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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매 순간이 터닝 포인트, 배우 노정의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4-02-27

드라마 <18 어게인>에선 우영(이도현)의 딸 시아를, 영화 <히치하이크> <내가 죽던 날>에선 부모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정애와 세진을 연기했다. 누군가의 아역, 혹은 청소년의 얼굴로 익숙했던 배우 노정의가 배우로서의 지평을 본격적으로 넓히기 시작한 건 드라마 <그 해 우리는>에 아이돌 엔제이로 출연하면서부터다. 이 작품으로 SBS 연기대상 여자신인연기상이라는 첫 트로피도 손에 쥐었다. <씨네21>이 진행한 ‘올해의 시리즈’ 설문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신인 여자배우로 다수 거론되는 등, 그의 이름 앞엔 여전히 신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11살 때 처음 카메라 앞에 선 이래로 노정의는 연기를 쉬어본 적도, 작품을 허투루 대한 적도 없다. 아포칼립스물인 넷플릭스 영화 <황야>를 필두로 여러 출연작의 공개를 앞둔 노정의를 배우로서 제대로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아직 “못해본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며 노정의는 “모두에게 내 이름을 알리는 때가 오길 바란다”는 반짝이는 포부를 전했다.

- <씨네21>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인터뷰가 2020년 <내가 죽던 날>이 개봉할 시기였다. 당시 20살이었고, 성인이 된 후 제일 하고 싶은 일로 “친구들과 해외여행 가기, 기차 여행하기”를 꼽았다. 이중 이룬 것이 있나.

= (놀라며) 내가 그런 말을 했었구나. 완전히 잊고 있었다. 기차 여행은 아직 못해봤고 얼마 전 초등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 보라카이에 갔다 왔다.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데 친구들은 대학생이고 나는 촬영 중일 때가 많아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함께 다녀온 해외여행이라 새로우면서도 재미있었다.

- 그간의 인터뷰를 보면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수행해나가는 데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올해는 어떤 계획을 세웠나.

= 이루고 싶은 건 많은데, 일적인 면을 제외하고 말해본다면 스카이다이빙이 있다. 그런데 딱 일주일 전에 하고 왔다. (웃음) 지금도 버킷 리스트를 세우고 이뤄나가길 반복하며 지낸다.

- <황야>와 함께 2024년의 스타트를 끊었다. 맡은 인물인 수나의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나.

= 어떻게 보면 <황야>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캐릭터다. 그런데 서로를 속이고 속마음을 숨기는 사람들과 달리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매력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소중한 인연들과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명확해서 좋았다.

- 수나는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게 보이는데도 어리광을 피우는 법이 없고, 오히려 또래들보다 성숙해 보인다. 위기의 순간 상황을 기민하게 파악해 대처하는 점도 눈에 띈다.

= 할머니가 곱게 키워주신 덕에 다른 사람들보다 외관이 깔끔하긴 하다. 그런 와중에도 경계심이 많아 낯선 상대 앞에서 쉽게 긴장을 풀지 않는다. 그래서 웃는 장면이 별로 없다. 초반에 할머니와 있을 때, 남산(마동석) 아저씨와 있을 때를 빼고는 말이다. 때문에 웃을 때만큼은 10대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후반부에서 경계하는 날 선 얼굴이 잘 보이려면 할머니와 있을 때 편안한 웃음도 지울 수 있다는 차이가 드러났으면 했다.

- 배우들의 자유도가 높은 현장이었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하거나 본인이 만들어간 부분이 있다면.

= 엔딩 신의 거의 모든 게 애드리브였다. 원래 걱정이 많아서 애드리브를 잘 시도하지 못한다. 항상 고민만 하다 촬영이 끝나버리곤 하는데, 이번엔 마동석 선배님이 편하게 이끌어주셔서 잘 나오더라. 덕분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 출연작 모니터링도 잘 하는 편인가.

= 그렇다. 한 작품을 여러 번 보기도 하는데 다만 텀이 좀 필요하다. 그래야 관객의 시선에서도 감상이 가능해진다. 예전에 찍은 작품들을 보면서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보다 더 잘 표현하는 감정들도 있어 신기하게 보곤 한다.

- 2011년에 방영한 <총각네 야채가게>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건 부모님의 권유였나.

= 아니다. 6~7살 무렵부터 TV에 나오는 게 꿈이었다. 부모님은 어린아이의 헛된 꿈이라고 생각해 ‘그래 그렇구나’ 하고 넘기셨다고 한다. 9살 차이 나는 언니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줬는데, 본인도 어릴 때 꿈이 연예인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반대로 뜻을 굽혔는데 동생이 하고 싶다고 하니 몰래 지원서를 넣어 오디션을 볼 수 있게 도와줬다. 8살 때 광고모델을 시작했고 <환상의 짝꿍: 사랑의 교실>이라는 어린이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오디션을 8차까지 보고 처음으로 TV에 출연했다. 그 뒤로도 언니가 계속 적극적으로 지원해줬고 덕분에 드라마 오디션까지 보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부모님은 그냥 좋은 경험했다고 여기셨는데, 내가 계속 하고 싶어 하니 진심인 걸 깨닫고 제대로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하고 지지해주셨다. 어쩌다 힘든 현장에 참여해도 현장에 있다는 것 자체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걸 파악하고 가야 할 길을 잘 찾아온 셈이다.

