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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분노와 공포가 진짜 무섭지
강병진 사진 오계옥 2010-07-06

노마비의 <살인자 o 난감>

어떻게 읽어야 될까. 웹툰 <살인자 o 난감>의 제목은 여러 갈래로 읽힌다. 살인자 영난감, 살인장난감, 아니면 살인자 난감. 지난 3개월 동안, <살인자 o 난감>을 연재한 작가 노마비는 “살인자 이응난감”으로 발음했다.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비밀이라며 끝까지 감췄다. 유추해볼 수는 있다. <살인자 o 난감>은 어느 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20대 청년 이탕과 형사 장난감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평범하고 어중간하게, 그리고 소심하게 살아온 이탕에게 이 살인은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다. 첫 번째 살인이후, 살인을 감추기 위해 또 살인을 저지른 그는 자수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또 다른 난감함에 빠진다. 그리고 또다시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 그런데 그가 죽인 인물들은 알고보니 정말 죽어도 싸다 싶은 죄를 가진 이들이다.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누가 죽였는가가 아니라, 그들의 악랄한 과거로 옮겨가고, 덕분에 이탕의 죄는 관심 밖의 사안이 되어버린다. 그 순간 살인자가 느끼는 건 묘한 희열이다. 살인이라는 행동은 점점 위험한 장난감이 되어가고 있다. 살인장난감이든 살인자 난감이든 <살인자 o 난감>의 적절한 발음이 아닌 건 아니다.

4컷 만화의 에피소드가 모이니 하나의 이야기

이야기만 놓고 보면, <추격자> 등 연쇄살인범을 다룬 스릴러영화를 연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살인자 o 난감>은 범죄행각 이전에 그가 살인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우연의 상황들이 기묘한 작품이다. 내 분노로 죽인 그 사람이 하필 진짜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다니. 절묘한 우연의 연속은 주인공을 변화시키는 한편, 지속적인 긴장을 불어넣는다. 은근히 그의 범죄를 응원하고픈 마음도 생긴다. 한번도 자신의 분노를 분출해본 적이 없던 사람에게 주어진 초인적인 운명이랄까. 어쩌면 주인공 이탕에게 살인은 숨막히는 일상에서 가까스로 찾아낸 산소호흡기일지도 모른다. 다소 불경스러운 공감을 하던 도중 이탕을 쫓는 형사 장난감이 등장했다. 껌씹기를 즐기는 관록의 형사인 그도 다른 이들에게 얕보이는 게 싫어 형사가 된 남자다. 타고난 직감을 가진데다, 형사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분노를 공감하는 그의 캐릭터 또한 만만치가 않다. <살인자 o 난감>을 ‘정주행’하고 있는 독자들이 양쪽으로 편이 갈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야기의 성격과 달리 간결하면서도 귀여운 그림체를 활용하는 것도 <살인자 o 난감>의 매력. 기괴한 표정과 어두컴컴한 배경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체는 작품의 프롤로그에만 등장했고, 이후 몇몇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긴장감을 조이고 있다. 일반적인 웹툰처럼 세로형식이 아니라 4컷 만화의 형식을 활용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모두 붙여놓으면 하나의 이야기지만, 4컷마다 나름의 완결을 짓고 있다. 작가가 매회 연재하는 분량은 4컷 만화 2개를 1회로 칠 때, 대략 3, 4회. 컨디션에 따라 다르지만, 긴장의 이완과 수축을 위해 일부러 분량과 연재속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독특한 그림체와 전개형식, 이야기에 반한 네티즌은 대부분 “레알 몰입도 쩌ㄹ어”라며 열광하고 있다.

