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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주류 영화 최초의 여성영웅, 조디 포스터
이유란 2000-01-18

그 누구의 삶이라도 거대한 진실을 껴앉고 있기 마련이지만, 눈에 띄게 유별난 인생 유별난 인물이 있다. 아직 그의 ‘한삶’을 다 산 건 아니지만 조디 포스터(38)를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배우이자 감독이며 제작자이고 영화 한편의 출연료로 1500만달러를 거두는 할리우드의 일급 여성스타이다. 여기까지라면 그도 하고많은 재주꾼의 한 사람일 따름이지만, 그는 레즈비언의 우상이자 연인이고 공공연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로부터 꺼내지는 이야깃거리도 유별나게 풍요롭다. 어느 사이엔가 조디 포스터는 결이 풍부한, ‘하나의 텍스트’가 돼버렸다.

지난해 서울여성영화제에 상영된 <조디 포스터 이야기>는 조디 포스터에게 꽂힌 레즈비언들의 달뜬 시선을 주메뉴로 한 다큐멘터리다. 영화에는 “이십대 후반의 레즈비언들은 조디를 보며 자랐어요. 여성들이 어릴 때 그의 스타 이미지에 자신을 투사했던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라든가, “부치(레즈비언 연인 사이에서 남성 역할) 말괄량이 아이로서 전 그녀와 동일시했어요. 사춘기를 지나면서 그녀는 욕망의 대상이었어요”라든가, 하는 애정고백이 차고 넘친다. 절대로 사생활을 노출하는 법이 없는 조디 포스터는 정작 성정체성에 대해 아무 말도 없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레즈비언들은 그를 우상으로 삼았으며, 그가 출연하는 모든 영화에서 그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려고 한다. 예컨대, <양들의 침묵>에서 FBI 자격증을 받으러 단상에 올라가는 조디 포스터가 동료 캐시 레이몬을 쳐다볼 때의 눈빛조차 그들에겐 예사롭지 않다. 한 레즈비언은 열네살 때 <프리키 프라이데이>에서 본 조디 포스터와 나타샤 킨스키의 짧은 입맞춤을 지금껏 잊지 못한다고 했다. <피고인>을 찍을 때 그가 변호사 역의 켈리 맥길리스와 사귄다는 소문은 레즈비언들에겐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레즈비언들이 무턱대고 조디 포스터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다. 레즈비언들은 그가 보여준 ‘톰보이’ 이미지를 그들의 역할모델로 삼았다. 그의 초기 캐릭터들은 거칠고 삐딱하고 씩씩한 선머슴에 가까다. <앨리스는 이곳에 살지 않는다>(1974)의 도리스는 “뿅가게 해줄까”라며 앨리스의 아들을 문제아의 길로 인도하는데, 얼핏봐선 도리스가 소녀인지 소년인지 구별이 안 된다. <골목길 끝에 사는 어린 소녀>의 고아 조디 포스터는 겁없이 맘에 안 드는 어른들을 독살시킨다. <뉴 햄프셔 호텔>(1984)에서 치어리더로 분했을 때도 그는 동료 여학생에게 마구잡이로 대들만큼 거칠다. 영화평론가 페리 브라운이 말한대로 “그는 보통 소녀처럼 보일 때도 매우 거칠다.” 오죽하면 여성지 <엘르>가 그의 80년대 패션을 “나무꾼(lunberjack) 스타일”이라고 했을까. 그러고 보면 조디 포스터가 애처로운 로맨스의 여주인공이 되기란 애초부터 글러진 일인지 모른다. 그 스스로도 “내가 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 있다. 난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연약하게 보이는지 모른다”라고 고백한다.

정말로 조디 포스터는 사랑에 울고웃는 적이 별로 없다. 그가 로맨스의 황태자 리처드 기어와 커플을 이뤄 <서머스비>에 출연하기로 했을 때, 제작자조차 처음엔 조디 포스터 캐스팅을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개봉한 <애나 앤드 킹>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이례적인 영화에 속한다. 그가 출연을 결정했을 때 앤디 테넌트 감독도 조금은 놀랬으니까. “그 시대 여자치고 애나는 낯선 나라를 찾아갈 만큼 용감했다. 또한 그녀는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그는 시암 왕국으로 갔다.

