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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꽃' 유진 - 매일 매일 충실하게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20-10-22

타고난 밝음이 있다. 배우 유진의 주변엔 행복하게 만드는 긍정의 기운이 넘실댄다. 하지만 그건 마냥 따사롭고 해맑은 에너지와는 다르다. 밝은 미소 뒤로 슬며시 드리운 그림자와 굴곡은 오래 두고 가만히 들여다봤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주변에도 행복을 전해주고자 하는 의지라고 해도 좋겠다. <종이꽃>의 은숙은 밝지만 한편으론 사연이 있어 보인다. 지혁(김혜성)을 간호하며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는 은숙은, 실은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아픔을 알기에 상대의 눈높이로 다가가 진실 어린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사람. 배우 유진이 가장 깊숙이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간 드라마에서는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영화는 오랜만이다.

=거의 10년 만인 것 같다. 항상 영화 현장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좀처럼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규모가 작은 영화였지만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의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우선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따뜻하고 감동이 있는데 너무 무겁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게다가 안성기 선배님도 함께하시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종이꽃>은 자극에 기대지 않게 진정성 있게 인물을 따라간다.

=독립영화 하면 언뜻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는데 <종이꽃>에는 그런게 전혀 없었다. 장례 지도사 아버지, 자살을 시도하는 아들이라고 하면 심각하기만 할 것 같지만 웃음이 터지는 지점도 많고 인물들의 사연도 다채롭다. 묵직한 소재를 다양하게 풀어내는 시선들이 매력적이다. 지혁과 심하게 다툼을 하는 장면들이 꽤 있는데 몸에 멍이 들 정도로 심각한 장면임에도 간혹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당사자들이 진지할수록 바깥에서 볼 땐 귀엽고 웃긴 순간들이랄까. 영화 전반에 그런 웃음과 여유들이 묻어난다.

-주로 밝고 긍정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함께 호흡을 맞춘 김혜성 배우가 “현장에서 유진 배우의 에너지가 실제로 굉장히 밝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연기할 때 나도 나름 밝게 표현한다고 했는데 고훈 감독님이 그것보다 훨씬 밝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유진은 상처를 숨기려고 밝은 티를 내는 것이 아니라 태생이 햇살처럼 해맑은 사람이다. 어떤 고난과 상처를 겪어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뿌리가 단단한 사람이랄까. 최대한 가볍고 통통 튀듯이 표현하려고 했다.

-후반부에 은숙의 사연이 밝혀지면서 극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아픔이 있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캐릭터의 전사(前史)를 촘촘하게 짰는데 그걸 구태여 설명하려고 하진 않았다. 가정 폭력으로 인해 입은 상처를 실제로 보여주는 걸로 충분히 전달된다고 판단했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 에너지가 지혁에게도 전해져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은숙은 한때 댄서를 꿈꿨던 사람이다. 종일 노래를 흥얼거린다든지, 영화 마지막에 빗속에서도 춤을 추는 장면들을 통해 그런 꿈을 향한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길 바랐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나온 말이 “좋다”였다던데.

=그동안 겪어본 많은 현장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작은 규모지만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행복하게 작업했다. 약간 과장해서 이틀에 한번은 간식차가 있었던 것 같다. (웃음)안성기 선배님도 너무 편안하게 대해주셨다. 서로가 서로를 웃음으로 맞이한, 행복의 기운이 넘치는 현장이었다.

-데뷔 초기부터 엄마 역할로 자주 출연했는데 이제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같은 엄마 연기를 해도 남다를 것 같다.

=확실히 다르다. 겪어봐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다. 지금 촬영 중인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도 16살 딸의 교육에 열을 올리는 엄마로 나오는데, 미리 예행 연습을 하는 기분도 들고. (웃음)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SF나 스릴러처럼 장르 색이 강한 작품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우선은 매일매일 충실하고자 하고 그렇게 만난 좋은 작품들과의 인연이 소중하다. <종이꽃>도 그렇다.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위축된 시기에 온기를 전하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영화를 통해 관객을 만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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