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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문화연대 신임 이사장 유지나
2002-09-11

˝문화부문,양허안에 포함시키지 말라˝

유지나(42) 교수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스타평론가 중 한명이다. 오랫동안 방송에 출연해서 영화 관련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와서인지 낯익은 얼굴. 그런데 요즘은 브라운관에서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려워졌다. 연구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인가. 그렇게 여길 법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종횡무진 뛰어왔고, 뛰고 있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장, 한국영상자료원 자문위원, 한국영화학회 감사, 영상문화학회 부회장,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위원 등 수많은 직함이 그 증거의 일부다. 지난 5월에는 또 영화진흥위원회 2기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한번 터진 일복은 좀처럼 추스르기 힘든 것인지, 얼마 전에는 사의를 표한 문성근 전 이사장에 뒤이어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이사장하려고 로비한 적 없고 그냥 떠밀려서 됐다”지만, 어쨌든 ‘슈퍼우먼’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은 것. 개강한 지 2주밖에 안 돼 밀려드는 학사업무와 강의준비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라며 그는 조바심을 낸다. 그런 그의 아까운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 스크린쿼터문화연대가 기치로 내건 ‘국제연대 강화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문성근 전 이사장이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돕게 되면서 사의를 표명한 게 석달 전이다. 그동안 이사장직이 공석이었는지.

바깥에선 그렇게 보였나? 그동안에도 할 일은 다 하셨다. 다만 후임자를 물색하고 설득하는 기간이 좀 길었던 것이지.

이사장직 수락을 망설였던 것으로 아는데.

나보다 더 좋은 사람 찾느라 그랬다. 영화과 교수보다는 현장에 있는 사람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문성근씨를 옆에서 오랫동안 봐서 그런가보다. 내 이름이 오르내릴 때도 안성기씨처럼 오랫동안 스크린쿼터에 관심을 보여온 분이나 최민식씨처럼 열혈 배우가 후임으로 나서는 게 적절하다고 봤다.

학교 내에서도 학과장직을 맡고 있다. 혹여 수업이 부실해져서 학생들의 원성을 사는 것 아닌가.

내 철칙이 ‘강의는 충실히’다. 이사장직을 받아들인 것도 그런 원칙을 어기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같이 공부하는 대학원생 제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줬고, 또 많이 격려해주지 않았으면 결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영화에 있어 스크린쿼터가 중요한 쟁점이니만큼 강의와 무관하지도 않다. 내부적으로는 쿼터연대가 사단법인 형태로 출범한 지도 꽤 됐고, 양기환 사무처장을 중심으로 실무팀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도 결정에 보탬이 됐다.

지난 7월2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밝혀졌듯이, 정부는 WTO에 문화부문을 포함한 양허안을 제출한 상태다. 문화부문을 교역의 도마 위에 올려선 안 된다고 주장해온 쿼터연대로서는 급박한 상황을 맞이하게 됐는데.

현재 WTO 회원국들은 서로의 요구안을 갖고서 비공식 협의중이다. 알려진 대로 미국이나 중국이 한국의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인데, 내년 3월30일이면 각국이 개방의 범위 등을 포함하는 입장을 밝히게 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스크린쿼터제가 희생될 것이라는 우려다. 미국에의 대외의존도가 심한 한국으로서는 철강, 자동차 등 다른 산업을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할 것이다.

경제부처 관료들 사이에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주장도 나오는데.

문화부문을 양허안에 포함시켜서 자초한 위기다. 정부는 길이 있는데도 보질 못한다. 타개책은 분명 있다. 국제법상 양허안을 제출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유럽연합 소속 15개국과 캐나다 등 다른 나라들을 봐라. 문화부문을 양허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다자간 무역협정에 맞서기 위한 세계적 문화기구 또는 협정을 만들어서 거기서 논의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 정부 역시 양허안을 철회하고 그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영화가 일거에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땐 정말 큰 것을 잃는 거다.

쿼터연대가 주장하는 국제연대는 세계문화기구의 결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나.

