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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당신이 사는 지역사회, 땅과 교감을 나눌 때 행복해진다”

<오래된 미래> 쓴 생태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다큐멘터리 <행복의 경제학> 공동연출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이하 <오래된 미래>, 1992)의 저자이자 유명한 생태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방한했다. 이번에 그가 들고 온 것은 책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행복의 경제학>이다. 올해 5월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 <행복의 경제학>은 “빵을 먼저 불려야 나눌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성장 패러다임이 실은 초국적 거대 자본들의 배만 불리는 허구와 기만의 술책임을 낱낱이 지적한다. 노르베리 호지는 2천년 동안 신뢰와 협동으로 구축한 이상적인 공동체 라다크가 자본의 유입으로 붕괴함을 목도한 뒤 탐욕과 경쟁만을 부추기는 ‘불행의 경제학’에 대해 오래전부터 비판해왔다. 환경재단(대표 최열)이 마련한 ‘350(기후변화방지를 위해 이산화탄소 농도를 350ppm으로 줄이자는 운동) 시네마 릴레이’ 행사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노르베리 호지는 “세계화에 맞선 지역화(localization)”만이 희망을 일궈낼 수 있는 동력이라고 덧붙였다(그는 인터뷰 때문에 미처 주문한 음식에 손을 대지 못했는데, 음식물 쓰레기를 남길 수 없다는 그는 함께 온 남편에게 음식을 주겠다며 그릇을 통째로 들고 나갔다).

-한국은 5번째 방문이다. 가장 최근 방문이 2008년이었는데. 눈에 띄게 나빠진 건 없던가. =여러 번 왔지만 충분히 들여다볼 만큼 길게 머물지 못했다. 다만 (한국이) 자살률 (1위라는) 통계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데, 이 현대 도시의 삶이 주는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진다는 뜻으로 들렸다.

-각국을 돌면서 다큐멘터리 <행복의 경제학>을 상영하고 관객과 환경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중으로 안다. =상영회를 가질 때마다 기대보다 관심이 높아서 나도 잘 놀란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대도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다. 다만 일본과 한국은 관객의 질문 수준이 좀더 지적이다. 더 깊게, 더 넓게, 더 전체적으로 본다고 해야 할까.

-<행복의 경제학>을 보면서 강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좀더 공격적으로, 자극적으로 접근할 생각은 없었나. =더 극적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냐는 건가, 아니면 정부와 대기업에 대해 더 비판적으로 다룰 생각이 없었냐는 뜻인가.

-둘 다. (웃음) =일단 애초 계획은 3∼5부작 정도의 시리즈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예산이 한정돼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여유가 있었으면 정부나 기업쪽 사람들을 더 많이 인터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강의처럼 받아들여지기보다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더 교감할 수 있는,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삶을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들려주는 식으로. 그런데 그건 기존의 미디어가 이런 이슈를 다룰 때 취하는 전형적인 방식 아닌가. 이 경우 기업과 정부가 말하는 세계화, 산업화가 실은 세계적인 굶주림과 기근을 낳는 구조를 설명하지 못한다. 한편 안에 관념적이지 않고 동시에 큰 그림을 이야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다큐멘터리 속의 내레이션들은 또박또박 알아듣기 쉽게 되어 있다. 의도한 것인가. =정말 그렇게 느꼈나? 의도라기보다는 버릇이다. 여기저기서 강연할 기회가 많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강연하다 보면 사람들이 내가 하는 영어는 다 알아듣겠다고 한다.

