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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t see] <…인빅터스> 지금 사랑하는 지도자와 살고 있습니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우연이지만 상징적 정치인을 소재로 한 세편의 영화가 몇주 간격으로 한국에서 개봉했다. 로버트 F. 케네디를 역사의 기념비로 상정하고 당대의 미국을 그 아래 모이게 한 <바비>가 먼저 왔고, 하비 밀크라는 정치적 개척자의 개척사를 보여주다 아름다운 꿈이 끝나는 것처럼 그의 생도 함께 멈추는 영화 <밀크>가 다음에 왔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가 지금 왔다. 차이점이 있다면 앞선 두 영화의 주인공이 모두 암살당하고 현실이 잠재적 가능성과 함께 그 다음 세대에 넘겨진 것에 비해 이 영화는 믿지 못할 만큼 고전적 태도로 당대의 희망과 승리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인권운동가로 27년간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인류의 대통령으로 불리게 된 넬슨 만델라에 관한 전기로 알려져왔는데, 그러니까 그건 잘못 알려진 것 같다. 무엇보다 전기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한편의 시(원제 <인빅터스>는 19세기 후반 영국 시인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가 지은 시의 제목이다)를 빌려 도착한 이 영화는 어딘지 우화에 훨씬 가깝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몇대의 차량 행렬이 도로를 지난다. 그 양편으로 한쪽에서는 백인 아이들이 럭비를 하고 있고 도로를 사이에 끼고 반대편에는 흑인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차량행렬을 보자 흑인 아이들은 ‘마디바’(흑인들이 부르는 넬슨 만델라의 애칭)를 외치고 환호하며 철조망에 매달리고 백인 아이들은 그게 궁금하여 백인 코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코치는 “만델라라는 테러리스트가 석방되는 것이며 개에게 나라가 넘어가는 이날을 기억하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세상은 코치의 말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특히 대통령에 취임한 뒤 만델라는 백인들의 전유물이자 흑백차별의 상징처럼 보였던 럭비에 이상하리만치 특별한 열광과 지지를 보낸다. 대통령의 뜨거운 애정 속에서 주장 프랑소와 피나르(맷 데이먼)가 이끄는 남아공 럭비팀 스프링복스는 1995년 남아공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예상을 뒤집고 우승하며 흑백 화합의 구심점이 된다.

럭비팀 주장과 경호팀장은 또 다른 주인공

영화만으로 당시의 정치적 의중까지 논할 순 없다 해도 이것은 엄연히 실존했던 이야기다. 원작자 존 칼린이 만델라를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쓴 책에 바탕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책의 내용 중 극히 일부분인 럭비팀과 만델라의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으므로 실은 원작과 크게 상관이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스트우드는 처음부터 만델라의 전기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닌 것 같다. 연출의 시작도 만델라 역을 맡은 모건 프리먼 때문이었다. 프리먼은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 연출을 위해 짐바브웨를 자주 방문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자주 시간을 보냈고 만델라를 가까이서 만날 기회가 있었으며 급기야는 만델라에게서 나를 연기할 배우로는 프리먼이 제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임을 얻었는데, 이스트우드는 그런 모건 프리먼의 귀띔으로 이 영화의 연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다면 정작 이스트우드 본인은 무엇 때문에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그 점에서 이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을 만델라만으로 한정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영화에는 한명이 아니라 세명의 주인공이 있다. 첫 번째 주인공은 물론 만델라다. 그가 럭비팀에 보내는 특별한 애정에 관련된 일화들이 따라서 영화 내용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 일화들은 고루함과 유머러스함이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런데 만델라가 그렇게 행동할 때 주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가 핵심이다. 영화에서 럭비팀 스프링복스의 주장이자 백인인 프랑소와 피네르는 만델라의 생각을 놓치지 않고 읽어내는 인물에 속한다. 그가 두 번째 주인공이다. 그가 럭비팀을 정비하고 변화시킨다. 세 번째 주인공을 대통령 경호팀의 흑인 경호팀장이라 상정하며 영화를 보아도 좋다. 그는 백인 경호원을 대통령 경호원팀에 배치시킨 만델라의 의중을 알면서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곧 함께 어울려 럭비를 즐기는 동료가 된다. 만델라를 하나의 점으로 놓고 그려진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공동체와 그 대표적 인물의 삼각형은 이 영화를 구성하는 가장 공고한 축대다. 그리고 그들을 보는 것이 실로 가치있다.