조디 포스터에게 영화는 “이빨닦기와 같다.” 이말은, 세살 때 광고모델을 시작해서 다섯살 때 영화시나리오를 읽고 일곱살에 TV시트콤에서 연기를 시작했으며 열살 때 <나폴레옹과 사만타>로 영화 데뷔한 그에겐 과장이 아니다. 열살 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기와 영화에 대한 자기 견해를 딱 부러지게 밝힐만큼 그는 영민했다. <앨리스…>에서 일찌감치 그의 재기를 알아챈 마틴 스콜세지는 <택시 드라이버>에서 그를 더러운 뉴욕의 밤거리로 불러냈다. 어린 창녀로 분한 <택시 드라이버>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창조하도록 요구받았다. 그리고 연기가 취미삼아 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열네살 때의 일. 평생을 영화에 걸기로 맘먹은 것도 이즈음이었다. 85년 예일대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조디 포스터는 이듬해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고, <천재소년 테이트>(1991)로 감독이 됐으며 올해 세 번째 감독작 <서양자두>를 극장가에 푼다. 지금 그는 연기를 그만둘지 모른다는 소문이 일만큼 연출의 매력에 빠져있다. “연기를 완전히 그만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지금껏 내가 해온 게 그거다. 난 영화만들기를 좋아한다. 연출은 커다란 도전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다. 배울 게 아주 많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내가 누구인가를 깨달아간다.”

연출작이나 출연작이나, 조디 포스터의 영화에는 ‘여성 영화’로 묶일만한 작품이 거의없다. 그럼에도 여성평론가들은 여성성이라는 돋보기로 조디 포스터의 캐릭터를 뜯어본다. ‘톰보이’ 시절을 거쳐 ‘여인’으로 성숙하면서 그는 여성적인 것의 아름다움을 긍정해갔다. 여성평론가 루비 리치가 지적한대로 “글래머한 이미지와 인공적인 여성성에 모두 저항하면서.” 그는 아예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기도 한다. <양들의 침묵>에서는 총을 들었으며 <콘택트>에서는 지금껏 여성을 소외시킨 과학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섬세한 여성성을 잃지 않는다. “그의 스타 페르소나는 점점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체현하고 있다. 그는 상반된 가치들을 동시에 투사한다. 강하면서도 약하고, 남성적이면서 여성적이고 보호하면서 보호받는다.” 평론가 크리스티나 레인의 얘기다. <양들의 침묵>에서 조디 포스터는 여성 동료와 연대하며, 여성 희생자를 구해낸다. 테리 브라운은 그런 그를 “주류 영화 최초의 진정한 여성영웅”이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건 이 두편의 영화에 그가 남성들로부터 압박받는 장면이 나온다는 점이다. <양들의 침묵>의 클라리스는 남성 경찰들에게 뺑 둘러싸여 숨막혀하고 <콘택트>의 엘리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할 기회를 남자 선배에게 빼앗기고 황망해한다. 이 장면들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선 여성의 자리를 간결하게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조디 포스터는 스크린에 그려진 여성의 초상화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여성이 20초만에 오르가슴을 느끼도록 그려지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이냐는 항변이다. 그는 여성의 참된 섹슈얼리티와 욕망을 스크린에 펼쳐놓고 싶어한다. “내가 아는 여성을 영화에서 보고 싶다”는 거다. 그는 점점 페미니즘 전선의 최전방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현재 할리우드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배우 조디 포스터가 <한니발>에 출연하느냐의 여부다. 여러 가지 설이 나돌고 있지만 포스터의 출연은 물건너 간 것 같다. 대신 그는 독일의 여류감독 레니 리펜슈타인의 생애를 그릴 영화 <레니 리펜슈탈 프로젝트>를 차기작으로 골랐다. 영화사의 한 자락을 차지하는 명감독이자 히틀러의 조력자이기도 했던 굴곡 많은 리펜슈타인 감독의 생애가 조디 포스터의 영혼을 빌어 재현된다. 이제 두살된 아들 찰스를 낳느라 한동안 뜸했던 그의 발걸음이 다시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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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SYG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