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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만화 원작인 신작 <다세포 소녀> 준비하고 있는 이 감독
사진 오계옥김현정 2005-06-30

“재미있고 무책임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이재용 감독은 지금부터는 이름없이 이 감독이라고 써달라고 했다. 농담을 하고 계신 건가, 갈등하고 있는데, 진짜라며 정색을 한다. “조카들에게 알리기도 그렇고 하여… 삼촌 뭐하냐고 물어볼 텐데.” 그는 사진을 찍을 때도 나중에 검은 띠로 얼굴을 가리는 수고를 덜어주고자 미리 준비해온 선글라스를 쓰고 포즈를 취했다. 장난 같았다. 놀고 있네, 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레고 블록을 앞에 두고 어떤 마을을 만들어볼까 고민 중인 소년처럼 보였다. 이 감독을 이렇게 만든 영화는 B급 달궁의 인터넷 만화가 원작인 <다세포 소녀>. 무쓸모 고등학교가 배경인 이 만화는 사도마조히스틱한 섹스파트너이자 연인으로 맺어진 회장과 부회장,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가난을 등에 업고 다니는 생활보호대상자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 교내 유일한 숫총각 왕따지만 왠지 게이들에겐 매력적으로 보이는 ‘외눈박이’ 등의 에피소드를 순정만화처럼 고운 그림체로 그리고 있다. 제작사인 영화세상의 안동규 대표는 우연히 딴지일보 사이트에서 <다세포 소녀>를 보고 다음날 판권계약을 맺었고, 감독 섭외와 시나리오 초고 완성까지 광속으로 달려왔다고 한다. <다세포 소녀>가 개봉을 예정하고 있는 올해 말까진 줄곧 이 감독이라고만 불리게 될 이 감독. 그는 섬세하고 단정하리라는 선입견을 무너뜨리면서 황당무계한 스토리와 잔가지처럼 뻗어 있는 캐릭터들의 비사를 조근조근 들려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서울의 하루를 찍는 프로젝트 <한도시 이야기 9404>를 마친 이후 새로운 영화를 준비 중이었다고 들었다. <다세포 소녀>는 아니었는데, 어떻게 지내왔나.

=다음에서 제작한 인터넷 단편영화 <사랑의 기쁨>을 찍었고 시나리오도 썼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제작사인 영화사 봄과 준비하는 영화였는데 규모가 꽤 있는 시대극이어서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전에 재미있고,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무책임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전작인 <스캔들…>과 <정사>는 빈틈없고 단아한 영화였다. 그 때문에 이 감독이 <다세포 소녀>를 선택한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빈틈없이 짜여진 영화도 하나의 스타일이고 그걸 제대로 해내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사> 다음에 <순애보>를 찍었던 것처럼 무언가를 하고나면 다른 영화를 하고 싶어진다. 내 영화의 출발점도 그랬던 것 같다. <호모 비디오쿠스>나 학교 다니면서 만들었던 영화들은 무엇이 영화일까보다 이런 건 왜 영화가 아닌가에서 나왔다. <한도시 이야기>도 왜 하루에 영화를 찍을 수 없다는 걸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 관습적인 토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제작사 영화세상의 안동규 대표가 <다세포 소녀>를 제안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안동규 대표와는 영화를 하던 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니 20년도 더 된 사이다. 대학로에 젊은 영화인들이 모이는 8과 1/2이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만났던가. 전부터 한번 작업을 같이 하자고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달쯤 아이템을 던져주기에 보고 나서 괜찮은 만화라고 말했더니, 그럼 하는 걸로 알겠다고 하더라. (웃음) 그분이 워낙 행보가 빠르다. 나는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편이어서, 죽인다, 이 정도의 표현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안 대표를 대할 때는 단어 선택에 신중해야 해서(웃음) 흥미롭고 독특하다는 느낌 정도만 말했다. 문제는 과연 이 만화를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런 점에서 각색이 궁금해진다. <다세포 소녀>는 캐릭터가 끌고가는 에피소드 위주여서 하나의 내러티브를 가진 영화로 만들기가 어려울 듯한데.

