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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슈퍼히어로는 이제 시작일 뿐
김용언 사진 최성열 2010-07-06

고영훈의 <트레이스>

거의 속을 뻔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만화속세상’에 연재한 웹툰 <트레이스> 1부 ‘놓쳐야 하는 것’만 봤을 때는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인 학원물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을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세력 ‘트러블’, 그리고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초능력자 집단 ‘트레이스’. 주변을 모두 얼려버릴 수 있는 트레이스 소년 강권은 가장 지키고 싶은 존재들을 위해 스스로의 꿈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후천적 트레이스가 된 평범한 가장 윤성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2부 ‘거지’, 트레이스의 운명 때문에 단 한번의 사랑을 놓칠 수밖에 없는 비극 3부 ‘장미’, 4부 ‘난(전쟁)’에 이르러선 트레이스를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정부의 음모가 시작된다. 이쯤 되면 이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이 가지는 너비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예단하기 힘들어진다.

“5부 ‘마지막 날’을 끝으로 <트레이스> 1기가 끝났다. 정말 그리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참고 또 참으면서 축소시킨 게 1기다. 원래 학원물로 시작했다가 내용이 점점 커져버렸다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오히려 반대다. 2기, 3기를 위한 도입부라고 생각해달라. <트레이스>는 평생 그려야 하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부터 초능력(구체적으로는 윤성 같은 초능력을)을 동경했다는 고영훈 작가의 야심은 컸다. 그는 마블코믹스 같은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평생 그릴 수 있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작가들이 이어 그릴 수 있는 그런 세계.

문제는 역시 독자들의 선입견이었다. 타이츠와 가면, 슈트도 착용할 수 있는 미국의 슈퍼히어로물, 그리고 초능력 대결 토너먼트를 즐겨 차용하는 일본의 슈퍼히어로물과 차별화되는 한국 슈퍼히어로물만의 독창성을 만들어내야 하는 압박감은 상상 외로 컸다. 고영훈 작가는 트레이스를 시각화할 때 최대한 평범한 복장과 학생이나 아저씨 같은 일상적 캐릭터로 톤을 낮춰야 했다. 초능력을 사용하여 싸우는 액션신에서도 지나치게 정교한 기교를 구사하면 현실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가능한 한 일상적인 지형지물을 활용하며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트레이스>는 현재 한재림 감독이 최종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만일 판권이 안 팔리면 나라도 나중에 직접 연출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몇년 동안 그려왔던 소중한 작품이기에, 고영훈 작가의 기대감은 크다. 영화 <트레이스>를 통해 그가 꿈꿨던 대로 여타의 작가들이 자유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한국형 마블 월드’의 첫걸음이 비로소 막 내디뎌진 셈이다.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한다면 희망 감독과 배우 캐스팅은. =<장마>를 예로 든다면 봉준호 감독님 아니면 양익준 감독님. 주인공은 그릴 때부터 류승범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좋아하는 웹툰이나 만화, 만화가를 꼽는다면.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로는 강도하 작가님이 있다.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많이 도와주셨고 늘 힘을 주신 선배님이다. 선배님의 작품으로는 단연 <로맨스 킬러>를 추천한다.

-내 인생의 영화 한편을 고르라면. =최근 작품으로 한정짓는다면 인도영화 <블랙>이다. 여자친구와 같이 보면서 펑펑 울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누나에게 보자고 했고 그 다음날에는 어머니한테도 보자고 했다. 그렇게 24시간 동안 세번을 내리 봤다. 세번 모두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울면서 봤다. 앞으로 그리고 싶은 감성적인 작품과 <블랙>의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