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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이젠 아시아와 할리우드영화 유치가 답이죠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0-09-10

부산영상위원회 10년 생활을 정리하는 박광수 감독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영화 불모지 부산은 10년 만에 영화도시가 되었다. 그 중심에는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영화도시 부산을 이끈 부산영상위원회(이하, 부산영상위)가 있다. 국내 최초로 로케이션 지원 업무, 촬영 스튜디오 및 촬영 장비 대여 그리고 후반작업까지, 영화의 전 공정이 한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난 2008년부터 매년 아시안영상정책포럼을 개최해 여러 아시아 필름 커미션과 함께 세금 환급, 보험, 제작비 해외 송금, 관세, 부가세 등을 논의하고 있다. 아시아 영화산업을 결속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국내외 여러 시스템과 사업을 구축하고 추진하는 데 부산영상위 박광수 운영위원장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그가 지난 10년간의 부산영상위 생활을 정리하고 떠난다. 2012년 여수엑스포 예술총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업무에 매진하기 위해서다. 지난 8월30일 박광수 감독을 만나러 영상원을 찾았다.

-상하이 출장 갔다가 어제 도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여수엑스포 일로 가신 건가요? =지금 상하이에서 엑스포가 열리고 있어서 점검차 다녀왔어요.

-지난 2월 부산영상위 운영위원장의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당시 열린 부산영상위 총회에서 연임하기로 결정됐습니다. =정확히 지난해 말 부산 후반작업시설인 AZ웍스’가 출범하면서 그만두겠다고 표명했어요.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후반작업시설을 완성하면서 할 일을 다 했다고 판단한 거죠. 그때 허남식 부산시장, 정낙형 부시장,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님께서 너무나 간곡하게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하셔서 6월까지만 있기로 한 것입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부산시에 다시 그만두겠다고 말했어요. 그게 오는 9월10일까지입니다.

-그때 AZ웍스의 이용기 대표를 비롯해 부산영상위 직원들이 전부 사임을 말렸던 기억이 납니다. 기분이 어떠셨나요? =처음에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직원들도 사표 쓰겠다고 봉투에 사인해서 가져왔더라고요. ‘너희들도 그만둬’라고 말했죠. 그런데 아무도 안 그만두더라고. 그런 걸 아는 거죠. (동석한 산업전략기획실 배소현 마케팅 팀장에게) 새로운 사람이 와서 뭐라고 할까봐 겁나서 그런 거지? 이제 나한테 배울 것은 없어. (웃음)

-지난 10년 동안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아무래도 ‘로케이션 지원-촬영 스튜디오 확보 및 촬영장비 대여-후반작업시설(AZ웍스)’로 이어지는 영화의 전 공정을 부산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한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지난 1999년 부산영상위원회를 처음 만들 때부터 이미 구상한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하면서 부산시는 영화산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을 할 때였어요. 부산영상위원회가 설립되기 전에 ‘씨네포트 부산 세미나’라는 워크숍을 열어 전문가 4명과 함께 밑그림을 구상했습니다. 그때 캐나다 밴쿠버를 모델로 했어요. 밴쿠버시는 인구가 적고 자국 영화시장은 빈약하지만 할리우드영화팀을 잘 유치했어요. 시의 적극적인 협조 및 제작지원 프로그램 덕분입니다. 그것을 참고삼아 세 단계의 사업 전략을 수립한 것이 ‘로케이션 지원-촬영 스튜디오 확보-후반작업시설 건립’이었어요. 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무리하지 않고 단계별로 추진할 것을 원칙으로 세웠습니다.

-당시 부산시장은 “촬영을 위해서라면 시장실까지 공개하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만큼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죠. 부산 시민도 적극적이었고요. 영화 한편도 촬영되지 않았던 부산이 연간 40편의 촬영을 유치하게 된 가장 큰 비결입니다.

-<칠수와 만수>(1988), <그들도 우리처럼>(1990),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등 진보적이고 개혁 성향이 강한 작품들을 만들어 오다가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공무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물론 공천 같은 것은 보수적일 수 있겠죠. 그러나 부산은 부마민중항쟁이 일어난 지역입니다. 항구도시라 새로운 문물이 계속 들어오는 지역이기도 하고요. 노래방도 부산에서 처음 생긴 거잖아요. (웃음) 부산시 공무원들이 생각보다 보수적이지 않았어요. 그땐 모든 것을 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했습니다.

