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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마일>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황혜림 2000-03-07

“평론가 위해 영화 만들진 않아”

94년 <쇼생크 탈출>로 미국 평단의 찬사와 아카데미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뤘던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41). <쇼생크 탈출>은 스티븐 킹 원작 영화 중 최고의 수작으로 꼽혔고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그를 단숨에 A급 감독 대열에 올려놨다. 하지만 성공한 감독의 다음 행보는 뜻밖에 오랜 침묵이었다. 작가 겸 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다라본트는 제작부 조수, 세트담당, 배우 등을 두루 거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나이트메어3> <플라이2> <프랑켄슈타인> 등이 그의 각본이다. <쇼생크…> 이후 5년의 침묵을 깨고 내놓은 신작 <그린 마일>은 역시 킹의 소설이 원작. 선량하면서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흑인 사형수와 간수장의 관계를 통해 인간다움의 의미를 묻고 있다. 6천만달러의 <그린 마일>은 제작비 2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고 아카데미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두편의 영화가 성공하면서 갈 길이 더욱 바빠진 다라본트 감독을, <씨네21>이 전화로 만났다. 전화인터뷰는 2월의 마지막 날, 오전 10시30분부터 서울 워너브러더스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아시아지역 언론들과의 긴 전화인터뷰 스케줄 중 첫 번째였던 덕분일까. 다라본트 감독의 목소리는 비교적 생기있었다.

-<쇼생크 탈출> 이후 5년 만이다. 그동안 뭘 하며 지냈나.

=음, 본래 직업이 시나리오 작가니만큼 이것저것 글을 썼다. 꽤 바쁘게 지내면서, 그리고 다시 감독하고 싶은 스토리를 만나길 고대하면서. 애정, 열정을 갖고 스토리를 찾아간다는 것은 내게 나의 의식과도 같다. 그래서 가볍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영화를 찍기 위해서 찍고 싶지 않았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내가 푹 빠져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오래 걸렸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나.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의 경우만 봐도 휴머니티라든가 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두 작품은 물론, 어떤 이야기든 내가 끌린다고 느끼는 것은 감성적으로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이야기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기도 하고. 굉장히 감성적이고, 아주 풍부한 여행들이었다. 나를 감동시키고, 나를 울리고, 또 웃게 만들고. 뭔가를 느끼게 만드는 영화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그게 영화가 해야할 일이기도 하고, 내가 어떤 종류의 영화에 전념할 것인가를 정하는 기준이 된다. 난 생활에서든 일에서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길을 찾아왔다. 일종의 정신적 앙양, 뭔가 희망적인 것을 원했다. <앵무새 죽이기>와 <멋진 인생> 같은 영화는 내게 영감을 주는 작품들이다.

-<쇼생크 탈출>과 <그린 마일>은 물론, 그 이전에 만든 습작 단편 영화 <The Woman In The Room>까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왔고,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샤이닝>을 읽고 킹의 작품세계를 접하게 됐다. 아주 놀라운 소설, 아름다운 작품이고,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10대부터 그의 작품에 열중하게 됐고, 그의 고정독자가 됐다. 최근까지 그가 쓴 작품이라면 거의 다 읽었다. 킹의 열렬한 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도 만들게 됐다.

- 스티븐 킹의 많은 작품들 가운데 특별히 이 작품들을 고른 이유가 있다면.

=흠, 감정, 인내의 감성 때문이다. 아주 감동적이고 그런 점에서 풍부한 이야기다. 날 울게 만들었다. 결국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얘기다. 불가항력이었다. 킹의 이야기가 항상 이 세상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이 두편은 특히 판타지보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영역이 더 넓다.

-스티븐 킹의 작품에는 미스터리와 호러적 요소가 강한데, 당신이 연출한 두 작품은 그 중에서도 드라마의 비중이 큰 작품들이다. 본격적인 호러나 스릴러보다는 드라마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데, 스티븐 킹 소설에서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맞다. 난 그의 작품 중에서도 좀더 드라마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에 끌린다. 물론 킹의 작품에 항상 일정한 휴머니티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그의 모든 작품에는 휴머니티가 있다. 명백한 호러, 호러지향적인 작품들에조차도. 그게 내가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 대해 쓰는 것을 사랑한다. 그의 작품은 결코 단순한 호러가 아니다. 정말 사람에 대한 것인데, 때로 어떤 감독들은 그 사실을 놓치고 그냥 호러로 다루곤 한다. 그들은 킹이 매우 인간적인 작가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린 마일>까지 스티븐 킹의 소설로만 영화 3편을 만들었는데, 구체적인 작업에도 영향을 끼쳤나.