=그럴 줄 알았는데 4, 5일 만에 시나리오 초고를 썼다. 이런 적은 거의 없었다. 고민도 많이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곤 했다. 하지만 영화마다 적당한 스타일이 있을 거다. 지금은 고민하기보단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영화를 만들면서도 무언가가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두려고 한다. 캐릭터는 원작에서 가져왔지만 변화를 주었고 스토리는 원작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대신 ‘도라지 소녀’가 오빠의 자위장면을 목격하거나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가 원조교제를 하는 것처럼 캐릭터를 설명할 수 있는 원작의 에피소드는 간간이 삽입된다. 전체 스토리는 음… 아직 정리가 덜 됐을 수도 있는데… 이런 거다. 무쓸모 고등학교는 종교의 자유를 실험하는 학교여서 종교가 같은 아이들끼리 반을 만들었다. 불교반, 가톨릭반, 이슬람반 이렇게. 그중 무종교반이 있고 <다세포 소녀>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이반 학생들이다. 어느 날 학교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날나리들이 하나씩 얌전해지고 대학에 가겠다며 공부를 하기 시작하는 거다. 이상하게 여긴 아이들은 사건을 추적하다가 이번 학기 들어 한번도 교장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캐릭터가 매우 많은데 모두 살릴 생각인가. 혹시 특별하게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없던가.

=어느 캐릭터인들… 캐스팅하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웃음) 하나하나 독특하고 친근감이 생긴다. 그중에서도 좀더 정이 가는 캐릭터는 ‘외눈박이’와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다. 캐릭터가 워낙 많기 때문에 정리를 할 필요는 느꼈다. 그래서 전교 회장은 ‘도라지 소녀’의 이란성 쌍둥이 오빠로 설정해서 원래 오빠가 가지고 있던 에피소드를 그쪽으로 보냈다. 캐릭터들마다 숨겨진 사연을 주거나 과거를 풍성하게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수능을 보기 얼마 전에 죽은 첫사랑이 있다. 그 첫사랑이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는데 그 별자리 이름은 페니수스 자리다. 소녀가 하늘을 보며 첫사랑을 그리워하면 페니수스 자리에서 유성 같은 별무리가 뿜어져나오는 거지. (웃음) 아직은 초고 단계여서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아이템들이 신기하게도 드라마와 딱딱 맞아떨어진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성격의 영화라 그런가보다.

-<다세포 소녀>는 성적으로 과감하고 유머도 두드러진다. 지금까지 만든 세편의 장편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특히 유머라는 부분에서.

=사람들은 <다세포 소녀>가 세다고 말하지만, 세상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세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하이틴은 성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면서 가장 억압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그 억압에서 빠져나오는 일탈이 재미있었다. <다세포 소녀>는 포털에서 검색 1, 2위를 달리는 만화는 아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좋아하는 만화다. 그건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하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걸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나도 직유법은 못 쓰는 사람이어서 이 만화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스캔들…>과 <순애보>가 유머가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스캔들…>은 사람들이 사극을 보러왔다가 웃기는 영화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는 영화였다. <순애보>도 그랬고. 그 영화에서 네마자데가 “리에의 집은 어디인가”라고 혼자 말하며 집을 찾아다니는 장면이 있다. 그걸 보며 사람들은 웃었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떠올리는 사람은 더 웃을 수 있었다. 그런 게 좋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웃을 수 있는 거. 유머는 심각한 걸 심각하게 느끼는 대신 한 걸음 떨어져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해준다.

-지금까지 들은 초고의 분위기만으로는 매우 신기한 영화가 떠오른다. <다세포 소녀>는 어떤 영화가 될까.

=무엇을 기대하고 오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랬다가 실망하면 안 되니까(웃음) 이렇게 해보자. (힘없는 목소리로) 상상 이상의 영화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웃음) 여러 장르가 섞인 영화일 것이다. 하이틴 로맨스 뮤지컬 판타지 액션 모험극! 정말 뮤지컬도 등장한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가 여고생 교복입는 걸 좋아하는 조폭에게 “당신 게이인가요?”라고 물으면 조폭이 “아니란다. 나는…”, 이렇게 시작하며 노래를 부르는 거다. 이번 영화는 뒤돌아보지 않고 쭉 나가서 올해 안에 개봉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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