-지역별 로케이션 정보를 체계적으로 구축한 로케이션 데이터베이스도 그때 처음 시도됐습니다. 헌팅 정보 정리는 충무로 연출부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데, 이는 현장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인가요? =충무로에서 연출부와 제작부가 짝을 지어 로케이션 헌팅다니면서 해야 하는 숙제죠. 화면 각도는 한눈에 건물, 지역 등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건물의 좌우, 앞뒤 사진을 연결해서 파노라마 형식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주변의 숙박, 식당, 주차장 등의 정보도 함께 조사해야 하고, 동영상으로 여러 각도를 함께 촬영해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조명감독 등이 공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부산영상위에서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거죠.

-현재 전주나 고양시 등, 다른 지역도 부산을 따라 촬영 로케이션 지원은 물론이고 촬영 스튜디오, 후반작업시설 등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부산이 더 큰 먹잇감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부산시가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포인트를 잡아야 하는데, 지금 추진 중인 대형 스튜디오 건립이 그중 하나입니다.

-수영만에 있는 촬영 스튜디오 B세트가 500평 규모인데, 애초에 600평 이상으로 크게 갈 생각은 없었나요? =수영만에 있는 그 공간은 원래 무역전시관이었어요. 부산 센텀지구에 벡스코가 생기면서 무역전시관이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간 겁니다. 그래서 비어 있는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촬영 스튜디오가 된 거죠. 처음에는 250평 규모로 먼저 마련하고, 서울에도 작은 규모의 스튜디오는 많으니까 두 번째 스튜디오는 크게 가자고 시관계자들과 의논한 결과 현재의 500평 규모의 B세트가 착공된 것입니다.

-지난해 열린 한 대담에서 600평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가 있으면 한국영화팀뿐만 아니라 아시아, 할리우드영화를 유치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추진 중인 대형 스튜디오가 그것인가요? 진행 사항이 궁금합니다. =광안리 뒤쪽에 있는 옛 부산공무원연수원 자리에 부지를 확보했습니다. 1천평짜리 하나, 600평짜리 두개, 총 3개의 대형 스튜디오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올해 가안이 나온 뒤, 내년에 본격적인 스튜디오 설계가 시작됩니다. 얼마 전 할리우드 제작사인 폭스 부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가 ‘스튜디오의 렌털 비용이 중국의 그것보다 10%만 저렴하면 부산에 와서 촬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스튜디오 렌털 비용이 현재 우리보다 비싸요. 이제 로케이션 지원 서비스는 답이 안 나옵니다. 얘기한 대로 전주나 고양시 등 다른 지역에서도 다 하는 겁니다. 대형 스튜디오로 아시아와 할리우드영화를 유치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 점에서 이번 스튜디오 건립은 부산이 아시아 영화산업의 중심에 서기 위한 필요조건이죠. 부산영상위 차기 위원장은 그것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부산시에 이미 얘기했습니다.

-부산시에 부산영상위 차기 운영위원장 후보를 추천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실명을 거론할 때가 아닙니다. 세명을 추천했어요. 부산 출신 두명과 외지인 한명.

-김성수 감독은 “부산영상위는 촬영이 들어간 뒤부터 기능하고, 부산영화제는 영화가 완성되고 난 뒤에 상영을 목적으로 기능하고”있다면서 “부산에 제작사가 없는 것은 자본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부산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제작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접근입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러나 자본문제는 쉽지 않아요. 부산시 재정이 그리 넉넉한 편도 아니고요. 분명한 것은 부산이 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부산의 롤모델은 밴쿠버였어요. 오히려 지금은 뉴질랜드의 웨타 스튜디오가 더 맞을 수 있다고 봅니다. 아시아나 할리우드영화의 촬영 및 후반작업 유치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최근 고양시는 다양한 현금 서비스를 준비했습니다. 고양시에서 촬영할 경우 사용금액의 반을 현금으로 환급받을 수 있고, 경기도와 고양시가 함께 운용하는 경기신용보증재단에서 최대 5천만원까지 보증금 없이 대출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정책포럼에서도 세금 환급이 주요 쟁점이었는데 부산은 인센티브 제도를 추진할 계획은 없나요. =인센티브 제도나 현금 지원은 만만한 게 아닙니다.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하려면 제대로, 세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부산은 대형 스튜디오 건립 등 돈 들어갈 데가 많아서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하기가 쉽지 않아요. 인센티브 제도를 밀어붙여서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생기면 강하게 주장하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지금은 후반작업시설의 기술이 세계적으로 검증받는 것, 대형 스튜디오 착공이 우선입니다. 이 두 가지가 갖춰져야 인센티브 제도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4∼5년 정도 더 기다릴 필요가 있어요.

