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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오마주 바치길 두려워해서는 안되지”
정리 장영엽 2010-03-23

마틴 스코시즈 감독 인터뷰

-<셔터 아일랜드>는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을 먼저 읽었나, 시나리오를 먼저 읽었나. =시나리오가 먼저였다. 심지어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읽었다. 그때가 밤 10시30분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이 있어 잠자리에 일찍 들었어야 했는데 도저히 대본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더라. 시나리오는 고전영화의 문법과 고딕소설의 본질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건 유혹적인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 영화는 1940~50년대의 누아르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있다. 혹시 영화를 만들면서 염두에 둔 고전영화들이 있나. =1940년대 초 발 루튼이 제작한 저예산영화의 분위기와 정서를 참고했다. <캣피플> <죽은 자들의 섬> <일곱 번째 희생자>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등의 작품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크 러팔로에게는 <로라>와 <과거로부터>를 보여주었다. <로라>에서는 주인공 다나 앤드루스의 넥타이 매는 법이나 방 안으로 들어가는 동작 등을 보도록 했고, <과거로부터>에서는 자신이 어느 상황에 당면했는지 알지 못하는 캐릭터를 이해해보라고 했다.

-이처럼 많은 고전영화를 참고한 이유가 뭔가. =나는 추억을 좋아한다. 다시 말하면 나는 보존주의자(preservationist)다. 우리는 고전영화의 분위기를 되살려낼 수는 없다. 그런 영화들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만들어졌으니까. 하지만 그걸 참고할 수는 있지 않겠나. 우리는 오마주를 바치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다만 경의는 진지하게 바쳐야 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는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에 이은 네 번째 작업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단지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작업하는 방식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작업 방식이 좀더 난해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촬영이 끝나고 두달 뒤 레오와 만나 몇 장면을 돌려보았다. 그는 “저 장면 찍을 때 정말 끔찍했는데”, “기억나네요, 젠장! 저때는 완전 최악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장면마다 연발하더라. 구토장면이나 숲속을 달리는 장면을 찍으면서 겪었을 고통이 그의 말에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아마도 이 영화는 그의 출연작 중 가장 고된 영화였을 거다. 하지만 나는 레오가 <셔터 아일랜드>를 통해 놀랄 만한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촬영과 조명은 <셔터 아일랜드>의 음산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듯하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테디의 심리상태를 조명과 화면 분위기, 그리고 섬 자체로 표현하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따라서 프레임마다 주인공의 정신적 상태를 함께 전달해야만 했다. 우리는 세트장 이상의 장소를 만들어내야 했다. 나는 촬영감독 로버트 리처드슨, 그리고 미술감독 단테 페레티와 끊임없이 의논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진짜 통제하는 자이며 누가 통제받는 자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시각적 표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최근 당신이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이 예전과 많이 다른 듯하다. 예전에는 영화에 뭔가 터뜨리고 분출하는 지점이 있었다면 최근작들에선 많이 차분해진 것 같다. =다른 많은 감독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제 젊었을 때처럼 화를 쉽게 내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라도 유머로 대처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나이가 들면서 분명 바뀐 듯하다.

-지금은 CG를 이용한 블록버스터나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 필름이 각광받는 시대다. 당신이 추구하는 지적이고 교양있는 영화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데. =영화사가 시작된 지도 벌써 100여년이 지났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나는 간밤에 우리 영화의 작가인 폴 슈레이더를 만났는데, 그가 나에게 이러더라. 마티, 이해할 수 있어? 젊은 사람들은 컴퓨터를 잘 쓰네. 그들은 <분홍신>(마이크 파웰이 만든)의 복원판 DVD를 보며 자네의 코멘터리를 들을 거야. 그중 몇몇은 스카이프라고 부르는 인터넷 전화로 이렇게 통화하겠지. “얘, 나 <분홍신> 보는 중인데 여기 스코시즈 코멘터리도 있어.” 이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다. 새로운 세대는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본다. 그리고 난 그 방식이 뭔지를 알지 못한다. 난 그저 내가 아는 대로만 행동할 뿐이다. (웃음)

-다음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나. =최근 <HBO>의 신작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파일럿 제작을 끝냈다. 지금은 조지 해리슨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를 작업하고 있고, 작가 프란 르보비츠를 다룬 또 다른 다큐멘터리도 작업 중이다. 이후에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전기영화 제작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상 인터뷰는 <뉴욕타임스> <텔레그래프> <셔터 아일랜드>의 기자회견 녹취에서 발췌 및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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