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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지로의 여름>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2)
2002-08-07

˝나는 일본영화의 암, 에이즈, 인플루엔자˝

마사오 역의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보통 아역배우들처럼 한눈에 너무 예쁜 외모는 아닌데.

30명 정도 오디션을 봤는데 너무 귀엽게 예쁜 아이들은 제쳐뒀다. 가장 일본적인 느낌, 시골 아이 같은 느낌을 염두에 뒀고 그냥 처음 봐서는 그렇게 귀엽게 느껴지지 않는 아이를 캐스팅했다. 처음엔 귀엽게 느껴지지 않다가 뒤로 갈수록 귀엽게 느껴지길 바랐다. 나와 마사오가 친해지는 과정은 영화나 현실이나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내 옆에 가까이 오지도 않고 무서워하다가 영화를 찍어가면서 점점 친해졌다.

키쿠지로는 마사오를 즐겁게 해주려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하는데 그런 놀이들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가.

어떤 쇼프로그램을 하면서 스키장에서 사람들을 벌거벗기는 쇼를 한 적이 있다. TV에서 했던 장난들을 염두에 뒀다.

시나리오대로 찍은 게 아니라 즉흥연출이 많았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윤곽을 갖고 작업했는지 궁금하다.

신문의 네컷만화 같은 기승전결만 있었다. 1장 여름방학이 돼서 심심한 마사오, 2장 마사오가 엄마를 만나고 싶어한다, 3장 엄마를 만나러 갔다, 4장 이상한 아저씨랑 만나서 놀다가 돌아왔다, 그 정도 윤곽에서 찍으면서 살을 붙여나갔다.

길을 따라가는 영화인데 영화 속 장소는 어떻게 택한 곳인가.

중요한 공간으로 강변을 설정했고 시즈오카현에서 적당한 곳을 찾았다. 교외 작은 호텔과 주차장이 필요해서 그런 곳을 물색했고 가장 찾기 힘들었던 곳은 역시 마사오와 키쿠지로 패거리가 노는 강변이었다. 내가 우주인이 나올 만한 곳을 찾으라고 했더니, 제작진이 애를 먹었다.

키쿠지로의 성격은 정말 괴팍하다. 자신의 성격이 얼마나 반영돼 있다고 생각하나.

실제 내 아버지의 성격이 그랬고 내가 자란 아다치구의 사람들은 대부분 키쿠지로처럼 행동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예의바른 사람들을 만났다. 어렸을 때를 기억해보면 성실한 사람들은 아다치구에 들어가길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야쿠자에겐 약하다는 것이다. 겉으론 반항적인 티를 내지만 사실은 외로운 사람들이다. 외롭기 때문에 점점더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며 살아가고.

이 영화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많이 들어 있나.

관련있는 추억은 딱 하나 있다. 내가 마사오 나이쯤 됐을 때 아버지랑 바다에 놀러간 적이 있다. 아버지와 놀러간 것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난 혼자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집에 돌아오는 전차에서 아버지와 둘이 서 있는데 앉아 있던 미군 한 사람이 자리를 비켜주며 내게 초콜릿을 준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늘 “미국놈들, 죽일놈들”이라고 욕하며 지내다가 그날 초콜릿 사건 이후부터 미국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웃음)

브레이크 댄스를 잘 추는 남자와 오렌지 돌리기를 잘하는 여자가 나오는데 두 배우는 그런 장기가 있어서 캐스팅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도 즉흥적인 것이었나.

남자는 <톰보이>라는 뮤지컬을 했던 친구인데 브레이크 댄스를 잘 춰서 뽑았다. 여자는 그런 장기가 있는지 미리 알았던 게 아니라 현장에서 시켜봤더니 잘해서 오렌지 돌리기를 하도록 했다.

<키쿠지로의 여름>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연결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것은 <키즈 리턴>도 마찬가지인데, 당신은 과거의 추억을 담은 영화를 만들 때 마치 영화 속 시간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만드는 것 같다.

<키쿠지로의 여름>은 사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마사오가 숙제하는 장면으로 돌아와서,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설정이다. 그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실로 처리했는데 추억을 어떤 틀 속에 넣으려는 것은 나의 버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버릇이 강한 편이다.

남녀의 연애를 다룬 멜로영화를 안 해봤다고 했는데 그런 영화를 찍을 계획은 있는지.

이번에 찍은 영화 <도루>가 그렇다. <도루>는 이번에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는데 일본의 고전 인형극을 배우를 써서 비슷하게 그린 작품이다. 사랑과 감동과 눈물의 이야기다. (웃음) 이번 영화엔 남녀의 색기가 많이 표현돼 있어서 어쩌면 다른 사람의 영화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당신 영화의 리듬은 침묵 다음에 갑작스런 폭발이 일어나는 식이다. <도루>도 그런 작품인가.

아니다. 침묵 다음에 더 긴 침묵으로 이어진다. (웃음)

멜로드라마라고 했는데 그 속에서도 어떤 폭력이 드러나는가.

사랑의 형태를 유심히 살펴보면 거기에도 폭력이 있다. 인간에 대한 압도적 폭력이 표현돼 있다.

<키쿠지로의 여름> 이전 영화들을 보면 당신은 늘 무표정하고 말도 별로 안 한다. <키쿠지로의 여름>에서 처음 그런 무표정에서 탈출한 것 같다. 혹시 그런 연기가 어색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나.

<키쿠지로의 여름>에서 보여준 것 같은 연기가 TV에선 메인이다. TV이미지로 영화에 나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예전엔 무표정한 모습만 보였다. 그리고 감독하면서 연기할 때는 대사 외우는 게 귀찮아서 대사없는 연기를 많이 했다.

오래 전 인터뷰에서 가족에 대해 “남들이 안 보면 어디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표현한 적 있다. 하지만 <키쿠지로의 여름>을 보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들어 있다. 나이가 들어서 가족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고 생각하나.

나이가 들어서 가족에 대한 생각이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예전에 했던 생각이나 예전에 했던 말을 잊어먹는 것 같긴 하다. (웃음)

오후 2시부터 2시간 정도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고 곧장 TV쇼 녹화에 들어간 기타노는 알록달록한

기모노를 입고 노래를 부른 뒤 또 다른 출연자 한명과 마주앉아 만담을 시작했다. 단 1초도 쉬지 않고 30분 이상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도쿄 시부야의 거리로 나왔을 때 취재진은 모두 지쳐 있었다. 그건 다소 피곤한 일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는 낯설고 거대한 존재가 옆을 스쳐간 다음 느껴지는, 묘한 허탈감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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