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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플래시’, 끝, 어쩌면 새로운 시작
송경원 2023-06-13

DC 코믹스는 현대의 신화를 쓴다.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창조해왔다는 게 아니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인류가 오래전부터 반복해온 이야기의 원형에서 모티브를 따와 현대적으로 각색했다는 의미다. DC 코믹스는 항상 클래식한 서사에 뿌리를 두었고, DCEU 역시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스크린에 신화를 쓰고자 했다. DCEU의 영웅들이 가진 고뇌는 한결같다. 영웅으로서의 정체성 찾기는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의 뿌리, 부모의 부재를 어떻게 마주 보고 극복할 것인가.

비유하자면 배트맨은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으로 빚어진 어둠이고, 아쿠아맨은 어머니의 부재가 불러온 정체성의 문제로 야기된 결핍이다. 이러한 집착은 때론 너무 비대해져 급기야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에 이르면 웃지 못할 해프닝마저 벌어졌다. 슈퍼맨과 배트맨의 대결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실마리가 풀릴 땐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DCEU의 13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주자인 플래시(에즈라 밀러) 역시 이러한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플래시의 고민은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아버지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라도 구하고 싶지만 좀처럼 방법이 없다.

살짝 교통정리를 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겠다. <플래시>는 DCEU의 마지막 작품이다. DC 세계관의 영화화 프로젝트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구체적인 윤곽이 나온 건 2013년 개봉한 <맨 오브 스틸>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잭 스나이더의 영입과 함께 DC는 마블처럼 연결되는 우주를 만들고자 했고 그 중심에는 ‘저스티스 리그’가 있었다. 하지만 흥행 부진과 감독 교체 등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 현재 DC는 잭 스나이더가 기틀을 세운 톤을 정리하고 새롭게 영입한 제임스 건을 중심으로 세계관을 다시 리부트하기로 결정한다. 이른바 DC 유니버스의 재출발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으론 <슈퍼맨>의 헨리 카빌과 <블랙 아담>의 드웨인 존슨이 하차하고 <아쿠아맨> 신작부터 새로운 타임라인을 설정할 예정이다. 물론 DCEU의 영웅들이 대거 교체되거나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플래시>가 DCEU의 영향력 아래에서 나오는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은 중요하다. DCEU의 영웅들이 반복해온 문제, 부모의 부재와 히어로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테마가 이번 작품에서도 핵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플래시와 배트맨의 관계

빛보다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는 플래시는 저스티스 리그 내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중이다. 신적인 존재 슈퍼맨은 그야말로 세계를 구하기에 바쁘고, 원더우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쿠아맨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부재 중이라 결국 플래시의 단짝은 메타휴먼 중에서도 능력이 약한 배트맨(벤 애플렉)만 남는다. 둘의 인연은 능력적인 면 외에도 각별하다. 배트맨은 플래시의 아버지를 누명에서 벗겨줄 단서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플래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빛보다 빨리 달리면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플래시는 저스티스 리그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활력소를 담당하고 있는데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어딘지 불안하고 미성숙한, 덜 자란 어른 같은 친구다.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아이가 자신에게 시간을 거슬러갈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이 있음을 깨달았을 때 상황은 파국으로 이어지기 딱 좋은 무대를 갖춘다. 플래시, 아니 배리 앨런은 어머니가 살해당하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 과거를 근본적으로 바꾸려 한다.

1980년대 영화 <백 투 더 퓨처>나 <빅>처럼 시간 여행과 타임 패러독스가 드문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플래시>만큼 이걸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컨셉의 히어로도 드물다. 배리는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의 죽음을 막지만 정체불명의 존재의 습격을 받아 과거에 갇혀버리고 만다. 문제는 배리가 돌아간 과거가 자신의 시간 축 위에 있는 과거가 아니라, 또 다른 배리가 존재하는 별개의 시간 축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배리는 조용히 본래 세계로 돌아가려 하지만 과거의 배리와 대면하고 엮이는 바람에 그마저 실패한다. 심지어 과거의 자신이 능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나 현재 본인이 갖고 있던 능력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이제 두명의 배리가 있으니 한명은 플래시, 한명은 배리라고 부르기로 하자. 사실 <플래시>의 이러한 구성은 노골적이고 선명하다. 본래 DC 영웅들은 일반인의 삶과 가면의 삶, 두개의 정체성을 오가는데 이번 영화에선 이것을 아예 물리적으로 분리시켜버렸다. 능력이 사라진 현재의 플래시와 갑자기 능력이 생긴 과거의 배리는 2인1조를 이뤄 엉망진창이 된 상황을 마주한다.

분리 불안의 히어로와 멀티버스의 분리 불안

<플래시>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불안, 후회, 미숙이란 감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배리 앨런이라는 인물이다. 에즈라 밀러가 맡은 이 캐릭터는 거의 정신 분열에 가까울 정도로 산만하고 정신이 없다. 설정상 그저 조용하고 소심한 청년처럼 보이지만 에즈라 밀러가 옷을 입자 독특한 불안과 우울, 조증과 울증 사이를 쉴 새 없이 진동하는 독특한 캐릭터가 탄생했다. <플래시>의 경우 물의를 일으킨 배우 에즈라 밀러로 인해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는데, 이러한 이미지가 더해져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기괴한 결과를 빚었다. <플래시>를 에즈라 밀러의 기행과 완전히 분리해놓고 보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이것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가 연기인지는 잠시 미뤄두고, 거의 분리 불안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에즈라 밀러의 표현력은 능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배리 앨런을 매우 불안하고 독특한 영웅으로 밀어올리기 때문이다.