일례로 공동제작협정이라는 게 있다. 프랑스만 해도 현재 40여개국과 이 협정을 맺은 상태다. 이 협정은 각 나라의 문화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상호보조 조치다. 협정에 따르면, 프랑스와 한국이 각각 80:20으로 투자를 해서 만든 영화의 경우, 이 영화는 각각의 나라에서 자국영화로 인정된다. 우리의 경우, 프랑스쪽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도 있고 배급 역시 원활해진다. 자본 및 배급 활로 확보뿐 아니라 기술협력도 가능하다. 할리우드에 대항하기 위한 유효한 방법 중 하나다. 세계문화기구는 이러한 협정을 밑바탕으로 구성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영진위가 나서 프랑스의 CNC와 협정을 맺으려 했지만 정부가 양허안을 제출하면서 프랑스가 발을 뺀 상태다.

쿼터연대의 향후 일정은 양허안 철회에 맞추어지는 것인가.

맞다. 쿼터연대가 포함된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가 중심이 되어 정부를 상대로 설득작업에 나선다. 9월24일부터 시작될 국정감사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집회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대선 분위기에 묻혀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 열심히 뛸 각오를 하고 있다. 그렇게 뛰다보면 ‘민간인은 뭘 모른다’든지 ‘관료가 별 수 있겠어’ 하는 식의 편견들도 줄어들고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번 스크린쿼터문화연대의 정책방향은 국제연대 강화로 요약된다. 내부적인 팀 구성의 변화도 있나.

특별히 달라질 건 없다. 정책팀을 비롯해서 기존 6개 팀의 업무가 국제연대라는 부분에 좀더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 정도다. 어느 한팀이 전담해서 고민할 사항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다들 멀티플레이어처럼 뛰어왔으니까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쿼터연대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프랑스쪽에 나름의 개인 네트워크가 있어서다. 국제연대 위원장을 맡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는데, 처음에는 외국 나가서 광고지 뿌리고 그랬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는데, 그렇게 한국의 상황을 알리다보니 유력한 국제 통신사들이 나중에는 인터뷰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더라.

그때와 비교하면.

돌이켜보면 바람 잘 날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위기라고 하지만 두려워하진 않는다. 지금은 문화다양성을 위한 연대(CCD: 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 등을 비롯한 전세계 NGO들과의 교류도 활발하고, 국내에서도 언론, 출판, 음반 쪽 단체들과 함께 KCCD를 꾸린 상태다. 낙관론자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우군이 더 많은 상황이니 해볼 만하다고 여기고 있다.

쿼터연대를 비롯한 업무 등을 맡으면서 개인적인 관심의 변화도 있을 텐데.

영화 공부를 계속 해왔지만, 처음과는 관심이 다소 달라졌다. 91년에 박사 따고 강의하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내 입장이 좀더 사회학적 관심에 가닿아 있다. 학교에서 시나리오, 영화사 강의를 주로 하는데 영화 미학적인 측면보다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 쿼터 투쟁을 비롯해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같이 활동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영화는 사회적 생산물이다. 관객의 반응을 통해 집단 무의식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는 텍스트인 것 같다. 이를테면 조폭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통해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엿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조폭영화의 범람과 그에 대한 환호는 가상적이든 실제적이든 남성의 박탈감에 대한 집단적 위로로 볼 수 있지 않나. 며칠 뒤에 출간되는 남성 판타지로부터의 탈주라는 부제가 달린 책 역시 그런 관심들을 조금씩 옮겨놓은 것을 모은 것이다.

조폭코미디영화가 다시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런 경향은 곧잘 한국영화 퇴행, 거품, 위기론과 맞물린다. 평론가로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

영화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량식품에 가깝다. 1970년대 근대화라 불리는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만 놓고 봐도 안다. 사회의 도덕률을 거스르지 않는 이른바 건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해서 살기 좋은 시절이었나. 오히려 보수적인 프로파간다를 숨기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게 아니다. 불량식품도 먹어야 내성이 생긴다. 오히려 한국영화의 경우 조폭을 코미디로 다룬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치하고 얼토당토않은 설정은 곧 이 장르가 그만큼 관용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굳이 미학적인 가치관이나 도덕적인 잣대로만 판단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한국영화가 성장한 만큼 스크린쿼터를 폐지해도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다만 시장의 성쇠를 2∼3년 단위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시장점유율이 40%이니 스크린쿼터를 폐지해도 되지 않냐고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인다고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문화적종다양성 확보라는 큰 대의뿐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좀더 장기적인 발전이 가능한 안정세를 보일 때까지 쿼터제는 유지되어야 한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