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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고민에 대처하는 혜교의 자세, <황진이>의 송혜교
박혜명 사진 이혜정 2007-05-25

영화배우 송혜교는 요즘, 촬영 때보다는 편안하지만 6월6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긴장과 걱정이 뒤섞인 채 있고, 두 번째로 경험해보는 영화 홍보 스케줄에 “이 직업이 노가다가 아닐까”를 자문 중이다. 표지 촬영과 인터뷰가 있던 5월15일 화요일 저녁, 송혜교는 세 군데 매체와 인터뷰를 치르고 온 터였으며 전날 월요일에도 타 매체 표지 촬영 및 인터뷰로 진을 뺀 뒤였다. 그러나 세상의 프로페셔널들은 심신의 피곤함을 핑계로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 <파랑주의보> 촬영현장에서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라고, 스튜디오에 도착해서는 “어머,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하고 활달한 인사를 건넨다. 낭랑한 친밀함에 기자는 가슴이 떨렸다.

영화계를 이제 막 알아가고 있는 프로페셔널 연기자 송혜교는 지금 자신의 두 번째 영화 <황진이>로 다소 무거운 부담들을 한꺼번에 떠안고 있다. 그중에는 본인의 의지와 전혀 무관한 것들도 있다. 어떤 고민들일까. 영화배우 송혜교를 둘러싼 세 가지 걱정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송혜교의 자세.

1.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야 하는 장녀의 자세

영화계로 와서 송혜교가 얻은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뿌린 대로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일 것이다. 2005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그의 데뷔작 <파랑주의보>는 흥행 성적이 썩 좋지 않았는데 그해 겨울 극장가에서는 <킹콩>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당연히 잘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죠. 그렇지만 100% 제 연기나 작품 자체의 문제로 관객에게 외면당한 결과였다면 더 쉽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고 고민했을 텐데, 물론 그런 고민도 했지만, 배급에 밀려 금방 내려졌던 거니까요. 100% 관객 외면 때문은 아니니까. 와, 영화라는 게 이런 것이었구나. 몇 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거구나.”

냉정하고 쓰디쓴 배급 세계를 영화계 입문 대가로 경험해야 했던 송혜교가 요즘 지인들에게 듣는 말. “한국영화가 네 손에 달렸단다. <황진이>가 잘되지 않으면 전부 다 안 되는 거야.” 우스갯소리도 섞였겠지만 빈말만은 아니라는 걸 안다. 올해 들어 더 짙어진 한국 영화계의 침울한 분위기를 그도 모를 리 없다. 2007년 대표 흥행작이라고 할 만한 한국영화가 아직까지 없는 상황에서 <황진이>는 여름 시즌 한국영화 1번 주자다. “만약에 내가 잘 안 되면, 나만 나쁘게 끝나는 게 아닌가? 그런 부담이 있죠.” 데뷔작에서 스스로 만족할 정도까지 얻어내지 못한 ‘영화배우’라는 타이틀과 인정을 이번에는 얻고 싶지만 그건 “굳이 개인적 욕심을 밝혔을 때”라고 한다. 만에 하나 <황진이>가 잘 안 되고 한국영화가 침체일로를 벗어나지 못한다 해도 그 누구도 송혜교에게 원망의 화살을 쏘지 않겠지만, 이제 겨우 두 번째 영화를 찍은 스물여섯살의 여배우 양 어깨에 무거운 짐이 지워진 이 분위기만큼은 참 아이러니하다.

