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국감에서 멀티플렉스의 독과점 지적한 김영주 의원
이영진 사진 오계옥 2006-11-08

“시장점유율, 지역시장을 기반으로 따져야 한다”

국정감사 질의 도중 인터뷰에 응하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잠깐의 인사 뒤에 “국정감사 해야 하는데…”라고 말을 흐리더니, 상대가 인터뷰 준비를 하는 동안 중계 모니터를 보면서 문답을 체크하느라 정신없다. 오죽했으면 곁의 보좌관이 말상대를 자처하고 나섰을까. 국회 정무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김영주 의원. 3년 연속 국정감사 모범생으로 뽑힌 그는 올해에는 공정거래위원회 국감 때 거대 멀티플렉스의 독점에 대한 폐해를 지적해 영화계 안팎의 주목을 끌었다. 1970년대 중반 서울신탁은행 실업팀 농구선수로 활동했고, 1980, 90년대에는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을 지냈으며, 이제는 의정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그를 만나 영화계까지 오지랖을 휘날린 이유를 캐물었다.

-3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올해 국감에서도 초반부터 피감기관 이외의 이슈들까지 건드려 주목을 끌었는데. =나보다는 보좌관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추석 때 고향에도 못 가고 사무실에서 밤을 지샜으니까. (웃음) 국정감사 때 대개 피감기관에서 받은 자료만으로 질의를 하곤 하는데, 우리는 감사원이나 법원쪽 자료까지 챙겨서 크로스 체크한다. 의정활동하면서 선정적인 폭로로 정부와 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속한 정무위는 의원이 조사하려고 맘먹으면 국정 전반을 다 다룰 수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무조정실 등이 피감기관이다 보니 다른 위원회보다 접하는 사실들이 많다. 영화산업 독점문제도 문화관광위원회쪽에서 왜 손대느냐고 하더라. (웃음) 그런데 문광위 소관만으로 보기도 어렵다. 공정위가 시장의 불공정거래를 조사하는 기관이니.

-올해 공정위 국정감사 때 거대 멀티플렉스들의 독점이 가져오는 폐해에 대해 지적했다. =겉에서 보면 영화계는 화려하다. 2001년 이후에는 시장점유율에서 외화를 앞질렀고. 그런 기세를 감안하면 한국영화를 만드는 제작부문 또한 수익을 거두는 줄 알았다. 좋은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그런데 <괴물>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몇몇 초대형 흥행작을 만든 경우를 제외하곤 아니라고 하더라. 많은 제작사들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다. 어떤 관행이 이러한 결과를 만드는 것일까. 의문을 품게 됐고 영화인들을 만나면서 제작부문에 불리한 불공정거래 관행이 원인임을 알게 됐다.

-영화계 안팎에서 CGV, 메가박스, 롯데 등 3대 멀티플렉스의 시장점유에 대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이를 독점이라고 규정하고, 법적 규제를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이견이 있어왔다. =이른바 빅3가 갖고 있는 스크린 수는 2005년 기준으로 전체 스크린의 47.9%다.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 1위 사업자를 말한다. 아니면 1위부터 3위 사업자의 점유율 합계가 75%를 넘어야 한다. 전국 단위로 따지면 아직 빅3를 시장지배적 사업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되는 게 있다. 공정거래법 적용에서는 관련시장을 어떻게 획정하느냐가 중요하다. 상영의 경우, 극장간 경쟁은 지역적 한계를 갖고 있다. 대전과 대구의 극장이 경쟁하는 게 아니다. 대전 내, 대구 내에서 경쟁이 이뤄진다. 따라서 시장점유율 기준 또한 지역시장을 기반으로 따져봐야 한다. 그럴 경우 인천, 부천, 전주, 울산에서 빅3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다. 부산, 수원, 광주 등은 근접한 시장점유율을 보인다. 그동안 공정위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거다.

-시장지배력을 가진 메이저 3사의 불공정행위에는 어떤 것이 있나. =한국영화는 외화보다 10% 낮은 수익을 분배받는다. 과거 한국영화가 외화에 비해 관객동원 능력이 떨어졌을 때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그렇지 않은데도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또 하나는 초대권의 남발이다. 멀티플렉스는 자체 마케팅을 위해 초대권을 발행해왔다. 2002년부터 올해 8월까지 3개 멀티플렉스가 발행한 초대권은 무려 265억원어치에 달한다. 이는 영화제작사나 투자·배급사들에 돌아갈 정당한 수익을 빼앗는 거다. 극장 마케팅 비용을 제작사에 전가하는 행위이고. 외화의 경우 1일 입장인원 200명 미만일 경우 종영한다는 조건이 계약에 명시되어 있지만, 한국영화의 경우 일방적으로 극장이 상영기간을 결정한다. 최소 상영기간이나 종영기준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 밖에 계약서와 다른 부율 강요, 계열 배급사의 영화에 더 많은 스크린을 제공하는 등 공정거래법이 금하는 거래행위 차별 및 부당지원행위 등이 시장지배적 사업자들에 의해 행해져왔고, 결국엔 제작 기반을 약화시켰다고 본다.

