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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사라지는 것들을 불러모으는 트랜스 아시아인
송효정(영화평론가) 사진 최성열 2014-10-29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연구자, 영화감독 김소영 교수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연구자인 김소영 교수, ‘전영객잔’의 필자로서 한 시절을 보낸 그녀에 대한 독자들의 향수와 관심은 여전하다. 그사이 그녀는 김정이라는 감독명으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얼마 전엔 한국영화 연구서 <파국의 지도>와 영화평론집 <비상과 환상> 등 두권의 책을 동시에 출간했다. <파국의 지도>는 한국이라는 영화적 사태에 대한 통시적 영화연구서다. 한국영화의 시원(始原)에서 1960년대를 경유해 촛불집회의 대중 경험이 반영된 2009년 전후의 영화를 살펴본다. 평론집 <비상과 환상>은 최근 한국영화의 증상을 진단하는 예지와 같은 책이다. 통시적 연구 작업에서 가능한 문제 발굴과, 동시대적 작업인 비평에서 가능할 논평과 비전이 두 책을 넘나들며 대화처럼 엮여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정에서 김소영 교수를 만났다.

-2000년대 대표 영화평론가다. 현장평론을 떠난 요즘 어떠한 아쉬움은 없나. =일단 데드라인 없는 삶이 즐겁다. (웃음) 당시 우리 평론가들은 좋은 시절 좋은 독자를 만나 일했다. 동료 평론가들과 <씨네21> 전영객잔에서 물러나면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려 했다. 나도 정성일 선배도 영화를 만들기도 했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연구에 집중할 시간도 필요했다. 현장비평에 손놓은 것은 아니었고 민교협이나 <교수신문> 등에 최근까지 영화비평을 써왔다.

-후배에 대한 배려였겠지만 독자들의 기대와 향수가 대단하다. =아마 정성일 선배에 대한 향수가 그렇지 않을까. (웃음) <씨네21>에서 작업하며 평론가로서는 참으로 행복한 한 시절을 보냈다. 그렇지만 그 시절 우리의 한 모멘텀이 끝난 것이라 생각한다.

-두권의 책을 냈다. 학술적인 글과 평론을 쓸 때 글쓰기의 방식이 다른가. =두 책은 연구서와 평론집으로 다르지만, 같은 토픽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횡단하고 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평론과 연구의 중간에서 의식적으로 하이브리드적으로 글을 쓰려는 듯하다.

-책의 제목에 나오는 ‘파국’이란 무엇인가. =‘파국’이라는 표현은 한국의 사태가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라는 관심에서 촉발된 거다. 동시대와 한국영화의 시원에 대한 관심이 연구서에서 두드러지는데, 첫 책의 첫 논문과 마지막 논문에 파국에 대한 관심사를 넣었다. 특히 나는 만민공동회와 그 이전 발굴되지 않은 한국영화의 시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언급하면서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는 여성의 목소리와 이미지가 부재하다고 했다. 파시즘을 공격하지만, 내재적 파시스트인 한스 벨머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관련된 가장 비판적인 작업은 이전에 <박하사탕>에서도 했다. 진보적 영화들은 보편적 트라우마를 제시하지만, 실상 그것은 젠더화된 트라우마이자 괄호쳐진 남성들만의 경험이 아닌가. <살인의 추억>에 대해서도 그러한데, 비판적 논점을 선보인 후 학생들에게 열광받았던 기억이 난다.

-<파국의 지도>에서 2009년 전후 등장한 <박쥐> <황해> <하녀>를 어떤 균열, 분기점을 드러내는 영화이자 당대의 역사적 징후로 맥락화하고 있다. =그들뿐 아니라 <풍산개> <반두비> 등 그 시기 영화에선 타자들의 집단적 출현이 있었다. 같은 시기 환대의 윤리라든지 이주자들에 대한 담론적 관심이 있지 않았나. 그중에서 <박쥐>는 상당히 오랫동안 생각한 영화다. 처음에 <씨네21>에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평을 썼는데, 오히려 학생들은 충분히 비판적이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이 영화는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였다. 나중에 이 영화에 대해 다시 쓰면서, <하녀> <황해>와 같이 배치해보았다. 그러자 다른 것들이 보였다. 김기영의 <하녀>를 임상수의 <하녀>보다 더 강력하게 계승하고 있는 것이 <박쥐>다. 이 영화는 ‘하녀가 되기보다 뱀파이어가 되겠어’라고 선언한다. 나는 그즈음 영화들의 배치 속에서 아직 폭발되지 못한 잠재성들이 대중문화에 있는 것을 보았다. <박쥐>는 대중문화의 인덱스적 측면, 아나키즘적 힘, 조직화되지 않은 힘의 역능을 보여주는 영화다. 아직 권력을 이루지 못한 그 잠재태는 마치 비슷한 시기에 경험한 촛불집회와 맞닿아 있다.