물론 운동경기에 한 국가의 지도자가 갖는 비상한 개인적 관심은 시대와 국가를 뛰어넘어 우선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주로 권력이 스포츠를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그걸 가장 웅장하게 악용한 것은 알려진 것처럼 히틀러다. 그러니 만델라가 국민의 화합을 위해서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하며 운동경기로 국민을 통합했다는 것만으로 그의 행위를 칭송하는 것은 위험한 논리다. 하지만 만델라는 흑인들의 운동경기였던 축구가 아니라 백인들의 전유물인 럭비를 택했다. 흑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새로운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흑인들이 바라는 바를 만족시키지 않고 백인들이 공고히 해왔던 것에 그리하여 잃기를 두려워하는 것에 도리어 진심으로 애정을 보이며 화해의 물꼬를 튼다. 그렇다면 이때 만델라는 단지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계산된 승부수를 던진 것인가.

흑백차별의 상징인 럭비를 좋아한 만델라

영화에서 만델라의 부하직원이 중요한 다른 사안을 다 제쳐두고 럭비팀 일에 관심을 갖는 그에게 아직도 이게 정치적인 것과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은근한 웃음으로 대답을 회피한다(처음에 만델라는 그게 정치적으로 유용하다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때 그의 웃음은 정치적으로 능숙한 제스처가 아니라 정말 흥미를 느끼는 자신의 솔직함을 감추지 못해 보이는 난처함의 표시다. 진짜 믿기 어려운 놀라운 기적이 바로 이것이다. 만델라는 어떻게 자기를 박해한 백인들의 스포츠를 진심으로 좋아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단 말인가. 이걸 두고 이스트우드는 인터뷰에서 만델라는 “인간의 본성에 반대되는 일”을 한 것이라며 깊은 존경을 표했다.

적어도 영화에서 만델라는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전유하지 않고 정치적 원한을 스포츠로 무력화한다. 그것이 만델라의 진심이자 힘이며 이스트우드가 이 영화에 손을 댄 이유다. “만델라는 이것을 편의적인 정치적 플랫폼으로 유용하지 않았다. 그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것은 내 평생에 내가 따른 철학이기도 하다.… 마디바는 잘 알고 있는 척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최선을 끌어내는 방법이었고 그 과정에서 그 사람들은 좀더 나은 사람들이 되었고 그것이 이 영화의 모든 요점이며 핵심이다. 이건 게임이 아니며 정치도 아니다. 고무하는 그의 능력에 대한 것이다.” 만델라가 믿고 실천할 때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환경과 사람에 대한 변화를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각자의 크고 작은 공동체 안에서 한명의 위대한 지도자(만델라)의 현명함과 두명의 작은 지도자(럭비팀 주장, 경호원팀 팀장)가 탄생하는 순간을 보게 된다.

원제 ‘인빅터스’는 라틴어로 ‘굴복하지 않는, 정복되지 않는’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시인 어네스트 윌리엄스 헨리가 20대의 젊은 나이에 질병에 걸려 한쪽 다리를 절단하면서도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을 스스로 다짐하며 쓰던 시의 제목이다. 그 시의 마지막에는 “상관치 않으리라, 천국의 문 아무리 좁고/어떤 지옥의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나는 내 운명의 주인/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고 적혀 있다. 만델라가 어둡고 좁고 습한 골방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고 읽었던 시라 한다. 만델라는 그 시를 읽으며 나의 철저한 주인이 되어 철저하게 남의 주인이 되지 않을 것을 다짐했고 기적처럼 행했다. 만델라에 대한 이스트우드의 감동이 여기에 닿아 있고 우리의 감동도 그걸 받아들이는 데 있다. 이스트우드가 메시지의 집배원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번에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러므로 너무 간단하다. 우리는 어떤 지도자와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하며 스스로의 삶에서 어떤 지도자가 될 것인가. 이 영화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절실하고 진지한 우화로 읽힌다면 그건 우연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다. 이 영화를 봐야 한다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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