 보세요. 근사하지 않나요. 필리핀에서 찍은 장면이 있는데, 촬영 당시 호텔 로비에서 대기 중인 수정이는 한복을 입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나가던 필리핀 사람들이 어찌나 사인공세를 펼치던지. 한복이 예쁘게 어울렸나봐요.

김윤석의 화담은 품위있는 악당

김윤석 선배는 <범죄의 재구성> 때 형사 역을 했고 <타짜>에서 아귀를 연기했는데, 이번에도 악역인 화담을 연기해주셨어요. 한편으로는 아귀보다 무시무시한 악역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비적인 태도를 계속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굳이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데서 보여지는 평면적인 악당은 싫었어요.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믿고 있는 악역이야말로 정말 멋있는 악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담도 품위를 잃지 않는 악당으로 설정했던 거예요. <타짜>의 아귀가 비열한 신사라는 점에서 매력이 발산됐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전우치와 초랭이? 돈키호케와 산초지

유해진씨는 <타짜> 때 처음 같이 일하면서 참 좋은 배우다 싶었어요. 해진씨가 맡은 초랭이는 원래 개인데 도술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죠. 전우치와 초랭이의 관계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그것과 비슷해요. 초랭이는 전우치를 주인으로 모신다기보다 친구처럼 대해요. 자꾸 대들고 일대일로 싸워서 이기고 싶어하고. 동물적인 괴력을 갖고 있지만 가끔씩 비굴함도 드러내죠.

어수룩해서 더 정이 가는 세 신선

이들은 조선시대부터 신선으로 살아왔던 세명의 남자입니다. 아주 무능하고 셋이 합쳐도 아이큐가 50이 될까 말까예요. 이들은 관객에게 이 영화를 믿게끔 하는 존재이기도 해요. 이런저런 소동도 많이 일으키고요. 내 영화에는 이런 인물들이 꼭 등장하는데, 앞뒤가 딱딱 떨어지는 것보다는 뭔가 어수룩한 구석이 있는 게 더 좋아 보여서죠. 세명의 신선은 현대에 와서 스님, 신부, 무당으로 살아가는데, 생각을 해보니 아무래도 신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성직자 계통이 아닐까 싶었어요. 송영창 선배님은 리더 격인데 참 엉뚱한 면이 있더라고요. 그런 쪽을 살려보자고 했어요. 주진모 선배는 대사가 아주 정확해요. 아무래도 모난 성격의 신선에 적합하다 싶었죠. 김상호씨는 계속 함께해왔는데 이만한 배우를 보기가 어려워요.

정두홍 무술감독도 혀 내두른 강동원의 와이어 실력

<전우치>의 액션 컨셉은 일반 액션영화와는 좀 달라요. 인물끼리 맞붙어서 격투를 벌이는 쪽과는 거리가 있거든요. 대신 인물들이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게 중요했어요. 하늘을 날거나 벽에 붙어다니거나 자유롭게 점프를 하거나. 초랭이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 와이어가 여러 군데 붙어 있는데, 가장 쉬운 장면에서도 배우들을 보통 6개 이상의 와이어로 매고 연기를 했어요. 사실 시나리오 쓸 때는 이런 장면이 정말 쉬운 줄 알았는데. 제가 성격이 급해요. 그리고 촬영 전 <박쥐> 현장에 가보니 와이어신을 하루에 4컷밖에 못 찍더라고요. 안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이런 식이었어요. “빨리! 줄 다 맸으면 뛰어서 갑시다!” 아주 허겁지겁 찍었던 거죠.

강동원이 벽을 수직으로 타는 장면은 가장 어려운 장면 중 하나였어요. 이 사진은 와이어를 다 지운 상태라 안 보이지만 동원이는 10개도 넘는 와이어를 붙인 채 연기해야 했어요. 이 장면에서 강동원은 수직으로 벽에 붙어서 뛰어다녀야 하고 반대편 벽으로 점프해야 했는데, 균형잡아야죠, 발로 벽을 짚고 달려야죠, 멋있게 점프해야죠, 어휴…. 사실 찍기 전에 과연 이 장면을 찍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 강동원이라는 친구, 워낙 운동신경이 좋더군요. 하루 만에 완성했으니 다행이죠. 정두홍 무술감독조차 “신은 불공평하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간신히 익힌 것을 쟤(강동원)는 이렇게 빨리 해내냐”고 했을 정도예요. 동원이도 힘들긴 했나봐요. 한겨울이었는데 컷을 하면 곧바로 차디찬 흙바닥에 누워서 쉬곤 했으니까요.

박물관 장면 중 동원이가 건물 위에서 바닥으로 뛰는 장면에서도 대단했죠. 보통 건물 6층 높이였는데, 요괴 2명과 함께 뛰다보니 한꺼번에 촬영하기가 어려워서 한 20번쯤 찍어야 했어요. 동원이가 긴장하는 눈치기에 정두홍 무술감독이 “다시 올라올 때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계단으로 올라오면서 긴장을 풀어라”라고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동원이가 너무 지쳤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계속 계단으로 올라왔다는 거예요. 스무번을. 정 감독님은 긴장 풀릴 때까지 한두번만 그렇게 하라는 거였는데 말입니다. 6층 높이를 20번 올라왔으니 120층을 걸어올랐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인간이랍니다, 강동원은. (이건 해당되는 스틸이 없는 관계로 좀 벙벙한 와이어 연기 장면을 써주시면 될 듯)

옥상 끝에 발디디고 선 기분이란

이 장면, CG가 아닙니다. 테헤란로 고층빌딩 옥상에서 찍었답니다. 강동원은 실제로 그 빌딩 옥상 끝에 서 있었어요. 난간도 없는데. 물론 뒤에서 와이어가 지탱을 해주고 있었지만 바람까지 세게 불어서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동원이는 무서워하지 않더라고요. 조선시대의 전우치가 현대에 와서 활약하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이런 현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도심의 야경이 주는 시각적 쾌락이 있잖아요. 하여간 동원이가 대단한 게 크레인에 달린 카메라로 앞모습을 찍다보니 주변에 누가 있으면 안되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동원이는 혼자 슬레이트를 치고 연기까지 했어요.