-지난 2008년 추진한 아시아정책포럼은 단순한 포럼 행사가 아니라 부산이 주도해서 아시아 영화산업을 선점하겠다는 야심이 엿보였습니다. 이 정책포럼에서 부산이 목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야심은 전혀 없어요. 취지에 따라 힘의 균형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요. 부산이 아시아정책포럼을 만들었지만 일본이나 중국도 개최할 수 있도록 마인드를 오픈해야 합니다. 부산은 타이, 베트남, 일본 등 필름 커미션 후발주자들이 잘 따라오도록 정신적·운영적 노하우를 전부 제공할 필요가 있어요. 아시아의 영진위라고 보면 됩니다.

-허문영 영화평론가는 “영화 속 부산이라는 공간은 ‘기억 속의 공간’으로 기능할 때가 많다”면서 “과연 부산이 영화인들에게 계속 매력적일 수 있을지도 영원히 안고 가야 할 과제인 것 같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 없는 공간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부산영상위만의 장점이에요. 그 점에서 부산영상위는 국내의 어떤 영상위원회보다 압도적으로 훌륭해요. 여전히 많은 촬영팀이 로케이션으로 부산을 선택하는 것이 그 증거죠.

-부산영상위 직원들에 따르면, 감독님 취미가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거짓말이야. 취미는 노는 거지. (옆에서 배소현 팀장이 “주말에도 회의한다”고 하자) 주말에 회의 좀 하면 어때? <씨네21> 기자들은 만날 밤새고, 주말에 취재 다니는데. 일 많이 안 해. 그냥 일하는 거 보면서 즐기는 거지. (웃음)

-매일 주무시기 전에 그날 있었던 일을 복기하고 잠자리에 든다고 들었습니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날 밤에는 잠을 못 자요. 혼자 술을 마시면서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나’ 정리합니다. ‘아, 아무 일이 없었구나’라는 판단이 들어야 잠이 와요. 특히,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면 말을 잘 안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대인관계라는 게 툭툭 털고 넘어가야 하는데 성격상 그게 안되더라고요. 매일 술을 마시니까 몸이 굉장히 안 좋아. (웃음)

-아내인 이연호 전 <키노> 편집장님과 결혼할 때 “나 영화감독이니까 계약금 못 갖다준다”면서 김성수, 허진호, 이현승 감독 등 당시 연출부에게 계약금을 쓰셨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영화감독 계약금이 얼마 안되니깐…. 결혼하기 전에 집사람한테 “돈 벌 자신 없다. 아님 말고”라고 쿨하게 얘기했지. 지금도 집에 돈을 전부 갖다주지 않아요. 달라고 하면 주고. 나 역시 밖에서 써야 할 돈이 많아서.

-출장갈 때 사비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부산 출장은 왕복 항공비만 지원받고 나머지는 전부 제 돈으로 내요. 해외 출장은 영상위 출장비로 쓰고요. 다만 추가 체류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정을 촘촘하게 짜고, 오후 업무가 끝나면 무조건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돌아옵니다. 국민들이 낸 세금을 함부로 유용해서는 안돼요. 그건 당연한 거예요. 그 점에서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님은 정말 철저하신 분입니다.

-<눈부신 날에>(2006) 이후 작품이 없습니다. 차기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여수엑스포가 2012년에 끝나니까 그때 만들어야죠. 엑스포를 통해 첨단기술과 뉴미디어 작품들을 많이 접하고 있어요. 특히, 인터랙티브적인 영상이 제법 흥미로워요. 공부하는 기분으로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몸담았던 부산영상위를 떠나는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너무 오래 있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사실 산업 전략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이 진도가 잘 안 나간다.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데 10년이 지나갔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죠? (웃음)

-아쉬움은 없나요? =강한 조직이 되려면 로테이션이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인 물이 되면 안돼요. 처음에 원했던 것은 직원들을 잘 트레이닝시켜서 더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것이었어요. ‘부산영상위가 이것밖에 안되는 곳이냐’는 말이 나오면 안되거든. 그러나 지금은 약간 정체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뭐, 어쨌거나 이제는 자기들이 알아서 해야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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