-<황해>를 논하면서 이 영화의 모순적 지점, 외국인 노동자 남성의 신체 착취와 초국적이고 스펙터클한 액션의 전시를 언급한다. =영화에서 중국의 옌지시와 대한민국의 서울이 등가적으로 보였다. 구남의 여정을 따라가면 서울도 그렇고 옌지도 그렇고 초국적 도시이다. 남자주인공은 지도 한장 들고 어디든 잘도 찾아간다. 오늘날과 같은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남성은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적응할 자본의 도시를 인지적으로 파악한다. 동시에 노동자인 주인공 구남은 우울증을 앓으며 대단히 민첩하게 생존의 법칙을 파악해가야 한다. <황해>와 같은 영화는 비서구에서 제작된 매우 잘 만들어진 액션영화다. 중국, 조선족, 남한의 사회적 공포를 다루면서 완성도도 대단히 높다.

-연구서의 관심은 매우 통시적이다. 영화적 관심 시기인 1895년, 1960년대, 2009년 전후는 만민공동회(1898), 4•19와 5•16 사이, 촛불집회(2008)의 시기와 만난다. =그렇다. 그 시기들이 나의 관심사다. 처음 내가 한국영화 연구서인 <근대성의 유령들>을 낼 때의 관심사는 1960년대였다. 그리고 나의 관심사는 프로파간다영화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이전의 잠재태적 시대인 1926∼36년이었는데, 그 시대를 역사적으로 끌고오는 1960년대가 흥미로웠다. 그러한 잠재성이 어떻게 독해되고 지도화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만희의 <휴일>을 비판적 무드로 설명한다. 이를 수동적 복종이 아니라, 저항의 가능성으로 읽어내는 독해방식이 인상적이었다. 1960년대 후반의 일이지만, 최근 영화들을 분석할 때 복기할 만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학생들은 2000년대 자신들의 현실적 체험을 투입해 1960년대 영화를 읽더라. 이러한 틀로 촛불집회 이후의 무력해 보이는 한국영화를 읽어낼 수도 있겠다. 4•19와 5•16 사이, 어떤 촉발이 억압된 후 깊은 우울감 속에서 괴이하고 역동적인 영화들이 나왔다. 1960년대 초반에 말이다. 현재의 우리 상황도 비슷하다. 촛불의 촉발과 억압, 이어지는 전 사회적 우울감 속에서 2009년을 전후로 이상한 영화들이 나온 듯하다.

-연구의 크고 긴 주제가 거칠게 본다면 ‘한국영화란 무엇인가’가 아닌가. 그런 연구 주제를 화두로 내세운 의도 내지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1990년대 초반 박사과정 시절 1960년대 한국영화인 <하녀>를 처음 보았고 첫눈에 반했다. 가령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 나왔을 때 세계 사람들은 일본영화 자체를 궁금해하지 않았나. 비슷하게 <하녀>라는 영화가 내게 한국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거다. 학생 시절 레퍼런스가 없다는 지도교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난 한국영화에 대해 연구해보기로 했다. 1993년이었다. 한국영화를 꼭 연구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근대성, 아방가르드, 젠더 등 나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결합되다보니 연구의 성과가 쌓이게 되었다. 쓰이지 않은 것을 어떻게 전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베냐민적 사유는 트랜스적인 것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한국영화의 보이지 않는 것, 영화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레퍼런스가 부족한 분야에서 밭을 일구고 있다. 힘들거나 보람된 일이 있다면.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내 책에 학생들 주가 많이 달린다. 나는 학생들과 한국영화연구 수업을 하면서 프랑스영화 유럽영화의 시네필이 아니라 한국영화의 시네필을 만드는 과정을 경험했다. 리얼리즘이 주류인 한국영화에서 비주류영화들, 가령 괴물, 환상, 괴수영화들을 보았다. 김기영 감독을 만나 친구처럼 지내기도 했다. 행복한 연구였다. 전례 없이 역동적인 시절이었다.

