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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포크레인으로 파낸 감정의 우물

보편적인 딸 지숙 역의 박진희

박진희의 아침은 계란 줍기로 시작된다. 직접 기르는 닭이 낳은 따끈따끈한 계란이다. 이게 다 지난해 출연했던 MBC 스페셜 <박진희, 이현우의 북극곰을 위한 일주일> 때문이다. 그녀는 방송에서 탄소에너지 절약을 위해 일주일 동안의 자급자족을 선택했다. 양계장에서 닭 세 마리를 사와 기르며, 닭이 낳은 계란으로 프라이를 해먹던 그녀는 방송이 끝난 뒤 닭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양계장에서 조류독감을 우려해 한번 나간 닭은 다시 받지 않는대요. 이때다! 그간 말로만 얘기했던 친환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싶었죠.” 덕분에 그녀는 매일 두개의 신선한 계란을 먹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고민해온 환경운동을 몸소 실천할 수 있었다. 박진희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오래 고민하지 않고 실천에 옮기는 배우였다.

<친정엄마> 출연 역시 고민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모녀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박진희는 암에 걸린 채 엄마(김해숙)와의 마지막 2박3일을 보내는 딸 지숙을 연기한다. 남편은 안 챙겨도 자식만큼은 꼭 챙기고, 무거워서 안 가져가겠다고 해도 제 손으로 만든 반찬을 해먹이려는 엄마를 지숙은 미워하고, 고마워하고, 그리고 미안해한다. 한마디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식의 모습이다.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어야 한다는 설정이 과제였다면 과제였을 뿐. 그런데 박진희는 이 ‘보편적인 연기’ 때문에 속앓이를 좀 했다. 장르적 설정이 빠진 자리를 밀도 높은 연기로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말 그대로 ‘드라마’였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의 감정만으로 밀고 가야 하는.” 박진희는 고민 끝에 보편적인 해답을 찾았다. 다른 많은 연기자들이 그렇게 하듯 스스로 지숙이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 “지숙을 담은 스틸컷과 시나리오를 숙소 벽에 가득 붙이고, 대사를 읽고 또 읽고, 먹지도 않고, 침대 위에 누워 아파보기도 하면서.” 그녀는 친정엄마의 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친정엄마>의 박진희는 최근 드라마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영화 <달콤한 거짓말>에서 보여준 활발함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어 보인다. 또, <궁녀>에서 보여준 진중함보다는 좀더 여유로워 보인다. 그 점에서 <친정엄마>는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궁녀> 이후 또 한번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녀는 자신의 연기 인생을 우물파기에 비유한다.“매 작품 더 깊은 우물을 파고 있어요. 우물이 깊어질수록 들어가는 것과 빠져나오는 것이 힘들어요. 그런데 <친정엄마>는 그간 팠던 우물을 포클레인으로 한번 더 판 느낌이에요.” 연기가 점점 발전하는 것이 배우에게 분명 좋은 일인데, 박진희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그녀는 ‘배우’가 아닌 ‘사람’에 방점을 찍길 원하기 때문이다.“평탄하게 살고 싶어요. 어떤 배우들은 배우로서의 삶과 연기가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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