= 사실 그땐 잘 체감하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정말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은 게 분명했다. 그걸 이렇게 오랜 시간 해올 수 있었다는 것도 큰 복인 것 같다.

- <히치하이크>가 자신의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한다고. 어떤 이유에서인가.

= 아역으로서 누군가에게 맞추며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나만의 캐릭터를 끌고 간 첫 작품이었다. 인물을 연구한다는 개념을 그때 제대로 깨달았다. 감독님과 깊게 소통한 것도, 함께 만들어가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하고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새롭게 알고 더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됐다.

- 10대 시절과 20대가 된 현재, 배우로서 달라진 지점이 있다고 느끼나.

= 가장 큰 건 경험치다. 한 작품 한 작품 참여할 때마다 얻는 것들이 정말 많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는 한해 한해가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진다. 좋은 선배님들이 생겼다는 것도 내겐 큰 자산이다. 아역으로서 작품에 참여할 때는 선배님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럴 나이가 아니기도 했고. 그래서 혼자 연기하는 기분이 종종 들기도 했는데 요즘엔 든든하다. <황야>도 그런 든든함을 느낀 작품 중 하나다.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 자체는 그대로지만 작품이나 대본은 더 진지하게, 더 애정을 갖고 대하려고 노력한다.

- 종종 신인으로 언급되지만 어느덧 데뷔한 지 13년차 배우기 됐다. 오랜 시간 한길을 걸으며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 많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그런 고민의 순간이 한번씩 크게 왔다. 어릴 때부터 한 일을 오래 해오다 보니 다른 일은 어떨지도 궁금했다. 친구들과 학교 다니면서 평범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할 때마다 부모님은 ‘우리는 네가 하고 싶어 해서 도와준 거지 억지로 시킬 마음이 없다. 그만하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고 하셨다. 한번은 정말 그만두려고 했는데 너무 무서운 거다. 더이상 연기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슬프고 겁이 났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연기를 넘어설 만큼 좋아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 죽을 때까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 2022년부터 1년간 <SBS 인기가요> MC를 맡아 진행했다. 배우의 영역을 벗어난 흥미로운 행보다.

= 너무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나로선 또 다른 꿈을 이룬 거나 다름없다. 일하러 간다는 생각이 아예 안 들었고 자주 오는 팬들과 서로 안부를 물을 정도로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여러 가수의 무대를 보면서 감탄했고 내가 저렇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떨까 종종 생각했다.

- 실제로 무대에도 서지 않았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아무노래> 등의 무대를 보면서 표정도 자연스럽고 몸도 잘 써서 놀랐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댄스부 출신이라고.

= 한때 가수의 꿈을 꿨고 무대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싶어서 댄스부에 들어갔다. 한두번 무대에 서봤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 그런데 <SBS 인기가요>를 하면서 긴장감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제 시상식과 같이 큰 무대에 서도 떨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실수를 겁내기보다 ‘실수하는 모습도 나’라는 마인드가 생겼다.

- 무대 영상에 ‘아이돌 했어도 잘했겠다’는 댓글들이 달리고 그만큼 외모에 관한 칭찬도 많았다. 또래 배우 중 최근 외모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데 그런 관심과 기대가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나.

= 특별히 그렇진 않다. 칭찬해주면 그냥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평생 보여드릴 수는 없을 거다. 그렇다고 화장기 없는 얼굴이나 변화한 외형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실망할까봐 불안하고 그렇진 않다. 그런 모습들도 전부 나의 일부니까.

- ‘정의’라는 이름의 한자가 바를 정(正), 옳을 의(義)더라. 보면서 한 인터뷰에서 “나는 무조건 옳은 길로만 가고 싶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옮음에 대한 기준이 각자 다를 텐데 본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 개인적인 욕심이나 호기심,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후회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그것 하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선택을 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선택하기까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일단 선택했으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 차기작으로 고른 작품은 <하이라키>와 <마녀>다.

= <황야>와 달리 <하이라키>에선 말끔하게 등장한다. (웃음) 상위 0.1%의 고등학생들 이야기라 덕분에 슈퍼카도 타봤다. 한편으론 각자의 내면의 아픔도 드러나고, 로맨스도 있다. <마녀>에선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연기에 도전했다. 한 인물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전부 내가 연기해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 로맨스물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해왔는데 <하이라키>를 통해 드디어 꿈을 이룬 건가.

= 그렇다기엔 고등학생들의 로맨스라서. (웃음) 그보다는 더 성숙하고 설레는 어른의 로맨스를 해보고 싶다. 그럼 촬영할 때 심지어 대본 읽으면서도 너무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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