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커버스타
화사한 유년을 넘어 역동적인 청년기를 맞이하다, 배우 장동건 [1]
사진 오계옥김도훈 2004-02-18

상업적으로‘지금 한국영화가 갖고 있는 잠재력의 최대치’를 보여준 <태극기 휘날리며>가 스펙터클의 영역만을 개척한 건 아니다. 반영웅으로 등장하는 배우 장동건은 가장 부드러운 미소에서 눈을 까뒤집으며 폭발하는 광기까지 표변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한국전쟁이 남긴 과거를 우회해서 묻는 영화처럼 우리도 이쯤에서 아이돌 스타에서 묵직한 배우로 성장해온 장동건의 여정을 되짚고 싶어졌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가까이서 지켜본 배우 박중훈이 기꺼이 이 작업에 동참해주었다. 그리고 장동건의 필모그래피와 한국영화가 지나온 흔적을 교차시켜본 배우론을 싣는다.

배우 장동건, 한국 영화 성장과 함께한 12년의 필모그래피

1992년 TV 모니터를 지켜보던 세상의 소녀들에게, 순정만화 속 주인공의 눈매와 수줍은 미소를 지닌 장동건의 출현은 ‘새로운 세대의 아이콘’을 열망하던 그녀들의 판타지를 일시에 충족시켰다. 역사의 무게로 짓눌린 80년대를 통과해 다다른 90년대는 새로운 아이들의 태동기였고 장동건은 그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그 첫인상을 아직도 기억하는 우리에게, 낡은 칼빈 소총을 들고 잊혀진 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지옥도 속에서 허옇게 눈을 까뒤집고 핏대 선 목으로 포효하는 ‘진태’는 얼마나 낯선 얼굴인가. <우리들의 천국>에서 수줍게 웃던 TV 속 천사가 ‘당신들의 지옥’에서 미쳐가는 스크린의 악마로 도달하는 데 걸린 12년의 세월. 그동안 배우 혹은 스타로서의 장동건이 거쳐온 성장의 기록을 정리하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에게서 한국영화 고도 성장기 그 12년의 지형도를 읽을 수 있을까.

텅 빈 이미지<마지막 승부>에서 <홀리데이 인 서울>까지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태동했던 리그들의 인기를 단번에 누르며 ‘더 빨리, 더 많은 점수’를 외치는 새로운 세대들을 일거에 흡수한 스포츠는 ‘농구’였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인스턴트적인 욕망을 아주 잠깐 충족시킨 이 스포츠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동시에 <마지막 승부>로 단숨에 핀업 스타가 된 장동건 역시 그들의 리스트에서 삭제될 운명이었다. 스타덤을 뒤로 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로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던 그의 의지는 ‘인스턴트 스타덤’의 종말을 예견한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재학생의 외부활동을 금지하는 연극원의 규칙 때문에 2년 만에 자퇴하고 안방 모니터의 무대로 돌아온 그의 고민은 당연하게도(혹은 미심쩍게도) ‘스크린’으로 옮겨갔다.

<패자부활전>에서의 그의 역할은 TV 스타로서의 상품성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담은 가벼운 팬시상품이었다. 이 안전한 연애담에서 그는 철저하게 관습적인 틀 속에 갇혀 있었다. 핀업 스타의 ‘영화배우로서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국영화가 새롭게 발견한 젊은 상업영화의 경향에 편승해 제 몫을 챙겨보려던 자본의 유입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새로운 관객의 욕구와 성장해가는 시장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갖출 만한 능력이 부재했던 때이기도 했다. 자신을 복제해나가던 영화들은 어느 순간 타자의 이미지들마저 복제하는 ‘오리지널리티의 혼돈’을 겪고 있었다. 나태한 방식으로 왕가위의 이미지를 베껴낸 기이한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도 그 중 하나였다. 장동건은 또 다른 TV 출신 스타들과 그 텅 빈 이미지 속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헤매고 다녔다. 불면증에 걸린 채 택시를 운전하는 허상의 페르소나는 어쩌면 이 기이한 정체불명의 영화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장동건이 서서히 잊혀져갈 ‘텅 빈 이미지’ 중 하나라고 예견했다.

