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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인의 데구루루] 낫 오키, 오키나와
김세인 2023-08-17

지난 2월 안일하게도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한바탕 싸우고 아 정말 지긋지긋한 모녀. 언제쯤 벗어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아래쪽에서 뭔가 보였다. ‘그것’이었다. ‘그것’이라 하면 내가 다음 쓰고 싶은 이야기와 아주 밀접한 생물이다. 발걸음을 몇 발자국 옮기자 수십 마리의 ‘그것’이 있었다. 이 일이 나에게는 첫 번째 영화의 여파에서 벗어나려면 빨리 두 번째 영화에 돌입하라는 선명한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그것들을 열심히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6월 오사카 개봉 일정을 보내고 있을 때 사실 약간은 지쳐 있었다. 5월과 6월에 첫 번째 영화의 일본 개봉 행사를 치르며 반갑고 즐거운 만남과 대화를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솔직히 스스로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앵무새같이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다음 시나리오를 써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육교를 건너는데 또다시 ‘그것’이 보이는 거다! 원래 이렇게 자주 보이는 걸까? 옆에 있던 일본 배급사 사장님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는 걸 보니 흔한 풍경은 아니구나 싶었다. 도시 속에서 ‘그것’을 보니 한층 더 신비로웠다. 이렇게 첫 번째 영화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것’들이 촉구하듯 눈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내가 먼저 찾아가보자는 마음에 오키나와로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키나와에서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5일을 머무를 첫 번째 숙소인 호텔에 도착했다. 숙소 사진을 잘 살펴보지 않았던 걸 후회했다. 와서 보니 호텔보다는 펜션에 가까웠다. 세개의 침대가 ㄷ자 모양으로 방을 꽉 채우고 있었다. 주방 겸 거실에는 책상 없이 조그마한 좌식 탁자 한개뿐이었는데 앞으로는 거대한 세탁기와 건조기, 뒤로는 싱크대가 있었고 그곳에 앉아서는 침대에 가려져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었다. 주변에는 카페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걸어서 왕복 50분 거리에 편의점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꼼짝없이 숙소에서 글을 써야 하는데 세탁기와 건조기나 보면서 글을 쓰자고 여기 온 건 아닌데. 하는 수 없이 침대 하나에 담요를 깔고 그 위에 탁자를 올렸다. 그러므로 오션뷰가 되긴 했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세개의 침대 위에 탁자를 올리고 앉아 있다 보니 이 모든 게 허황되게 느껴졌다. 단편 작업 때부터 지극히 현실 베이스의 드라마만 써왔는데 처음으로 판타지 요소를 다루려다보니 어색했다. 게다가 오키나와에서 침대에 앉아 글을 쓰겠다는 나 자신의 모양새까지 합쳐져 ‘너무 낭만적인가? 헛바람이 들었나?’ 이러한 목소리가 절로 머릿속에 울렸다. 장면에 대한 신뢰 상실부터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의구심까지 들며 심지어 ‘그것’은 그냥 ‘그것’이었던 것뿐인데 내가 너무 의미 부여를 한 건 아닐까. 모든 것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5일 동안 편의점 도시락만 먹으며 침대 위에 앉아 있었지만 시나리오는 쓰지 못했다. 앉으면 바로 쓰겠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지만 갑자기 당황스러울 정도로 머릿속에서 주인공이 바뀌고 장르가 바뀌고…. 인물도 장면도 우습고 유치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된 거 바다에 들어가서 정신 차리자고 생각했지만 조리 샌들을 신고 편의점에 한번 다녀오니 발이 찢어져서 바다에도 못 들어가게 되었다(조리의 위험성을 인터넷에 쳐보시길!). 그렇게 별 소득 없이 숙소를 이동했다.

10일을 머무를 두 번째 숙소는 개와 함께 지내는 전통 주택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건 거실에서 정원을 바라보며 글을 쓰다가 지겨워질 때쯤 개와 놀기도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숙소에 가보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매트리스 하나와 책상 하나로 꽉 차는 방 한칸이었다. 주인 부부는 다른 곳에서 지내는 줄 알았는데 바로 옆방이었고 거실에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였다. 때문에 나는 아주 조용히 지내야 했다. 게다가 개는 은근하게 쌀쌀맞아 더 서글펐다. 나는 왜 셀프 감금으로 이러고 있나 싶었다. 어느 아침 주인 부부가 친구, 친구 아이와 주말에 김밥을 만들기로 했는데 같이 만들자고 제안하여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글도 안 써지는데 추억이나 만들자고. 그런데 알고 보니 친구가 아니고 주인 부부가 인터넷에 ‘한국인과 김밥 만들기 체험’ 모집글을 올려 사람들을 모은 것이었다. 나 상업적으로 이용당한 건가? 이왕 상업적 이용을 당할 거면 흥하기라도 하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중년 여성 두분만 참가했다. 내가 하도 방에만 있으니 주인 부부가 사실 더 불편했는지 물안경까지 빌려주며 바다에 데려다줬다. 물안경을 쓰자 습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발의 감각에 의지하여 물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물이 허리춤에 올 때까지 들어가서 물속에 푹 들어갔는데. 갑자기 펼쳐지는 생경한 풍경에 놀라 그대로 자빠져 다른 쪽 발마저 찢어져버렸다. 그대로 물 밖으로 나와 한 시간 동안 편의점에 걸어갔다. 편의점 화장실에 들어가 피로 물든 양말을 벗자 발바닥에 뻥~ 하고 구멍이 뚫렸다.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발바닥의 구멍을 노려봤다. 그러다 웃음이 터졌다. 그래 삶도 영화도 원래부터 다 허황되고 웃긴 거 아닌가. 갑자기 멘붕에 흑화된 것이 아니고 정말 그렇게 생각되었다. 시나리오 속 인물도 장면도 우습고 유치한 게 맞다. 내가 다루려는 감정은 허황되고 웃긴 거 맞다. 허황되고 웃긴 것을 현실적으로 심각하게 바라보려 하니 당연히 맞지 않을 수밖에. 인정을 하니까 뭔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안쓰러운 마음 갖고 사랑으로 맺는 영화 속 인물과 나의 관계는 끝났다. 비로소 다른 전환점에 들어서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이런 전환을 위해 이토록 웃기는 이주를 보냈다고 생각하니 발바닥의 통증이 가시는 듯했다.

저녁에 주인 부부가 확언명상을 제안했다. 확언명상은 원하는 것을 이미 다 이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종이에 각자 적기로 했다. 고민하다가 이렇게 적었다. 이것은 영화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유머가 있는 삶이다.