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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쇄적 여전사의 꿈, <화성의 유령들> 나타샤 헨스트리지
위정훈 2002-05-08

1995년, <스피시즈>에서 종족 번식을 위해 남자를 구하러 다니는 뇌쇄적인 에일리언 여인 씰이 스크린에 등장한 그해. 화성이나 금성에서 갓 착륙한 듯 엑조틱한 외모, 틈만 나면 옷을 벗어던져 드러낸 완벽하게 굴곡진 몸, 두려움이 깃든 푸른 눈동자의 나타샤 헨스트리지는 단숨에 남성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7년. 화성을 무대로 삼은 SF영화 존 카펜터 감독의 <화성의 유령들>에서 나타샤 헨스트리지는 귀신들린 사람들과 싸우는 터프하고 강하고, 책임감 있는 화성 경찰대의 베테랑 경찰 멜라니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샤 헨스트리지는 카메론 디아즈, 르네 루소처럼 모델계에서 건너온 배우다. 캐나다 앨버타주 포트 맥머레이에서 자랐고, 14살에 모델이 되기 위해 단신으로 파리로 간 소녀는 곧 여러 여성지와 패션잡지의 표지를 장식했고, 뉴욕으로 건너가 오일 오브 올레이, 레이디 스텟슨, 올드 스파이스 등 미용제품 광고에도 출연하는 등 최고의 모델로 군림하게 되었다. 175cm가 넘는 키, ‘그리스 조각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몸매. 모델로서 그녀는 원하기만 하면 못할 것이 없었다. 소녀의 꿈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좀더 흥미진진하고, 새롭고 창조적인 도전이 없을까. 그녀가 발견한 신세계는, 연기였다. 갓 스무살에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스피시즈>로 곧장 스타덤에 올랐지만 막상 유명세를 치르는 것은 혼란스러웠다. “<스피시즈>를 찍은 뒤 어항 속의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유명해지는 것이 겁났고,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 거라는 에이전트의 결정을 두고 사사건건 싸웠다.”

그러나 영화출연 제의는 몰려들었다. 메이저영화보다는 TV나 마이너영화쪽에서. 장 클로드 반담과 공연한 <맥시멈 리스크>(1996), SF영화 <아드레날린>(1996) 등에 출연했지만 실패였다. <스피시즈> 직후 했던 배우 다미안 차파와의 급작스러운 결혼생활의 실패도 겹쳤다. 1998년 에로틱한 장면을 잔뜩 추가한 <스피시즈2>에 씰의 복제인간 이브로 등장했지만 원해서가 아니라 계약을 지킨 것뿐이었다. 한해 5편의 영화에 마구잡이로 출연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멋진 영화 한편이 날아들었다. 브루스 윌리스와 매튜 페리가 등장하는 코미디 <나인 야드>(2000)를 만난 것. 전설적인 킬러 지미 튤립과 거액의 돈을 둘러싸고 죽고 죽이는 음모가 펼쳐지는 코미디 <나인 야드>에서 나타샤 헨스트리지는 지미 튤립의 아내 신시아로 출연, 코믹한 연기에 도전했다.

“강하고, 터프하고, 팀의 리더이고, 쿨한 캐릭터라 맘에 든다”는 <화성의 유령들>의 멜라니 캐릭터는 원래 나타샤 헨스트리지 몫이 아니었다. 내정되었던 커트니 러브가 발목을 삐는 바람에 대신 투입된 것은 어쩌면 행운. 두꺼운 조끼와 중화기로 무장하고 밤새 기차를 타는 액션장면을 되풀이해 찍었지만, 여성전사 멜라니에게 ‘반한’ 그녀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성의 유령들> 이후에도 나타샤 헨스트리지는 몇편의 TV나 비디오용영화, 코믹어드벤처영화 <케빈 오브 더 노스>, 드라마 <유디트 엑스너 스토리>를 필모그래피에 추가했고, <택시>의 감독 제라르 피레의 신작 <라이더스>에도 출연했다. 프로듀서들이 누드신을 요구하는 스크립트를 들이미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음을, 자신이 슈퍼모델과 올림픽 선수의 신체를 합친 듯한 몸을 가졌음을 그녀는 안다. 누드신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옷을 벗든 벗지 않든, 주류든 싸구려든, SF든 액션이든, 나타샤 헨스트리지에게 영화는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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