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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민식의 마음 [3]

“배우를 창작 주체로 인정하는 감독이 현명한거죠”

남재일 | 김기덕 감독과 홍상수 감독 영화 중에서 하나만 하라고 하면?

최민식 | 둘 다 안 해요.

남재일 | 요즘 평론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감독이 그 두 사람이잖아요. 저는 제작현장은 잘 모르니까, 두 감독의 영화 스타일과 최민식씨의 연기 스타일만 보면 잘 맞을 것 같기도 한데….

최민식 | 나는 화제의 감독이라거나 문제작 감독이라고 해서 작품을 결정할 때 영향받지는 않아요. 작품 선택 기준은 한번에 다 읽을 수 있는 시나리오가 유일한 기준이에요. 그러니까, 재미있는 거죠. 홍상수 감독 스타일을 듣기는 했는데, 제가 이렇다저렇다 평가하는 건 아니고, 공통분모를 형성하기보단 충돌이 있겠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죠. 싸우려고 작품 하는 건 아니니까. (웃음)

남재일 | 어떤 감독이 가장 감수성에 맞는 것 같습니까.?

최민식 | 배우를 창작의 주체로 인정해주는 감독. 단순히 하청업체로 생각하고 너는 내가 만들라는 물건이나 만들어서 납품해라, 이러면 곤란하죠.

남재일 | 자기 문체가 강한 감독하고는 충돌하겠네요.

최민식 | 그렇진 않아요. 박찬욱 감독이 얼마나 자기 문체가 강한데요.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나를 창작의 주체로 인정해줘요. 송능한 감독하고 <넘버.3> 작업할 때도 그런 걸 느꼈어요. 영화는 태생적으로 감독 예술이에요. 하지만 진짜 노련하고 여우 같고 현명한 감독은 배우를 창작의 주체로 인정해주는 게 노동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란 걸 알고 있어요. 여우 같은 권모술수, 테크닉 같은 거요. 그래서 제가 인터뷰할 때 박찬욱 감독하면 뭐가 생각나느냐고 물어서 유능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아주 머리가 똑똑하고, 팀을 조합하고 리드하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에요. 쓸데없는 데 에너지 소모 안 해요. 일단 화를 안 내요. 현장에서 화를 내는 걸 못 봤어요. 화를 내는 데 쓰는 에너지를 작품을 위한 에너지로 전환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나이는 나보다 한살 아래지만 같은 연배로서 참 많이 배웠어요.

“난 진보도 보수도 아니에요. 이분법 논리가 너무 싫어요”

남재일 | 얼마 전에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영화인 서명을 했잖아요. 정치적인 현실에 대해 관심이 많은가요?

최민식 | 평소에 관심 가지려고 노력도 안 했는데 성질나게 하잖아요.

남재일 |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어떤 대목이 가장 성질이 나는가요?

최민식 | 참여연대하고 인터뷰하면서 그런 비유를 한 적이 있어요. 한 가정에 아버지가 있어요. 뭐, 한 38평 아파트에서 별 어려움 없이 평범하게 중산층으로 살았는데, 어떤 놈한테 빌붙어서 잘하면 100평짜리 빌라로 이사해서 잘 먹고 잘살게 해준다는 말에 나쁜 짓을 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당장은 잘 먹고 잘살 수 있을지 몰라도 가족들이 나중에 아버지를 평가하고 그 집안의 가풍을 평가하면서 얼마나 콤플렉스에 사로잡히겠어요. 근데 그 일을 거부해서 길바닥에 나앉고 원룸으로 이사를 했어요. 온 식구가 흥부네 식구처럼 살아도 오히려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버지를 존경하게 돼요. 우리가 길바닥에 나앉았어도 아버지가 옳았다고. 그 집안의 정신적인 면은 더 풍요로워지는 거죠.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정신적인 공황상태예요. 이 나라에 살면서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게 별로 없잖아요. 내가 너무 비관적인지 몰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애국심을 가질 만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남재일 |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가 참 도식적이긴 하지만, 스스로의 정치적인 성향을 진보-보수 스펙트럼에서 찾는다면 어디쯤에 있는 것 같습니까?

최민식 | 나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에요. 그런 이분법적 논리가 너무도 팽배하잖아요. 그런 것 자체가 너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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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재일/ 문화평론가 commat@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