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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뎁] 내 생애 최고의 연인

조니에게.

안녕 조니, 난 팀이야. 너의 단짝 미스터 버튼이지. 뭐랄까, ‘단짝’ 말고 좀더 섬세한 표현은 없을까? 우리의 관계를 단지 ‘단짝’이란 말로 표현하긴 너무 서운해서 말이야.

우리가 벌써 여섯편의 영화를 함께했군. <가위손>(1990), <에드 우드>(1994), <슬리피 할로우>(1999),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유령신부>(2005) 그리고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2007). 와, 이런 커플이 또 있을까? 무려 17년 동안이나 창작 작업을 함께했다니. 미국의 역사를 한 인물의 전기처럼 다루길 좋아하는 마틴 형은 그의 짝꿍을 로버트에서 레오나르도로 바꿨잖아. 물론 마틴 형은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었지. 초상화의 주인공을 바꿀 때도 됐어. 그 사이 인생관도 많이 변했을 테니 말이야.

<스위니 토드…>가 개봉을 앞두었을 때 <프리미어>가 우리 둘을 인터뷰하고 나서 이런 표현을 썼더군. “고딕 듀오.” 기묘한 이미지와 마이너리티의 정서 면에서 정말 잘 맞는 조합이라고. “컬트적인 흥미를 자극하면서도 묘하게 대중적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무시 못할 상업적 파괴력”까지 가졌다는 거래. 이건 칭찬이겠지?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린 그런 점에서 정말 신기한 커플이야. 늘 주류와 따로 노는 것 같은데, 우리 둘은 인기가 좋지.

우리는 왜 인기가 좋을까? 둘 다 외모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 나는 영화의 외모에 관심이 많고, 자네는 캐릭터 외모에 관심이 많잖아. 그리고 자네의 꼼꼼한 그 취향이 내가 공들이는 영화의 비주얼과 어울리지. <할리우드닷컴>과 인터뷰할 때도 말했던 거지만 자네와 작업을 하면 자네가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서 좋아. 기억나? <슬리피 할로우>를 할 때 자네가 주인공한테 보철 코를 씌우면 어떻겠냐고 물었지. 미신과 주술이 흐르는 그 세계에 뛰어든 괴짜 과학자 같은 수사관 크레인의 이미지에 그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거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때 자네가 윌리 웡카의 얼굴을 하도 하얗게 해놔서 스튜디오 간부들이 나한테 뭐랬는 줄 알아? “피부색 좀… 조금만 어둡게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자네가 마이클 잭슨을 흉내냈다고 생각하고 벌벌 떨더라. 그래서 그들에게 설명해줬지. “조니가 생각한 건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예요.” 자넨 그때 윌리 웡카의 의상에도 정말 신경을 많이 썼어, 하하하. 자네가 꼭 의상스탭 같았다니까.

<캐리비안의 해적> 스탭들한테 듣자니, 잭 스패로우의 패션을 집시 스타일로 가자고 한 것도 자네였다며. 어련하겠어. 외모를 바꾸는 게 자네 취미잖아. 자넨 캐릭터가 뭘 입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캐릭터가 규정된다고 믿으니까. 그래서 조니 뎁이란 인물의 내면은 영화 속에서 더 철저히 가려지는 거겠지. 자네는 자신의 내면을 파헤치고 꺼내놓는 배우라기보다 그 내면을 위장하는 데 더 능숙한 배우야.