2. 동시대 유일이 아닌, 둘 중 하나여야 하는 황진이의 자세

드라마 <황진이>에 관한 이야기도 피해갈 수는 없다. 동일한 소재의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등장한다는 건 당연히 양쪽 모두를 긴장시키는 일이다. 실제로 영화쪽 분위기는 매우 조심스럽고 예민했다. 지난해 말 2개월 반여 방영된 화제의 드라마를 송혜교는 시청했다고 한다. “가고자 하는 길이 너무나 달라요. 지원씨가 그려내는 황진이는 예인으로서의 모습, 화려한 기생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어릴 때부터 본인이 기생을 하고 싶어했던 인물이잖아요. 반면 저는 양반집 출신이었지만 출생의 비밀을 안 뒤로 어쩔 수 없이 기생의 길을 간 것이고, 결국에는 기생이건 종이건 양반이건 그런 건 한낱 신분일 뿐 모두 다 같은 인간이다라는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잖아요. 인간적인 면에 더 초점을 맞췄죠.”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송혜교가 털털히 웃는다. “솔직히 제일 좋은 건 그거죠. 이 시대의 황진이는 나만이고 싶은데 왜 둘일까. (웃음)” 사람이 자기 욕심을 인정하고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은 되레 내면의 당당함을 증명할 때가 있다. “제가 열심히 하는 데 좋은 자극이 됐어요. 지원씨를 보면서 늘 생각했던 건, 일단 열정적으로 정말 열심히 연기를 하시니까, 그게 TV나 스크린 밖으로까지 느껴지잖아요. 나도 방심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아쉬움의 기운은 금세 사라지고, 자신만의 황진이에 대한 자부심이 눈빛에 자리했다.

3. 16세기 여인과 기싸움을 해야 했던 21세기 여인의 자세

송혜교는 지난해 1월, 장윤현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 장윤현에게 물었다. “감독님은 왜 저를 고집하셨어요?” 장윤현은 말했다. “송혜교란 배우를 옛날부터 봐왔는데 뭔가 터질 듯한 것이 안 터지고 늘 어정쩡한 상태로 있더라. 뭔가가 나올 게 내 눈에는 보이는데….” 그걸 터뜨려주고 싶었다는 말에 송혜교는 “넘어갔다”. 같은 욕구가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송혜교는 지인들과 ‘황진이 캐릭터는 영화로 안 만드나?’ 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한 인터뷰에서 다음 희망 역할을 질문받고 그는 “늘 비슷한 역할만 해왔으니까 황진이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근데, 뭐, 만들어질까요? 몇년은 걸리지 않을까요?’라고 했죠. 영화가 만들어지는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힘들었다. 두 번째 영화에 여자 타이틀 롤이라는, 지나치게 과감한 선택일 수 있음을 스스로 전제하고 들어갔음에도 황진이란 인물이 그를 한시도 가만 놔두질 않았다 한다. “정말 기가 센 여자 같아요. 저도 오기로 시작했는데도, 와, 진짜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6개월 동안 편히 푹 자본 적이 없어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요. 12시에 누우면, 새벽 6시에 나가야 하는데 그때쯤 겨우 잠이 드는 거예요.” 5kg짜리 가채를 날마다 얹다보니 정수리의 머리카락들이 죄다 빠졌고, 목에 무리가 가서 전신마비가 올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가슴 조이는 한복 때문에 숨쉬기가 벅찼다. 스물여섯살이 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인지, 캐릭터를 떠나보낼 때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늘 아쉬워했고 몇 개월이 걸렸는데 이번엔 빨리 빠져나왔어요. 촬영 다 마치고 며칠 있다가 스탭들 전부 다시 만났는데 저보고 진이 안 같다고, 혜교 같다고 그러는 거예요.”

현장에서 송혜교는 상대역 놈이인 유지태보다도 감독인 장윤현을 사랑했다고 고백했다. 감독의 서운한 말 한마디에도 눈물이 고이고, 나중에라도 제3자를 통해 감독님이 이랬다더라 하는 오해의 말을 들으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어, 남자친구에게 하듯 달려가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다. 송혜교는 사랑이 넘치는 여자다.

귀여운 아기씨가 아닌 힘있는 여성으로, 존재감있는 진짜 영화배우로 인정받고자 과감하게 선택했던 두 번째 영화는 이제 그의 손을 완전히 떠났다. 지독한 여자 대장부 황진이를 살아내면서 송혜교 개인의 인생관에도 변화가 닥쳤을까 싶었는데,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한결같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대답이 돌아온다. “배우 송혜교의 자리에 서는 것이 지금 꿈이고, 평범하게 가정 꾸리고, 내 가족 만들고, 내 가족 잘 지키고 싶어요. 그런 여자가 됐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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