-다른 분야에서 유사 관행들에 제재를 건 사례들이 있나. =대규모 소매점업 고시라는 게 있다. 백화점, 할인점, 홈쇼핑 등 유통망을 장악한 대규모 소매점업자들이 판촉비용 부당강요 등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영화 또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영화라는 상품 또한 현실적으로 멀티플렉스를 통해야만 판매가 용이한 것 아닌가. 유통망을 쥔 멀티플렉스들 또한 거래상 지위 남용을 할 위험이 크다.

-국감 때 공정위 직권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것만으로 독점으로 비롯된 불합리한 관행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보나. =공정위가 검찰은 아니잖나. 다만 예방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본다. 국감 증인선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상영 중인 한국영화의 부율조정 사례들이 많이 줄었다고 하더라. 공정위 조사 또한 시장의 자율적 조정을 위한 것이다.

-지난 몇년 동안 한국영화 발전의 원동력을 뭐라고 보나. 제작자들은 과거와 다른 질 높은 한국영화의 생산이, 극장업계는 멀티플렉스의 급속한 확대 때문이라고 본다. =멀티플렉스의 긍정적인 측면은 높이 평가한다. 시설이나 환경이 좋지 않은데 관객이 찾겠나. 멀티플렉스가 영화산업 파이를 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선 좋은 콘텐츠가 계속 나와야 한다. 제작사가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한다면 좋은 영화가 나올 리 없다. 결국엔 관객이 한국영화를 외면할 것이고, 극장을 찾는 관객은 줄어들 것이다. 결국 독점의 폐해들은 거대 멀티플렉스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얼마 전 열린우리당과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한국영화 중장기 발전방안 마련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방안의 비현실성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다. =고민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영화계와 대화가 줄었다. 영화계의 거부감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방안에 대한 좀더 상세한 논의에 앞서 영화계와 대화 테이블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미국과 북한도 대화한다고 하지 않나.

-2004년 환경노동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할 때 조수급 스탭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한 정책자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들의 배고픔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사실 금융노조에서 배고팠다고 말하긴 좀 어렵고. 금속이나 섬유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열악한 환경을 많이 봐서인 것 같다. 영화산업의 경우 호황 속에 가려진 그늘 같은 것을 들춰보고 싶었다. 조선산업도 세계 1위지만, 근로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으니까. 4대 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연봉이 몇 백만원밖에 되지 않는 스탭들의 현실을 접했을 때는 충격이었다.

-의정활동을 하다 보면 문화생활을 즐길 시간이 없을 텐데. =<왕의 남자>도 지난 연휴기간에 겨우 봤다. 국회의원들의 문화생활이라는 게 피폐한 수준이다. 영화관에 갈 시간이 없으니 대개 DVD로 해결한다. 영화인들이 욕하겠지만,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겠다는 급한 마음에 다운로드받은 CD를 몇번 본 적도 있다. (웃음) 개인적으로 임권택 감독님 영화를 좋아하는데, 불공정한 관행 개선 노력은 그분의 영화들을 보면서 받았던 정신적 후원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믿고 있다.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면. =안성기. 좋아하는 게 아니라 존경한다. 사실 지위나 명성을 누리면서 배우로서만 살아가도 될 텐데 영화계 대소사에 나서는 걸 보면 존경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런 분들이 있으니까 한국영화가 발전하지 않겠나. 언제 한번 안성기씨와 대화할 기회가 좀 생기면 좋겠다. (웃음)

-영화계에는 여성들이 많다.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도 많으니 다음 국감 때는 여성영화인들의 고충에 귀기울여보는 게 어떻겠나. =여성 은행원들이 왜 차별받나 하는 의구심에서 노조활동을 시작한 만큼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겠다. 학창 시절에 농구를 해서 그런지 체력이 강하다. 현장 뛰는 건 자신있다. 뛰다 보면 고충을 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