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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티셔츠 연대기
윤덕원(가수) 2022-09-01

옷 중에 티셔츠를 가장 좋아한다. “평소에 거의 기념 티셔츠만 입고 다닌다”라고 언급한 밴드 멤버들의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기념 티셔츠가 많다. 그것도 사실 최근에는 많이 절제해서 구입하지 않으려 한 결과지만. 예전에는 습관처럼 뭐 어디 재미있는 티셔츠 없나 하고 검색해보던 때도 있었다. 이렇게 입고 다니던 옷들은 어느 정도 입고 나면 명예의 전당으로 들어가서 더이상 손상이 되지 않게 보관하기도 하고(90년대 기업 로고를 얼굴 모양으로 재해석한 티셔츠, 헬카페 헌정 티셔츠 등), 일부는 자연스럽게 운동복이나 작업복으로 그리고 오랜만에 들른 부모님 댁의 상비용 잠옷으로 변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다시 구하기 힘들 것 같은 티셔츠(그리고 마음에 들어서 예쁘게 잘 입었던 티셔츠)는 따로 보관하는 편이지만 왠지 자주 입는 티셔츠가 사실은 내가 가장 오래 입는 옷이라는 사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내 삶의 본질은 순간에 있기보다는 일상에 있는 게 아닐까, 그러면 목이 늘어지더라도 좋아하는 티셔츠를 입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언제부터 프린트 티셔츠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를 돌아보면 20살이 될 때쯤 읽은 잡지 기사가 떠오른다. ‘티셔츠 행동당’이라는 티셔츠 제작 회사 이야기였는데, ‘티셔츠는 자신의 메시지를 나타낼 수 있는 표현물이다’라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 과격한 주장과 표현도 많았는데, 그때까지 의류 회사에서 나온 무던한 티셔츠만 입던 내겐 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나중에 그 회사에서 나온 티셔츠를 두벌 정도 구입했던 것 같은데,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에겐 편하게 살 만한 가격이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는 메시지가 강한 티셔츠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나의 실루엣을 옷에 맞추지 않고도 내가 보여지고 싶은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2009년, 처음으로 밴드 티셔츠를 만들었다. 무늬가 없는 티셔츠를 구입해 염색을 하고 손으로 도안을 직접 인쇄했다. 다 만들어진 티셔츠를 말리느라 옥상의 빨랫줄이 가득 찼다. 부자재를 방산시장에서 구입해서 포장하고 수제 홈페이지(어감이 이상하지만)에서 주문을 받아 판매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최근에는 로고 티셔츠를 제작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다. 도안만 있으면 다양한 옵션을 원하는 대로 맞춰 티셔츠를 제작할 수 있다. 소량으로 제작하더라도 퀄리티가 나쁘지 않다. 아무튼 철없고 에너지 넘치던 시기에 이런 일을 저지른 이후로 지금까지도 매년 새로운 밴드 티셔츠를 만들고 있다.

올해는 공연에 맞추어서 ‘전국 인디자랑’ 티셔츠를 만들었다. 예년처럼 판매도 하고, 스탭들과 밴드 멤버도 착용한다. 등에 ‘STAFF’라고 따로 기재한 버전을 만들 때도 있었는데, 나는 이쪽 버전을 조금 더 좋아했다. 이번 공연은 게스트로 참여한 팀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수량까지도 준비해서 선물로 나누어 가졌다. 평소에는 그 한벌이 여름의 셀프 선물 같은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게스트 팀들의 티셔츠를 몇벌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더욱 풍성한 여름이 되었다. 판매용 셔츠도 몇벌 챙겨놓을 수 있어서 올해도 티셔츠 걱정은 없을 듯하다. 상반기에 이미 이런저런 티셔츠를 많이 사기도 했지만….

티셔츠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입장에서 항상 가격이 괜찮은가를 고민하는 건 밴드 공연을 처음 다니던 시기에 티셔츠까지 구매하기는 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공연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현장에서 판매하는 티셔츠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선뜻 구입하지 못하고 주저했었다. 티켓만으로도 이미 부담이 컸으니까. 그럼에도 큰맘 먹고 구입한 첫 밴드 티셔츠가 밴드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 내한 공연 때 구입한 공식 티셔츠였다. 이 티셔츠는 이제는 너무 늘어나서 입을 수가 없다. 2011년 지산록페스티벌에서 첫날 마지막 순서였던 브로콜리너마저의 공연이 끝나고 다음날 이 옷을 입고 다른 공연을 보러 갔었다. 이를테면 나에게는 록스타로서 록페스티벌을 누빈 첫 유니폼 같은 셈이다. 아 참, 무대에는 앞서 언급한 2009년에 수제로 제작한 브로콜리너마저 티셔츠를 입었다.

최근에 가장 많이 입고 다니는 티셔츠는 ‘을지 OB 베어’ 티셔츠다. 상생을 통해 삶의 터전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메시지와 더불어 유쾌하고 매력적인 디자인에 먼저 눈이 간다. 검은 셔츠 한가운데 빨간 로고가 그려진 전자음악 뮤지션 키라라의 티셔츠도 자주 입는다. 밴드 보수동쿨러의 녹색 티셔츠는 가끔 브로콜리너마저의 2020년 티셔츠와 색이 같아서 착각하기도 한다. 이번 여름 투어를 하면서 선물받은 밴드 로우 행잉 프루츠의 티셔츠는 깔끔한 하얀색이다. 멤버들이 직접 디자인하는 앨범 재킷처럼 로고도 밴드 이름의 알파벳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직 남은 여름은 브로콜리너마저의 이번 투어 티셔츠를 자주 입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매년 여름이 오면 어떤 티셔츠를 또 만들까 고민하게 되겠지.

<공간초월> - 황푸하

매일 젊음을 놓치는

우리가 정말로

영원할 수는 있을까

내 작은 목소리로

소중한 나의 집

지켜낼 수는 있을까

지친 나를 항상 기다려준

우리집은 이제 땅에서

찾을 수는 없게 됐지만

우리들의 만남 안에서

땅을 넘어서게 된 거야

지친 나를 항상 기다려준

우리집은 이제 땅에서

찾을 수는 없게 됐지만

우리들의 만남 안에서

땅을 넘어서게 된 거야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영원하게 된 우리만의 소중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