-과거 <오래된 미래>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적이 있다. <행복의 경제학>은 <오래된 미래>의 연작이다. 처음에 어떻게 출발했나. =시각 이미지가 더해지면 이슈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테니까. 상업적인 고려는 전혀 없었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실수였는지 모르겠다. (웃음) 기본적으로는 세계화로 대표되는 기존의 경제학이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알리고자 했던 내 열정에서 비롯됐다. 그전에 여러 나라에서 슬라이드 쇼와 강연을 하면서 수상 경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서 라다크에 관한 영화를 같이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여러 번 듣기도 했다. 하지만 다들 초점을 좁히되 덜 교훈적인 방식으로 라다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설명하고 싶어 하더라. 결국 직접 저예산으로 <오래된 미래>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존 페이지와 스티븐 고렐릭과 공동연출했다. =<오래된 미래>와 <행복의 경제학>에서 나는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했다. 내 관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주체인 협회(생태와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 International Society of Ecology and Culture, ISEC)의 대표이기도 하고.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든 두 사람과 상의를 거쳤고 거의 늘 합의에 이르렀다. 실제 내레이션 집필과 각색, 구조를 바꾸는 것 등은 공동으로 작업했다. 수백 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기록하는 데는 스티븐이 좀더 고생했다.

-남편이기도 한 존 페이지와는 어떻게 만났나. =33년 전에 만났다. 존은 법학을 전공한 뒤 휴식을 위해 남미에서 2년 정도 머무르다가 런던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나 또한 라다크에서 3년 동안 일하고 막 돌아왔을 때였는데, 토착민의 생존을 돕는 서바이벌 인터내셔널이란 단체의 음악 행사에서 만났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때 난 서바이벌 인터내셔널 대표와 사귀고 있었고, 존은 남미에서 사귄 여자친구랑 막 헤어진 뒤였다. 나중에 그 두 사람이 결혼하면서 결과적으로 스와핑이 됐다.

-(환경을 파괴하는) 화장품을 거의 안 쓰는 것 같다. 결혼식 때 메이크업을 하긴 했나. =아주 조금. (웃음) 10대 때는 좀 했던 것 같은데, 그 뒤론 화장을 거의 안 하고 살았다.

-스티븐 고렐릭도 오랜 동료인가. =1980년대 초에 자원활동을 시작했고, ISEC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전에 태양에너지 회사에 다녔는데 제3세계에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지금은 농사를 짓고 있다. 라다크에 갔던 사람 중에는 소규모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척박한 황무지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살 수 있을까.” 책 <오래된 미래>에서 당신은 라다크와의 첫 만남을 그렇게 기억했다. 그 뒤 당신은 라다크에 머물면서 세상을 향해 “저 풍요로운 곳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살 수 있을까?”라고 질문해왔다. 어떤 계기로 사고체계가 완전히 바뀐 것인가. =라다크에 가기 전부터 이미 난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낀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 시절에도 노인들을 돕는 사회 활동을 했는데, 그러면서 말하자면 주고 베푸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됐던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자각’했다는 건가. =(웃음) 피상적으로 알던 것을 구체적으로 본 거지. 라다크를 통해 이야기하려 했던 바는, 현행 경제가 결코 필연적인 귀결이 아닌 실업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서로 싸우게 하며, 엄청난 자원을 낭비하면서 우리를 물질적으로도 가난하게 만드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라다크에서 정신적인 가치를 배운다기보다는 원래 라다크가 갖고 있었던 것과 경제가 끼친 영향, 그 대조 자체였다. 갈등과 불행과 오염을 만들어내는 경제체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질문할 수 있게 된 거다. 그 안에서 특히 경제가 농업에 끼치는 영향, 도시와 지역사회의 관계에 주목할 수 있었다. 라다크의 변화는 차원이 다르지만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였음을 알게 됐다.

-당신이 라다크에 갔던 1970년대 중반은 라다크가 자본에 노출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곳에 가난이라는 건 없다”던 라다크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아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 가난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충격이었을 것 같다. =500년 동안 어떠한 집단적 갈등도 없이 이웃해 살아왔던 불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이 문자 그대로 서로를 죽이게 된 상황을 떠올려보라. 한밤중에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잠을 깨고 나서 한 불교도가 이슬람교도의 집에 폭탄을 던졌다는 끔찍한 사실을 들은 적도 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현실은 내게 중요한 각성의 계기였다. 이 모든 재앙이 경제적 변화와 불필요한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각성 말이다.

