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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엉덩이 힘으로 끝까지 만들었다
정지혜 2015-01-12

<허삼관> 하정우

하정우는 철저한 계획자다. <허삼관>의 감독 겸 주인공 허삼관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그는 무서울 정도로 시나리오에 파고들었고 프리 프로덕션에 온 힘을 쏟았다. 감독인 자신이 작품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만 배우로서 연기에 집중하고 드라마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곧 희극적 인물 허삼관이 진한 부성애를 깨달아가는 대장정 <허삼관>을 만든 하정우의 제일원칙이었다.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 이후 1년을 조금 넘기고 곧바로 두 번째 연출작을 내놨다.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멀티 플레이어형 배우라는 건 알았지만 감독 하정우와 이렇게 빨리 재회할 줄이야.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후 제작사로부터 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 가슴이 막 뛰더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롤러코스터>를 끝내고 상업영화를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고 <허삼관>이라는 산을 넘으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연을 두고 고심했던 걸로 안다. 주연과 감독을 겸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2011년 말 제작사로부터 소설을 받고 읽는데 허삼관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캐릭터만으로도 충분히 힘 있는 상업영화가 되겠더라. 문제는 당시 30대 중반인 내 나이였다. 연기할 때 (극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느끼면 몰입하기 힘든 편인데 (세 아들을 둔 허삼관을)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아 거절했다. 그 후 한번 더 고사했는데 2013년 5월에 제작사 안동규 대표님이 소설 판권 계약이 끝나가서 영화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 안 대표님은 <비스티 보이즈> 때 마땅한 사무실 하나 없던 우리(윤종빈 감독과 스탭들)에게 본인 방을 내주셨고 <황해> 때 중국쪽 로케이션 프로듀서로 합류해 함께했었다. 선배이자 선생님 같은 분이 (원작 소설 판권 구입부터 영화화까지) 16년간 준비한 인생의 영화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니 나도 생각이 바뀌었다.

-<롤러코스터>보다 예산도 훨씬 커졌고 방대한 시대극인 원작을 풀어내야 했다.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오히려 그래서 <허삼관>을 택할 수 있었다. 만약 내 머릿속에 구상 중인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했으면 (연출 차기작을 내놓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거다. 허삼관에게 충분히 공감했고 탄탄한 드라마에 기반한 캐릭터 영화라는 점에서 자신 있었다.

-시나리오 수정 작업만 수십번 진행했고 크랭크인 들어가기 전에 영화 전체 분량의 40% 가까이를 스테디캠으로 촬영해본 걸로 안다.

=주요 스탭부터 꾸렸다. <용서받지 못한 자>를 비롯해 여러 편을 같이한 김우일 편집감독에게 현장편집을 부탁했고 김상범 편집감독님에게 함께해주길 청했다. <롤러코스터>의 소정오 촬영감독도 합류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김주호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기본 뼈대 삼아 2013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분석에 들어갔다. 그간 나온 일곱 가지 버전의 시나리오들이 왜 영화화에 이르지 못했는지, 투자사가 이 영화에 투자한 이유는 뭘지 자문해봤다. 2014년 1월부터는 아예 사무실을 얻어 연출부와 같이 출근을 했다. 내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나리오 작업을 해서 금요일에 버전 업을 하면 연출부와 제작부가 피드백을 줬다. 월요일 아침 첫 번째 회의가 시나리오 회의였다. 이 영화는 말맛이 중요해 대역 배우들과 대사 리딩도 했다. 사실 크랭크인하기 전에 영화(준비)를 다 끝내는 게 목표였다. 촬영에 들어가면 나도 연기를 해야 하니까 그전에 밀도 있는 시나리오와 콘티를 준비해서 촬영 땐 오직 연기에만 집중하게 말이다. 내가 감독으로서 동료 배우들에게 연기에 대해 직접 말하기보다는 캐릭터가 잘 설명되게끔 시나리오를 더 탄탄하게 만들자는 쪽이었다.

-배우로서 한참 연기를 하다 말고 감독으로서 ‘컷’을 외쳐야 할 때 생기는 어색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물론 민망했다. 하지만 촬영 전 영화를 관통하는 인물의 주요 감정만 확실히 알면 현장에서 우왕좌왕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프리 단계가 그래서 정말 중요했다. 1차 콘티 작업을 끝내고 촬영, 조명팀과 카메라 두대 들고 콘티대로 찍어봤다. 그걸 바탕으로 콘티를 네 차례 고쳤다. 헌팅 장소에 가서 배우의 동선에 적합한지를 살피며 직접 연기도 해봤다. 현장 편집기사와 전체 촬영 소스를 다 취합해 처음부터 끝까지 콘티대로 붙여도 봤다. 그렇게 하니 어느 정도 길이 보이더라. 준비에 있어서 ‘다 됐다’는 건 없는데 그 정도 준비를 해두면 심적으로나마 현장에서 ‘잘할 수 있겠다’ 싶더라.

-허삼관은 큰아들이 친자가 아니라고 생각해 분노하다가 결국에는 부성애를 느끼는 인물이다. 아버지 역할이 처음이기도 한데.

=뭔가를 더 많이 준비해야 할 부분은 없었다. 아내를 의심하거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해 못할 감정은 아니잖나. 다만 그 감정 표현이 설득력 있느냐, 영화의 마지막 지점까지 캐릭터가 일관성 있게 달려갈 수 있느냐에만 집중했다.

-<암살>(감독 최동훈), <아가씨>(감독 박찬욱) 촬영으로 2015년에도 쉼이 없다.

=<암살>은 10회차 정도 남았는데 아직 많은 얘기를 할 수 없어 아쉽다. (웃음) <아가씨>는 <비스티 보이즈>의 1930년대 버전 같달까. 연기할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다. 그전에 관객이 <허삼관>을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배우, 스탭 모두 엉덩이 힘으로 만들었다. 그 힘이 결실을 맺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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