그러고보면 내 영화의 비주얼의 절반은 자네에게서 나온 거나 다름없군. 이번 영화도 정말 좋았어. 스위니 토드 머리칼의 백색 블리치! 자네 조카가 그런 머릴 했다면서? 옛날 호러영화에도 그런 머리를 하고 나온 주인공이 있었지. 그렇지만 조니, 난 무엇보다도 이번 영화에서 노래 못하는 자네의 노래 연기에 감동받았어. 진담이야. 자네가 친구 녹음실에 처박혀 노래 연습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스탭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왜 자네가 트레이너를 고용하지 않았을까 모두 의아해했지. 리처드(프로듀서 리처드 자눅)가 그러더군. “조니는 잘할 거예요. 자기가 못할 걸 알면서 하겠다고 하진 않았을 거야.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면 지금의 위치에 올랐을 리가 없어.” 그러면서 이러더라. “근데… 조니가 진짜 노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사람?” 나는 장담했지. 자네가 <My Friends>를 불러 녹음한 데모 테이프를 보내왔을 때, 그걸 듣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리처드의 사무실로 곧장 달려가 함께 들었지. 그도 아무 말 못하더군. 나는 말할 수 없이 자네가 자랑스러웠어, 조니.

조니, 내 영화 인생의 모토 중 하나가 뭔 줄 알아? “그 어떤 영화든 배우와 함께 개발하라!” 17년 전 <가위손>을 만들 때 얻은 거야. 내가 그 영화를 어떻게 구상하게 된 건지는 자네도 알지? 몇년 동안 여자친구도 없이 세상에서 혼자 왕따당한 기분으로 살면서 떠올린 거였어. 월트 디즈니사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할 때이기도 했지. 내 생각을 담은 캐릭터는커녕 밤비 한 마리 따라 그려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지루한 책상 업무를 반복했어. 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어. 그런 외로움과 절실함, 창작욕에 불타 만든 장편이 <가위손>이야. 자네는 그 당시 별 성의없는 하이틴영화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와 제임스 딘을 적당히 섞은 반항아 이미지를 연기하고 있었지. 자네가 그랬지. “1989년 커피숍에서 처음 만나자마자 우리 둘 사이에 유대감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할리우드식 태도와 동떨어진 기이한 공감대라고 해야 할까.” 자네 말대로 우린 시시콜콜 따지지 않아도 농담 한마디에 서로의 속내를 꿰뚫을 정도였어. 첫 만남의 자리에서. <가위손>을 촬영하면서, 나의 배우가 현장에서 어떤 표정과 제스처를 취할지 날마다 그토록 기다려지긴 처음이었어.

<가위손>을 만들 때만 해도 우린 철없이 몸만 큰 남자들에 불과했는데. 이젠 아이의 아버지로서 둘 다 좀더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해. <스위니 토드…> 촬영 3주차 때 갑자기 자네 딸 릴리 로즈 멜로디가 위독해졌지. 촬영 다 때려치우고 자네는 딸에게 날아갔어. “내 생애 가장 암흑의 순간”이었다는 자네 표현이 너무 가슴 아팠지. 그렇지만 자네가 “배우를 새로 캐스팅해야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을 때 그건 내 생애 가장 암흑의 순간이었어. 결국 모든 게 다 잘되었지만. <스위니 토드…>를 촬영할 때 내 아내 헬레나(본햄 카터)도 둘째아이를 임신 중이었잖아. 누굴 잃었어도 난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상심했을 거야.

조니,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때 나에게 공로상 트로피를 건넨 것이 자네였지. 기자들이 모두 그러더라. 자네 말고 그 일을 할 적역이 누가 있겠냐고. 그 트로피의 절반을 자네에게 돌려준다면 어떨까? 그래야 당연하지 않을까. 내가 만든 세계의 일부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네에게 속한 것이니까. 사랑하는 아내 헬레나도 이런 고백은 이해할 거야. 조니, 자네는 내가 영화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연인이야. 그래서 말인데, <프랑켄위니> 있잖아, 내가 감독 시절 초기에 <프랑켄슈타인>을 모티브 삼아서 만들었던 흑백단편 <프랑켄위니>의 장편 프로젝트 말야. 그것도 자네와 같이 한다면 좋을 텐데.

겁먹진 말게, 그건 뮤지컬은 아니니까.

*이 기사는 지난 11월26일 영국 런던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월드 프리미어 때 가진 팀 버튼과 조니 뎁의 현지 인터뷰 기사와 <엠파이어>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GQ> 등 해외언론에 실린 두 사람의 기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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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