-산업화에 침윤되면서 외국인인 당신을 대하는 라다크 사람들의 태도 또한 바뀌었을 것 같다. 싸움에 휘말리거나 오해를 받은 적은 없나. =처음엔 모두 두팔 벌려 환영해줬다. 내가 라다크의 언어를 배운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어디를 가든 “헬레나란 사람이 있는데 라다크어를 배운대”, 그것만으로 라다크 전역에서 유명했다. 정통 라다크인들이 반겨주면서 라다크어를 빨리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의 갈등이 시작될 즈음엔 달라졌다. 직업훈련을 받은 젊은이들 다수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화석연료와 차를 원하는데 왜 신재생 에너지를 들여오는지를 말이다. 몇년 동안은 그런 적의를 느꼈던 것 같다. 라다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왜 개발자금을 끌어오지 못하는가 생각하는 이들도, 내가 부패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많은 젊은 학생들, 젊은이들이 지금은 우리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대하고, 자원 활동을 자처하며 와서 함께 일하기도 한다.

-책 <오래된 미래>나 <행복의 경제학>에서 당신은 획일적인 개발 모델을 비판하며, 다양성의 생성을 주장해왔다. 당신의 경우,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 말을 익히면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의 태도 또한 함께 자란 것은 아닐까. =맞다. 여러 언어를 배운 것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문화 안에서 살아본 것이 도움이 됐다. 그곳들은 세계화의 정도들이 각각 달랐다. 라다크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부탄에서도 살았고, 스페인에서도 아주 전통이 오랜 지역에서 10년 이상을 살았다. 40년 전에는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했었고, 미국에서도 시간을 보냈다. 그 경험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어느 곳이든 사람들은 지역사회나 땅과 깊은 교감을 나눌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는 <오래된 미래>가 번역된 50여개 언어권 사람들에게서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어는 경제적인, 사회적인 변동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라다크의 변화는 라다크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와 라다크 언어의 변동을 가져왔을 것이다. =라디오에서는 영어식 억양이 섞인 라다크어가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 현대 라다크인들은 영어를 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 하고, 따라서 라다크어에 영어를, 또 다른 외국어를 섞어 쓰곤 한다. 발음도 라디오에서 쓰는 라다크어는 라다크 각지에서 쓰는 그것과 다르다. 예전에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각자가 사는 지역의 땅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왔고, 각 지역차에 따른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짧은 거리라도 조금만 이동하면 다른 방언, 다른 발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지역 특유의 억양이 뒤처지고 촌스럽다는 이미지와 결부되면서 사람들이 거기서 벗어나려 하게 된 것이다. 산업화한 세계에서는 반대로 거의 모든 면에서 ‘오래된 미래’를 따르는 추세라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흥미롭다. 이를테면 <BBC> 같은 방송이 각 지역 방언을 점점 더 많이 쓰는 것도 그 한 예다.

-<오래된 미래>에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인도영화의 폐해를 다룬 부분이 있다. 발리우드영화든 할리우드영화든 오락을 우선시하는데, 전혀 안 보나. =보긴 한다. 몸이 좋지 않을 때는 DVD를 많이 보는 편이라서. 하지만 그게 나한테 딱히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건 인식하고 있다. 오락영화를 보는 것보다 친구들과 음악을 연주하거나 같이 노래를 하거나,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문화를 더 즐기는 편이다.

-거대 자본에 맞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바꾸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뜻이 맞는 사람들부터 찾아야 한다. 스스로를 특정 연령층의 획일적인 문화 안에 고립시켜선 안된다. 그 안에서 소비문화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반문해야 한다. 자율과 희망을 얻고 긍정적인 시야를 가지면 자기 회의와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잘못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갇혀 있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생기 넘치고, 재미있고, 협력하는 문화를 재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역의 먹을거리, 트랜지션 타운(석유 의존을 벗어난 도시) 등 지역화 운동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런 생각들을 널리 알리는 것으로서 영화운동도 고려할 수 있다. 현재의 경제구조가 더이상 번영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갖고 더 많은 돈을 벌 궁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다. 현재의 세계화가 우리를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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