찍는 데만 11일… 동원아, 미안하다ㅠ

아마 강동원이 가장 힘들어했던 장면이었을 거예요. 전우치가 둔갑술로 10명의 가짜 전우치를 만들어서 요괴와 싸우는 장면이에요. 뒷모습만 나오는 장면은 체격이 비슷한 대역을 쓰면 됐지만 전우치의 분신이 싸우는 모습은 동원이가 직접 연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얼굴을 보여줘야 하니까. 그렇게 각각 찍은 장면을 나중에 합성한 거죠. 이 장면을 찍는 데 무려 11일이 걸렸는데, 동원이가 점점 지쳐가더라고요. 그럴 법한 게 매일 시작부터 끝까지 동원이 혼자서 액션을 연기해야 했으니 말입니다. 와이어를 매단 채 봉을 휘두르고, 바닥을 뒹굴고…. 안쓰럽더라고요. 그런데 동원아, 편집을 해보니까 네 얼굴이 잘 안 보이는 장면도 있던데, 미… 미안.

<왕의 남자> 찍었던 그곳이랍니다

전우치가 옥황상제인 양 둔갑해서 구름을 타고 내려와 왕을 속이는 장면입니다. 아마도 이게 <전우치전>에서 가져온 유일한 장면일 겁니다. 전우치, 선녀, 왕, 신하, 궁녀, 궁중악사 등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가장 큰 몹신이었는데 바빠서 계속 뛰어다니면서 찍었던 기억이 나요. 이 장면에서는 전우치의 한국적 도술의 세계가 소개되는데, 바람을 불게 하고 비를 내리게 하며 축지법을 쓰거든요. 전우치의 관심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는 점 또한 드러나죠. 이곳은 부안의 <왕의 남자> 세트장인데 일단 앞마당이 넓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어요. 와이어를 매달 크레인을 주차할 수 있어야 하니깐요. 아, 그리고 왠지 <왕의 남자>를 찍었던 데서 찍고 싶더라고요. <왕의 남자> 관객이 얼마였지?

둔갑술, 근사하죠?

둔갑술은 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술 중 하나인데, 정말 만화에서처럼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 속에서 변신하는 모습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그게 한국적인 느낌 같아서. 모핑으로 변신하는 건 싫더라고요. 이렇게 연기를 피워올리고 CG를 덧붙여 근사한 둔갑술이 표현됐죠.

도심이 멋지게 드러났던 청계천 촬영

청계천에서 촬영을 진행한 건 앞서 말했던 도심 공간을 멋지게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청계천에서 바라보는 빌딩의 스카이라인이 아름답거든요. 찍는 일은 한마디로 난리통이었죠. 시내 한가운데인데다 워낙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잖아요. 도무지 통제가 되질 않았어요.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숭례문 위에서 찍으려 했어요. 화재사고로 그게 불가능해지면서 청계천으로 옮긴 거죠. 하긴 숭례문이 화재를 입지 않았어도 어쩌면 안 찍었을지도 몰라요. 할리우드영화 <점퍼> 보셨나요? 거기 주인공이 숭례문 위에 서 있는 장면이 잠깐 나오잖아요. 그리고 처음 시나리오에는 그렇게 공간을 마구 이동하면서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화들짝 놀라서 다 바꿔야 했어요. 그런데 잠깐만. 청계천에서 어떤 정치적 함의를 찾으려 하진 말아주시라고요. 흠흠.

자동차 추격신, 정말 아찔했죠

모든 촬영이 전투였지만, 자동차 추격신도 대단했죠. 영등포에서 세 블록 정도를 막아놓고 촬영을 진행했어요. 직접 스턴트를 벌이는 자동차가 대여섯대 있었고 나머지 50대가량은 자동차 동호회 분들을 모셨어요. 비교적 잘된 것 같아요. 제가 자동차 추격장면만 세 번째인데 이젠 좀 잘할 때도 됐잖아요. 그런데 막판에 정말 아찔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배우가 직접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주진모 선배가 운전대를 잡았어요. 그 옆에는 송영창 선배가 앉아 있고 뒷자리에는 강동원, 김상호가 있었죠. 그리고 차 지붕 위에는 요괴 역을 맡은 공정환이 와이어에 매달려 있었어요. 주진모 선배가 급회전을 하는데 바닥이 얼어 있어서 그만 차가 미끄러진 거예요. 인도를 뛰어올라 소화전과 부딪힌 뒤 나무를 들이받았는데,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바람에 충격이 완화된 모양이에요. 자칫하면 차가 뒤집힐 수도 있었는데 차가 그냥 멈춘 거죠. 불행 중 다행, 그게 딱 맞는 표현일 겁니다. 차 안의 배우도 문제지만 지붕에 있던 배우를 생각하면…. 아직도 떨리네요.

아무튼 이 자리를 빌려서 의욕만 너무 앞세웠던 감독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힘을 들여야 했던 배우와 스탭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부디 너른 아량으로 용서를 빌겠습니다. (꾸벅) 아, 그리고 그날 영등포에서 “니들이 뭔데 길을 막고 난리냐”는 취객에게 멱살잡혀 경찰서로 묵묵히 끌려가야 했던 제작부원들께도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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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코멘터리 최동훈·사진제공 영화사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