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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스> 이일하 감독 - 카메라와 인물 그 사이의 화학작용을 기다린다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8-08-16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민족주의적 혐오주의자들에 대항해 일본 시민들이 카운터스라는 단체를 조직한다. 카운터스 안에는 여러 부대가 있는데, 그중 거친 남자들의 조직인 오토코구미는 혐오주의자들을 혼내주기 위해 무력도 불사하는 소수정예 부대다. 오토코구미의 대장은 전직 야쿠자였던 다카하시. <카운터스>는 매력적인 캐릭터 다카하시를 중심으로 카운터스가 극우단체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와 맞서 싸워 혐오표현금지법 제정까지 이끌어내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권투부 학생들의 짠내 나는 성장담 <울보 권투부>(2014)에 이어 또 한번 재일 조선인의 차별받는 현실에 주목한 이일하 감독은 <카운터스>에선 성실한 관찰자이자 운동가로서 일본 내부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는다. 이일하 감독은 2000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과 오사카예술대학에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했다. 오사카예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의 스승은 <천황군대는 진군한다>(1987)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다큐멘터리 거장 하라 가즈오 감독이다. <카운터스>의 광복절 개봉을 앞두고, 이일하 감독을 만났다.

-카운터스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나, 다카하시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였나.

=카운터스의 존재를 알게 돼 취재를 하다보니 그 안에서 다카하시와 기모토 같은 오토코구미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폭력으로 혐한 시위하는 사람들을 날려버릴 거야” 라니. (웃음) 다들 겉으로는 마초적인 면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기모토는 굉장히 젠틀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다. 다카하시는 “난 오늘만 사는 남자다, 내일 죽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겉멋 든 사내고.

-전직 야쿠자였던 다카하시와의 첫 만남은 어땠나.

=오토코구미를 취재하고 싶다고 했더니 면접을 보자더라. 문신을 드러낸 덩치 큰 사람 네명을 신주쿠에 있는 허름한 다방에서 만났다. 뭐 하는 놈이냐 묻기에 예전에 <울보 권투부>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 면접을 봤고 일주일 뒤에 연락이 와서 “찍어도 좋다”라는 답을 들었다. 그때부터는 나도 오토코구미의 멤버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카하시는 폭력을 무기 삼아 정의를 실현하고, 자신을 진정한 우익이라 정의하지만 어울리는 사람들은 죄다 좌파인 인물이다. 그의 복잡한 면모가 흥미로웠을 것 같다.

=사실 자연인 다카하시는 굉장히 단순하다. 시민운동이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어서 이론적 사상을 가지고서 재특회를 반대한 게 아니다. 혐오 데모를 보고 ‘이 새끼들 용서 못하겠군’, ‘이건 아니잖아’ 싶어 행동에 나선 거다. 그러니 실은 단순한 사람이다. 흑과 백이 아주 분명한 사람. 그레이존이 없는 사람.

-재특회에선 순순히 취재 요청을 받아주던가.

=초창기엔 어려웠다. 재특회 창설자 사쿠라이가 데모를 하러 나가면 공안 경찰이 집부터 그를 호위한다. 데모가 끝나면 재특회 회원들이 안전하게 집에 갈 수 있도록 전철역을 봉쇄하고. 경찰쪽에선, 재특회가 허가를 받고 데모를 하기 때문에 재특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쿠라이는 보디가드도 있어서 접근이 더 힘들었다. 여러 번 취재 요청 메일을 보냈고 8개월쯤 뒤에 연락이 왔다. 취재에 응할 테니 돈을 달라. 그 양반들은 돈 안 주면 인터뷰를 안 한다. 그렇게 취재를 하고 가까워진 이후엔 사쿠라이가 재특회 사람들한테 이런 말도 했다. “이 친구는 한국에서 온 친구지만 때리지 마라.” (웃음)

-사쿠라이의 논리 혹은 궤변을 들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이 친구가 한국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서 디테일에 강하다. 심지어 취미가 조선시대 수라상을 연구하는 거다. 드라마 <대장금>도 다 봤다더라. 서로의 논리가 부딪히다가 말이 막히면 사쿠라이는 그런 말을 한다. “한국에서도 그러지 않느냐. 너희들부터 그러지 마라.” 촬영을 하면서 진짜 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이해가 안 되더라. 어느 순간 이 일이 그에겐 업이 돼버렸다고 느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데모를 하고 선동을 하는 그 자체가 업이 돼버린 상황.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가 되고, 강연도 많이 다니고, 후원금도 많이 들어오니까. 그런데 일본의 정통 보수는 재특회를 보수로 인정하지 않는다. 반대로 재특회는 자신들을 행동하는 보수라고 칭하면서 정통 보수를 욕한다.

-그러면 사쿠라이의 책을 사고 재특회의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일반 사람들. 사쿠라이의 선동과 유언비어에 현혹된 사람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이 받은 핍박과 소외감을 혐오로서 재일 코리안에게 반사한다. 진정으로 일본을 위해 데모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데모가 단지 오락인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재특회라는 걸 가족한테도 말하지 못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끄러우니까. 그건 마치 한국에서 ‘나는 일베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영화가 끝나면 에필로그처럼 다카하시의 영정사진이 뜬다. 안타깝게도 올해 다카하시가 세상을 떴다.

=다카하시가 한국에 굉장히 오고 싶어 했다. 지난해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카운터스>가 첫 공개됐을 때 영화제 아이디 카드도 만들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여권을 발행해주지 않아 오지 못했다. 그때 오키나와 차별 반대 시민운동으로 재판 중이었다. 하루만 사는 남자라더니 그렇게 홀연히 가버렸다. 내부 출혈로 인한 사망이었고 재판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울보 권투부>와 <카운터스>를 보면서 카메라가 특정 집단에 깊숙이 들어가 인물들의 이야기를 잘 이끌어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거나 너스레를 잘 떠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말하기보다 우선 많이 듣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들과 같이 보낸다. 카메라와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잘 캐치해내는 사람이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고 믿는다. ‘이제 라스트컷을 찍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은데, 이 사람이 이 순간 이런 말을 해주면 참 좋을 텐데’ 하면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얘기를 해준다. (웃음) 그게 바로 화학작용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감독과의 화학작용도 있지만,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 관계라는 게 있다. 카메라라는 이 큰 덩어리의 물체가 사람들을 압박하면 그 압박감 때문에 도망가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이 있다. 그 모든 게 잘 소화됐을 때 좋은 다큐멘터리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재일 조선인 사회와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글쎄, 일본에 사는 한국 사람이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그들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재일 코리안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 단적인 예로, 조선학교의 재일 코리안 중에도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조선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그들은 한국에 입국하지 못한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다.

-오랜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올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자 갱신 문제부터 여러 지원 사업의 제약까지, 예술하는 외국인으로서 한계에 많이 부딪혔다. 좀더 자유롭게 뻗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카운터스>를 만들면서 일본 영상산업 관계자로부터 방해를 받은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 피칭 행사에 갔을 때 일본 관계자가 멘토링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인이 일본 사회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이런 걸 찍느냐”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국내 다큐멘터리 피칭 행사에서 그 얘기를 또 들었을 땐 홈그라운드에선 참을 수 없다 싶어 가만히 있지 않고 싸웠다. (웃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꾸준히 관심 가는 주제는 뭔가.

=사람, 인권에 관한 문제들. 인권이란 게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인데, 그 권리의 실체가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더라. 음악도 좋아해서 언젠가 음악과 관련한 작품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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