1인미디어에 연재되고 있기 때문에 <살인자 o 난감>은 어느 은둔고수의 통쾌한 한방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러 웹툰을 오랫동안 섭렵한 이들이라면, <살인자 o 난감>의 그림체에서 <꼬마비의 그림일기>란 또 다른 웹툰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03년부터 꼬마비란 닉네임으로 일상만화를 그리던 작가는 ‘진짜’ 이야기를 구상했고, 전작과 다른 성격에 맞춰 ‘꼬마비’를 ‘노마비’로 바꾸었다. “소소한 활동 경력은 있지만, 프로작가로 데뷔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살인자 o 난감>은 잘 안될 경우, 아예 펜을 놓겠다는 각오로 그린 작품이다. 처음에는 다 그려놓고 포털 사이트를 찾아가려 했지만 알고보니 그런 작가가 한달에만 100명이 넘는다더라. 일단은 독자들의 반응을 먼저 얻자는 생각에 블로그를 통해 연재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장난감 형사의 모델이 된 친구 백승재씨와의 대화였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죽고 싶냐?’, ‘죽여버릴까보다’라고 말할 때, 일본 사람들은 ‘죽어!’(시네しぬ)라고 말한다. 말에 깃든 살인충동의 차이에서, 노마비는 일상의 분노가 직접적인 살인으로 옮겨진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후 온갖 사건 뉴스를 수집했고, 지인을 통해 실제 형사를 만나 취재를 하기도 했다. 귀여운 그림과 묘하게 조응하는 생생한 대사는 그런 취재에서 길어올린 것이다. “평소 업데이트가 늦을 때는 대부분 대사가 잘 풀리지 않은 경우다. (웃음)” 이야기의 성격상 처음 구상한 그림체는 지금과 달랐다. “원래는 프롤로그에 나온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사실적인 그림이 점점 어려워지더라. 내가 할 수 있는 미묘한 표현들이 오히려 살지 않았다. 나에게 맞는 무기를 찾는 한편, 귀여운 그림으로 센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죽음 3부작을 기대하시라

<살인자 o 난감>은 6월23일 현재, 159회를 연재 중이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지금까지가 전체 이야기의 10분의 1에 해당되는 분량이지만, 지금은 원래 분량에서 상당 부분을 쳐내는 계획을 고민하고 있다. 물론 이미 모든 이야기를 구성해놓은 이상, 기본적인 정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전하고 싶다. 흔히 대화 몇 마디를 해놓고 한 사람에 대해 모든 걸 다 안다고 여기는 게 있지 않나. 그런 오해에서 빚어지는 공포가 있을 것이다. 실제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도 내가 사람들에게 저질렀거나, 저지를지 모르는 실수에서 오는 공포다.” 노마비가 그리는 일상적인 공포는 당분간 ‘죽음’이라는 테마를 통해 묘사될 예정이다. <살인자 ㅇ 난감> 이후 죽음을 테마로 한 두편의 작품을 더 그릴 계획이라고. <살인자 ㅇ 난감>이 ‘타살’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후 두 번째 작품은 ‘자살’을 그리게 될 것이고, 세 번째 작품은 ‘자연사’ 혹은 지금은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죽음을 묘사할 것이다. 말하자면, 죽음 3부작이다. 노마비는 작품의 전개와 관련된 몇몇 질문에서 말을 아꼈다. 아직은 감춰야 할 때라고 하니, 언젠가는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그때 노마비의 얼굴과 실명까지 드러날지는 모르겠다. 얼굴 공개를 꺼려한 그는 <씨네21>이 찍은 자신의 사진을 가공해 보내왔다. 작가의 얼굴을 가린 저 파리는 장난감 형사가 보던 CCTV 화면에 나타난 그 파리다. 힌트는 있다. 노마비의 얼굴은 작품 속 이탕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한다면 희망 감독과 배우 캐스팅은. = 처음부터 끝까지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영화였으면 한다. 홍상수 감독님이 연출하면 진짜 일상적이라 더 무서운 영화가 나올 것 같다. 배우들도 잘 알려진 얼굴이 아닌, 연극쪽에서 은둔하고 계신 고수분들이 출연해주셨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웹툰이나 만화, 만화가를 꼽는다면.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를 매주 두근거리며 보고 있다. <모 베러 블루스>를 그렸던 박재수 작가의 작품들도 좋아한다.

-내 인생의 영화 한편을 고르라면. =조지 루카스 감독이 제작한 짐 헨슨 감독의 <라비린스>. 인형에 손을 넣어서 연출한 특수효과들 하며 모든 게 너무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