낯선 위치, 낯선 냄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연풍연가> <아나키스트>

그리고 장동건이 선택한 다음 스테이지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였다. 당대의 스타일리스트인 이명세 감독의 비범한 역작 속에서 이 훤칠한 핀업 보이는 처음으로 ‘배우의 아우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전시할 최소한의 대사와 장면만이 주어진 역할 속에서 그가 배운 것은,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드러내지 않고도 영화라는 공동작업의 묘미를 살려내면서, 또한 스타로서의 아우라를 포기하고 배우로서의 가치를 창출해내는 방법론이었다. 관객과 언론의 관심사 주변에 자리하는 조연의 위치는 분명 낯설었을 테지만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이전에 자신과 연결돼 있던 탯줄을 끊을 수 있었다. 장동건은, 영화라는 매체를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 다시 돌아온 <연풍연가>에서 그의 연기는 <패자부활전>에서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나키스트>에서 30분이 채 나오지 않는 허무주의적 인텔리 세르게이 역을 내실있게 소화해내면서 그는 다시 한번 ‘공동작업으로서의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놀랄 만한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인정사정 없는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달려든 그의 영화연가는 그렇게 차근차근 수순을 밟아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 영화. <친구>가 도착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깨달은 늦은 영재, <친구>

<친구>는 뭔가 좀 이상한 영화다. 부산이라는 ‘(서울 공화국의 자기 만족스러운 사람들에게는) 낯선’ 지형의 폭력적인 성장기는 800만 관객이라는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한계선을 넘어서서 진군해나갔고, 이 예측할 수 없었던 거대한 ‘이벤트영화’는 과거의 노스탤지어가 이 땅의 관객에게 얼마나 효과적인 임팩트를 부여하는지 증명해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장동건이 있었다. “상상 밖의 생일선물을 준비해놓고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으로 도전했던 서른 첫해의 영화에서 그가 도달한 지점은 흥미롭다. 영화라는 매체를 이해하고 적응해가던 ‘아이’는 ‘서커스’라고도 칭할 수 있을 만큼 도전적인 이 작품을 통해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깨달은 늦은 영재처럼 성장해버렸다.

놀라운 것은, 영화의 축으로 작용하는 스타의 아우라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그 관습적인 상업영화에서의 역할을 ‘충실하게’(혁명적으로가 아닌) 배반했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나 토로하듯 그에게는 ‘배우로서의 전환점’이 되는 영화이지만, 사실 그 전환은 ‘관습’의 틀 속에 머무르면서도 동시에 유려하고 속임수 없는 에너지를 발산한 ‘정직한 배반’에서 생산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더욱 흥미롭다. ‘배우’와 ‘스타’의 절묘한 균형을 잡아내는 것. 마치 곽경택 감독이 상업영화 감독과 작가의 사이에서 묘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배우/스타’ 장동건은 그 지점에서 망설이듯이 그러나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먼저 기획되었지만 뒤늦게 실현된 거대 예산의 에서 그는 극을 끌어나가는 스타로서의 자신감을 분명하게 발휘한다. 그리고 나머지 반쪽의 가능성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한 그의 실험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프로젝트에 도달한다.