=<그린 마일>의 경우, 킹이 앉아서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초안을 들었다. 언젠가 킹이 집으로 전화해서 30초간 구상을 얘기해줬는데 환상적으로 들렸다. 죄수인 존 코피란 캐릭터와 사형수 감방의 간수장인 인물의 관계에 대한 얘기고, 죄수 캐릭터가 좀 보통사람과 다른데 거기서 이야기가 풀려나갈 거라고 했다. 난 꼭 완성되자마자 보여달라고 했고, 그는 그렇게 했다.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그는 영화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각본을 보고 싶어했고, 보여줬더니 마음에 들어했다.

-뮤지컬 영화 <톱 햇>의 한 장면,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춤추는 장면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 특별히 이 영화, 이 장면을 고른 이유가 있나.

=여러 가지 이유로 딱 맞는 선택이었다. 우선 내가 언제봐도 좋아하는 작품이고, 영화에 나오는 시퀀스들이 아주 멋지다. 아주, 음… 최고에 가깝다. 또한 30년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던 영화들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영화이기도 하다. 공황기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할리우드는 가벼운 판타지 뮤지컬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근심을 없애기 위해서. 내게는 그게 공황기 미국의 초상처럼 여겨졌다. 감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을 지켜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당시 나라의 1/3이 그랬듯 실업자가 돼 식료품 무료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공황기의 냉혹한 현실뿐 아니라 또다른 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할리우드가 생산해내는 멋진 판타지, 그 천진난만함, 즐거움이 공황기 현실과 이루는 놀라운 대조 말이다. 그러기에 아주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톱 햇>을 꼭 쓰고 싶어서 시간적 배경을 원작의 1932년에서 3년 뒤인 1935년으로 바꿨다. 영화 속 배경과 동시대 영화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톱 햇>이 1935년작이니까.

-원작 소설에 비교적 충실하게 각색했는데, 굳이 다르게 간 부분이 있다면 어떤 장면이고, 어떤 의도였나.

=8주간 각색작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변화를 최소화하려고 했다. 대부분은 이야기를 압축해서 스크린상에서 최대한 이해가 되게끔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는 톰 행크스 캐릭터가 존 코피가 유죄인가 무죄인가 하는 진실을 찾으려 애쓰는 장이 몇개 있다. 난 직접적으로 그가 그런 탐정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린 마일>에 대한 평을 읽어봤나.

=난 리뷰를 잘 읽지 않는다. 난 비평가들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지. 대중을 위해서. 많은 비평가들은 지적인 체하는 것 같다. 나한테는 별 소용이 없다. 난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

-사실 질문은 지금부터다. 2살배기가 봐도 보일 만큼 선악 구분이 단순하고, 흑인 죄수는 백인 간수들의 선량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에 그친다는 평이 <뉴스위크>에 실렸던데.

=그것 봐라. 그래서 비평가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되는 거다. 비평가들은 파란 걸 주면 빨간 걸 주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직접 자신들의 영화를 만들라는 게 내 답이다. 그래서 난 리뷰를 잘 읽지 않는다. 비평가들이 아니라 관객, 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영화를 만드니까. 그래서 내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관점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

-작가와 감독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제작부 조수, 배우, 제작자, 여러 가지 일을 해왔는데, 어떤 역할이 맞나.

=그렇다. 몇년간 세트일도 했고. 나한테는 영화를 만드는 훈련을 하기에 훌륭한 토대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그게 가장 행복하다고 해야겠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늘 나의 목표였다. 그걸로 먹고살 수 있어서 기쁘다. 다시 세트를 만드는 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작가도, 영화감독도 재미있는 일이다. 분명한 길이 없고 누구나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학교에서 그 길을 찾고, 어떤 사람들은 나처럼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가는 길을 걷는다.

-작가로서 오랜 경력을 쌓아왔는데, 감독을 하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쓸 욕심은 없었나.

=음, 매일같이 머리에서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알다시피 내가 작가로서 해온 일도 대부분 각색이었다. 난 지구상에서 가장 창의력 풍부한 아이디어 머신이 못 된다. 뭐 각색은 좀 하지만.

-앞으로의 계획은.

=내가 아니라 다른 작가가 쓴 작품인데, <비주>라는 각본을 발견했다. 아주 근사한 얘기다. 소설을 각색한 게 아니라 오리지널 시나리오고. 그게 내 차기작이 될 가능성이 99%다. 아주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다. 다행히도 감옥에 갈 필요는 없고. (웃음) 로맨틱 코미디의 일종이랄 수 있는데 진지한 면이 있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내 나라의 역사 가운데 불행한 장이랄 수 있는 매카시 선풍을 다루니까. 그래서 진지한 면도 있고, 거의 프랭크 카프라 영화 같다. 카프라는 내 정신적인 아버지로 느낀다. 이 영화를 만들어서 그에게 보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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