-최근 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했는데 어떤 작품인가. =지난해 출발선을 다시 설정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여러 다큐들의 제작 지원에 나서서 EBS, 부산국제영화제, 알자지라 등에서 지원을 받게 되었다. 가장 먼저 공개된 작품은 <김 알렉스의 식당: 안산-타슈켄트>(2014)이다. 안산에 학생들과 현장 수업을 다니다가 그곳의 고려인들에게 매혹되었다. 그들과 의사소통할 때엔 고려어-한국어-러시아어의 번역이 개입되는 흥미로운 언어적 상황이 연출된다. 고려인들은 극동지역 스탈린의 1930년대 강제송환의 집단 기억과 집단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한편 상당한 집단 지성을 지닌 그들은 소비에트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높은 평등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2014)은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찍은 다큐이다.

-학문적 관심사인 ‘트랜스 아시아’의 일환인가. =그렇다. 중앙아시아에서의 체험은 내게 참 중요한 경험이었다. 춥고 아름다운 곳이다. 올겨울에도 ‘사운드 오브 노마드’라는 기획으로 카자흐스탄에 가게 된다. 그곳 고려극장의 디바와 함께 사회주의 시절 콜호즈(집단농장)에서 공연했던 것을 되돌아보는 기획이다.

-어찌 보면 금세기에는 이미 사라져버린, 역사의 잔해와 흔적을 헤집는 작업이 아닌가. =그렇다. 영화에 대한 내 관심이 보이지 않는 영화에 있듯이, 지난 것들, 쓸모없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을 불러모으는 작업이다.

-감독으로서 김정은 ‘길 위에 있는 아시아 경계인’에 관심을 갖는다. 장기적으로 어떠한 영화에 관심이 있나. =최근 연구의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1895년으로 가서 한국영화의 시원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극영화든 다큐든 말이다.

-영화학자 김소영에게 따라오는 것이 ‘트랜스 아시아’다. 왜 트랜스 아시아인가. =가령 알튀세르가 새로운 역사의 대륙을 언급할 때, 이는 지리적인 대륙이 아니라 도래해야 할 인식의 지평과 같은 공간이다. 내게 아시아란 그런 공간이다. 냉전체제, 나아가 신냉전체제에서 연구를 하면서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트랜지트, 트랜스내셔널 동아시아 연구 모임을 접했다. 그때 훌륭한 학자들과 학문적 연대를 하게 된 점은 내게 행운이었다. 유럽적이고 미국적인 사회 속에서 자라났지만, 아시아란 나에게도 새로운 대륙이었고 이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도 나에게도 전화(trans-formation)가 일어났던 것이다.

-21세 초반, 종교 근본주의, 극단적 민족주의, 네오파시즘 등 증오에 기반을 둔 부정적 개별성들이 창궐하고 있다. 이 시대에 트랜스 아시아란 어떠한 비전을 내보일 수 있을까.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차이밍량의 <서유>(2014)에서 예를 들겠다. 여기서 서유(西遊)의 방향은 유럽이 아니라 인도 방향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의 롱테이크. 승려복을 입은 배우 이강생이 천천히 수행하듯 퍼포먼스하며 파리 이주자들의 카페 앞을 지나간다. 초국적 이주자들의 쿼터인 파리에서 이강생이 서유의 걸음을 걷고 드니 라방이 이를 따라간다. 가령 국가라는 폭력적 장치가 신자유주의를 과잉으로 관철시키는 이 시대에 그것을 벗어날 이미지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고민할 때, 차이밍량은 국가가 이해할 수 없는 소란하고 예측 불가능한 공간을 개방했다. 서발턴들의 코스모폴리탄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차이밍량뿐 아니라 나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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