배리 앨런의 딜레마는 단순하다. 그는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제어되지 않은 욕망을 어떻게 통제할지를 해결해야 한다. <플래시>가 택한 방식 역시 간단하다. 현재의 배리 앨런보다 더 미숙하고 철없는 시절의 과거를 직접 대면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플래시는 히어로로서 “모든 문제에 답을 내려는” 강박을 버리고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는” 법을 익힌다. 많은 희생을 치르고서 말이다.

<플래시>의 두 번째 포인트는 멀티버스다.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 축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현실을 마주한다는 게 핵심이다. 플래시가 되돌아간 곳은 수없이 존재했을 가능성 중 하나다. 그곳에는 또 다른 배트맨, 또 다른 슈퍼맨, 또 다른 플래시가 있다. <플래시>는 이젠 식상해진 멀티버스의 아이디어를 다시금 활용하는데, DCEU의 피날레답게 이제껏 축적해온 세계관을 몽땅 가져와 축제를 벌인다. 어린 배리 앨런의 세계에선 슈퍼맨이 없다. 대신 크립톤 행성에서 온 슈퍼걸(사샤 카예)이 사람들에게 붙들려 온갖 실험을 당하고 있다. 플래시의 단짝 배트맨은 저스티스 리그의 벤 애플렉이 아니라 원년 ‘배트맨’인 마이클 키턴이 등장하는데, 이 순간 마치 제4의 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 즐거운 농담이 시작된다. 어린 배리 앨런의 세계 속 배트맨은 은퇴를 한 뒤 노쇠해진 상태다.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복수심마저 세월에 풍화된, 초라한 배트맨은 플래시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어쩌면 마지막) 목표를 향해 녹슨 발걸음을 옮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플래시>는 원년 ‘배트맨’에 바치는 헌사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마이클 키턴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 여기에 메인 빌런으로 DCEU 최강의 적이자 DCEU의 시작이라고 해도 좋을 <맨 오브 스틸>의 조드 장군(마이클 섀넌)이 등장해 최후의 대결을 벌인다. 슈퍼맨이 없는 이 싸움에서 조드 장군을 이길 존재는 있을 수 없다. 대단원의 전투는 해피 엔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패배로 끝날 수많은 가능성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흘려보낼 것인지에 대한 큰 질문이라고 해도 좋겠다. 과거를 바꾸고 싶었던 미숙한 초월자 플래시는 어떻게 힘을 다루고 지나간 것을 흘려보낼지에 대한 답에 도달한다. 그건 어쩌면 이제 확장을 멈추고 문을 닫을 우주, DCEU에 바치는 작별 인사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하나의 우주가 실패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되지 않는 걸 억지로 뜯어고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안되는 건 흘려보내줄 필요도 있다는 DC의 담담한 성찰처럼 들려서 애잔한 구석도 있다.

DCEU의 마지막 불꽃

플래시의 단독 영화이자 한편의 히어로영화로서 <플래시>의 장단은 뚜렷하다. 우선 히어로 ‘플래시’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와 한계, 정체성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그야말로 교과서적이다. 이건 단지 서사의 문제가 아니라 히어로의 시그니처 액션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플래시>의 오프닝은 이를 인상적으로 수행해낸다. 애니메이션적인 질감과 과장된 표현이 과하게 드러나는 CG의 톤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짐작 가능하다. 후반부는 DCEU의 시작점이었던 <맨 오프 스틸>의 연장선에 있는데 그 코믹스적인 과잉 액션과 톤을 맞추기 위한 작업처럼 보인다. <플래시>는 마지막인 만큼 전반적으로 팬서비스도 강하다. 두개의 세계, 두명의 플래시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명료하면서도 강렬하다. 돌이켜보면 잭 스나이더 유니버스는 언제나 그랬다.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 서사의 이미지화라고 해도 좋겠다.

잭 스나이더 유니버스의 피날레인 <플래시>에서 보여지는 때때로 무겁고 비극적인 순간은 적지 않은 무게감을 만들어낸다. 특히 플래시가 마주하는 수많은 과거, 아니 멀티버스들에 이르면 마블의 <왓 이프…?>가 선보였던 ‘만에’의 상상력도 대방출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래시>가 이미 망가져버린 ‘저스티스 리그’를 되살릴 만큼 출중하냐면 그건 아니다. 충분한 속도와 시각적 쾌감을 갖추고 있지만 영화는 마치 배리 앨런처럼 분열적이고 불균질하다. 이 영화의 수많은 장점이 단독 영화로서의 완성도보다는 DC의 수많은 유산들에 빚을 지고 있다는 점도 한계 중 하나다. 요컨대 <플래시>는 화려하게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우주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적인 즐거움 속에 있다. 마치 사라지기 전에 가장 밝게 빛나는 초신성처럼, DCEU의 어두운 그림자를 제 한몸에 다 끌어안고 빛나는 순간들을 남기는 것이다.

물론 이건 완전한 끝이 아니다. DC의 새로운 수장 제임스 건이 미리 알려준 것처럼 <플래시>는 DCEU와 DC 유니버스를 이어줄 다리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제 슈퍼히어로영화의 수명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멀티버스라는 소재가 얼마나 유효할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쩌면 <플래시>가 빛낸 마지막 불꽃이 단지 DCEU의 것이 아니라 슈퍼히어로 유니버스 전체에 대한 게 아닐까 하는 불안과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섬광은 찰나와 같고 어느새 어둠이 짙게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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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