극한을 영리하게 실험하다, <해안선>

폭력의 극한을 화두로 제시하는 ‘김기덕’의 영화에 그가 뛰어든 일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모두가 우려했던 행보였지만, 동시에 당연한 절차이기도 했다. <친구>까지의 필모그래피에서 그가 서서히 쌓아온 에너지를,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험하기 위해 ‘논쟁’으로 가득 찬 저예산 작가의 영화에 출연하는 것. 지금의 우리에게는 충분히 예상되어질 수 있는 당연하고 영리한 노선처럼 보인다. ‘민간인을 간첩으로 오인하고 사살한 이후 서서히 광기에 휩싸여 미쳐가는 강 상병’은 <친구>의 ‘동수’와 마찬가지로 ‘남성성’의 극단이자 폭력적인 캐릭터였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절묘히 포장되기 어려운 김기덕의 영화는 그가 스타로서의 자의식을 벗고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 좋은 도구였다. 잃을 것 없었던 이 승부에서 그는 자신의 한계를 벌거벗은 채 드러내면서도 그 한계를 일단 무시한 채 상승하는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이 대담무쌍한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태극기 휘날리며>로 이어진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위한 계산된 연습장으로서 <해안선>이 선택되어진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태’의 역할은 강 상병의 완벽한 도플갱어/의가형제처럼 보인다.

도플 갱어, <태극기 휘날리며>

내부로부터 파괴돼갔던 <해안선>의 ‘강 상병’과는 달리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의 ‘진태’는 거대한 휴머니즘의 도살장 한가운데서 외부로부터 파괴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시대성과 국적성을 별달리 고민하지 않음에 틀림없는 이 영화에서, 결국 ‘진태’라는 상징적인(그렇기에 보편적인) 캐릭터는 ‘과도한 남성성의 폭력성으로부터 무너져가는’ 인물이기에 <해안선>의 그것과 닮았다. 장동건에게 이 영화는 <해안선>으로부터 끌어낸 자신의 다듬어지지 않은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성장시키고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한국영화산업을 통째로 흔들어 메다꽂을 수 있는 초유의 거대 자본 프로젝트였다. 다시 말해 그에게는 전작에서 그토록 떨쳐내려 했던 스타로서의 존재감까지 가져가야 하는 부담이었다. 그러나 장동건은 이 모든 것을 캐릭터를 통해 정면돌파한다. 동싱을 지키기위해 스스로 광인이 되어가는, 그리고 그 광기에 스스로 도취되는 바로크적 캐릭터 속에서, 그의 눈빛은 숨막힐 정도의 아름다움마저 뿜어낸다.

하지만 우직하고 단선적인 내러티브의 함정에 배우 장동건 역시 발목을 접질러버렸다. 안일한 영화적 장치들 때문에 극적인 생동감을 잃어가는 영화를 보조하기 위해, 그는 ‘강 상병’과 같은 폭열하는 광기의 에너지를 분출시키면서도 동시에 과감한 ‘절제’와 입체적인 분석으로 ‘진태’를 끌어낼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영화를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해안선> 실험에서 보여졌던 한계를 넘어서는 바로 그 지점에서 태극기를 꽂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영화 속의 장동건은 넘치는 에너지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순간에 종종 실패한다. 그의 진정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때는 ‘미쳐버린 진태’의 순간들이 아니라 ‘미쳐가는 진태’의 숨은 광기를 흠칫 내보이는 그 짧은 순간이다.

유년기의 종말, 그리고 청년기는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흥미로운 스타이자 배우다. 그의 12년 필모그래피는 그 자체로서 ‘완성도’를 가진다. 영화계의 바깥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고민하고 투쟁하며 유임(!)승차한 이 남자의 역사는 현재의 한국영화 산업의 궤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유한 텍스트가 되었다. 새로운 영화산업의 고도성장기, 그 한국영화의 생동감 넘치는 유년기를, 다가올 예측 불가능의 청년기와 이어줄 이 놀라운 시대의 얼굴인 ‘장동건’의 첫 걸음마.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에는 의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로서 그는 이제 막 ‘유년기의 종말’을 맞이했다. 그와 함께 한국영화도 그 놀라웠던 ‘유년기’에 작별을 고하고 청년기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장동건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새로이 시작될까. 걸음마를 떼는 것처럼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여 쏟아붓는 것만으로도 ‘전진’할 수 있었던 유년기와는 달리, 청년기의 그는 때로는 서서히 돌아가며, 때로는 조용히 뒤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가 어떤 방식을 택하든 상관없이, 그 행보를 조용히 예측하며 조심조심 따라가보는 우리의 마음은 새로웠던 한 시대를 닫고 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