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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의 감독 송일곤, <죽어도 좋아>의 경이로운 힘에 감탄하다
2002-05-24

아, 생의 열망!

입센의 희곡 <유령>의 젊은 화가 오스왈드는 마지막 장면에서, 여인은 물론 어머니와 이미 10년 전에 죽은 아버지 역시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정신병적인 고통에 이렇게 외친다. “어머니… 태양을… 태양을….” 100여년 전의 이 작품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유효한, 우리에게 점차 결핍되어가는 인간관계와 사랑의 소멸에 관한 공포를 이야기한다. 이런 증후는 전염병처럼 도시와 문명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에게 퍼졌으며, 현재의 문화에서도 많은 부분 입센이 말해왔던 일상의 균열에 관한 영향 아래 놓여 있다. 그러나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는 영향의 반대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생의 열망이다. 이것은 새로움이다. 지금 새로운 한국영화가 한편 완성되었다.

이 영화는 70대 노인의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얼핏 들으면 진부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70대 노인의 열정적인 삶에 대한 예찬이자 현재의 우리에게 결핍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반영이다. 그 새로움은 우리가 모두 아는 것이지만 아는 것을 전혀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새로움이다. 그래서 <죽어도 좋아>는 새로운 영화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금기시 여겨왔던 혹은 예측과 방관만 할 뿐인 죽음을 앞둔 노인의 일상에 관한 예측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두명의 노인은 청춘가를 부르며 남은 생을 열망한다. 그리고 세상의 어떤 연인보다 행복하다. 지금 당장 죽어도 후회가 없다.

이 영화는 두명의 주인공인 박치규 할아버지와 이순예 할머니가 없었다면 만들어지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놀라운 세계로 이끈다. 그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사랑의 방식과 생명에의 충일함으로 가득 차 있다. 거리에서 담배가게를 하는 박치규 할아버지는 어느 날 공원에서 할머니를 만나 동거에 들어간다. 할머니는 청춘가를 가르쳐주고 할아버지는 글을 가르쳐준다. 그 둘은 작고 초라한 집에서 사랑을 하고, 함께 목욕을 하고 질투를 하고 다시 사랑을 한다. 그리고 둘은 <청춘가>를 함께 부른다. 67분, 단순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주인공이 내뱉는 언어들과 그들의 육체의 움직임과 눈물을 흘리게 되는 과정과 노인의 주름진 손등에 내려앉는 눈송이들이다. 영화에 보여지는 모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진실 때문이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본 직후, 처음은 나무껍질 같은 두 노인의 정사장면이 강렬하게 남을 것이지만 차차 그 이미지는 사라지고 두 인간이 청년과 같이, 아이와 같이 서로 웃고 질투하고 어루만지는 이미지와 소리가 남았다가 마지막에는 소름이 끼친다. 그 소름끼치는 것은 그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 직전에 맞이할 거울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많은 부분을 이끌어가는 노인의 격렬한 정사신과 육체의 향연은 우리의 통념을 뒤흔들기 충분하다. 그것은 섹스 자체가 주는 충격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와는 다른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추함을, 또 다른 이는 슬픔을, 또 다른 이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감히 드러내기를 꺼려왔던 부분이다.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주인공들의 용기이며 자신감이다. 또한 그것은 주인공들이 다큐멘터리 작가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삶의 표현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과 사랑의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고 보여줄 수 있을까…. 감독은 현재의 삶에 당당한 주인공 두명을 관찰하기 시작했다(이 작품은 박진표 감독이 노인의 성과 사랑에 관한 방송용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취재중 박치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그와 동거녀와의 죽어도 후회없을 만큼의 격렬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감독은 10년 이상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경험으로 대상의 일상을 관찰하며 대상의 작은 행위들, 이야기들 중에서 우리가 소홀하게 생각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포착한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다툼장면은 나이를 초월한 인간의 미묘한 감성이 생생하게 묘사되듯이 영화의 대부분은 인간을 오랫동안 카메라를 통해 관찰한 다큐멘터리 감독만이 묘사할 수 있는 힘이 응축되어 있다.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는 상품화되어 쏟아지는 영화들로부터 동떨어진 관심 밖의 소재로, 우리의 눈과 귀를 잡아놓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영화를 두명의 주인공과 함께 만들었다. 묵묵히 보석 같은 영화를 만든 박진표 감독에게 한명의 관객으로서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송일곤/<꽃섬>감독▶ 70대의 사랑 담은 박진표 감독의 다큐멘터리 <죽어도 좋아>

▶ <죽어도 좋아>는 어떤 영화?

▶ <꽃섬>의 감독 송일곤, <죽어도 좋아>의 경이로운 힘에 감탄하다

▶ 토니 레인즈,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를 인터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